아마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또 가장 오해와 억측이 난무하는 인물이 이순신이 아닐까 싶네요. 모든 신화에는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있듯이 이순신을 둘러싼 신화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보태지기도 하면서 400년 가까이 한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했습니다.

이순신의 신화가 필요했던 사람들 얘기부터 해볼까요?

이순신이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관음포의 찬란한 여명속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부터 신화는 예고되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일년 전 한달동안 일곱 번의 승진과 번복을 거친 후 전라좌수사에 부임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바로 전날 거북선을 완성했으며, 의주까지 쫓겨간 어가행렬이 명나라로 망명을 고민하는 그 순간, 옥포해전을 통해 적의 핵심전력을 분산시켜 의병들이 일어날 시간을 벌었으며, 마지막까지 고수하며 오랜 전쟁의 군수기지였던 전라도마저 적장의 손에 들어가고 모든 정규군이 궤멸되었을 때,백의종군 중 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어 명랑해전을 통해 전장을 반전시켰고,전쟁이 끝난 바로 그날(사실은 조금 뒤에 전쟁이 끝났습니다만)숨을 거두었습니다.
각본없는 드라마....어느 드라마 작가도 만들어낼 수 없는 일들이 유독 이순신에게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비단 전장의 이순신으로서만이 아니라 임금들의 애증에 따라 운명이 갈리며 어전의 드라마도 만들어집니다.임금들은 철저히 그를 이용했습니다.

선조임금은 수많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녹둔도전투의 패전책임으로 군율에 따라 사형당할 뻔 했던 이순신의 목숨을 건져주었습니다.그리고,그에게 백의종군을 통해 명예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요.

전쟁이 일어나기 1년전.비로소 조선은 불안한 일본의 야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선조임금 시절 무관들이 출세코스는 ‘함경도’에 부임하는 것이었죠.이곳의 여진족 족장인 니탕개는조선의 무관들을 회유하기도 하고,게릴라전술을 능수능란하게 펼치면서 초토화시키기도 하며 불안한 전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무관에게 변방근무는 필수적이라,이곳을 거쳐간 무관들은 곧바로 출세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일,신립은 여진족과의 싸움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그들이 조선이 믿고 맡길 장수였고,그들에게 대륙의 지휘책임을 맡기는 것은 선조와 조정의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왜냐하면 일본은 왜구들의 활약으로 보건대 육상전투를 하지 못할 거란 착각때문입니다.
전쟁이 벌어지자,그것은 곧 오산이란 것이 드러나죠.일본은 긴 내전으로 화약무기인 조총과 조총의 긴 장전시간을 커버할 보병전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전쟁과 동시에 내륙을 치달렸고,그길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고속도로와 일치합니다.얼마나 치밀하게 연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렇게 해서 해상을 맡긴 별볼일 없는 장수에 이순신이 뽑힙니다.이마저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으나(초고속 승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백의종군한 무관이 수사의 자리에 오른것이니)선조는 밀어붙입니다.

그러나,선조의 마음이 변한 것은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기 시작하면서입니다.임금은 백성들몰래 도성을 빠져나가 평양을 거쳐 의주에서 명나라 망명을 준비했었습니다.정치적으로 부담이 심했던 그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지킬 명분이 필요했습니다.그것은 바로,의주에서 명나라로 보낸 사신들이 명나라 군대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전황이 변했고,곧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는 논리로 표현되었지요.

임금은 전쟁영웅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순신은 그의 논리에 치명적인 인물이었고,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듯 보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균은 이순신과 비교할 수 없는 졸장부였고, 그나마 경상우수사의 자리에서도 쫓겨나 충청도 어름의 별볼일 없는 한직을 전전했습니다.전쟁중에 무관이 전장과 멀리 있다는 것은 공을 세울 기회가 없다는 뜻이고,그것은 출세길과는 먼 좌천이란 뜻이지요.

그러나,선조는 슬금슬금 원균을 총애하기 시작합니다.차츰 원균에게 말도 안되는 명분을 주어 포상을 하고,원균을 용감한 장수이며,거제도에 웅크리며 버티고 있는 일본을 끝장낼 유일한 장수가 되었지요.

물론,그후 이순신의 억울한 옥살이,원균의 통제사 부임과 참패,이순신의 백의종군..명량,노량 해전,종전으로 선조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더욱 명확해졌고요.

전쟁이 끝난 뒤,선조는 다시 한번 이순신을 폄하해야 했지요.전쟁영웅에 대한 국민적 믿음이 클 수록 왕권을 지키는 그의 명분이 초라해질테니까요.그래서 그는 여전히 나라를 구한 것은 전쟁영웅이 아니라,명나라 군대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을 도와 의주까지 갔던 신하들에게 ‘호종공신’을 포상하면서 전장의 영웅들에게 주어지는 ‘선무공신’에 비해 우대했습니다.숫자만 보아도호종공신이 86명이고,선무공신은 1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남해안을 따라 불고 있는 국민들의 엄청난 이순신 추모열기를 잠재우기 위한 간곡한 청원에 따라 단 한 개의 사당을 만들어주었을 뿐인데,그마저도 이억기와 공동 배향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이순신의 역할을 언제나 격하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조반정은 북인에 대한 서인과 남인(이율곡과 이황계열)의 반란이고 그둘의 연립정권입니다.그리고 이순신은 북인의 母당이랄 수 있는 동인계열이었고,원균은 서인계열이었습니다.
그런만큼 오랫동안 이순신은 묻혀왔었는데,다시 그가 부활한 것은 서인들에 의해서입니다.그만큼 그들에게 이순신이 절실하게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 이후,백성들은 깊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었지요.한낱 오랑캐 따위로 무시하고,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만주의 여진족에게 임금이 무릎을 꿇고 항복문서를 바친 사건이니 왕권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이순신을 부활기켜냄으로써 인조임금은 백성들의 눈초리를 경복궁에서 압록강너머 청나라로 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신의 조카는 이때 행장을 만들 기회를 가졌고,비로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그의 자손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돌아갔고요.
인조의 이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어서,오랫동안 서인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몰아붙임으로써 권력을 유지했던 것입니다.훗날 북한과 관계도 없는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권력을 유지할 목적을 가진 박정희의 스승은 인조였던 셈이죠.

이순신 신드롬이 서서히 멈춰갈 즈음,정조임금은 그를 다시 부활시켜 냅니다.
정조시대는 ‘민족주체화’시대이기도 해서,수많은 영웅들을 찾아내어 ‘전기’를 짓는 일을 국책사업으로 했습니다.성리학의 이상주의에 빠져,송나라 영웅이나 중국 영웅들만 최고로 여기는 유림들에 대한 정조의 반격수단이기도 했고요.

특히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부모에게 한없이 효도하고,나라에 끊임없이 충성을 맹세한 이순신은 강력한 힘으로 왕권에 도전해오는 노론들에 대한 적절한 차단막이 되어줄 것이라 여겼습니다.그래서 이순신에게 무관 최초의 ‘영의정’추증사업을 합니다.수많은 허접한 문관들에게도 남발되던 영의정추증이 선조때도,심지어 인조때도 아닌 정조때에 이루어진 것은 정조임금이 의지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해방이후,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무관 박정희에게 이순신보다 더 효과적인 인물이 있을까요? 그는 이순신과 자신을 오버랩하면서 전국에 모든 이순신관련 유적지에 기념관을 세우고,기념비를 세우는 작업과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는 일을 합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이순신이고,이순신장군의 전기를 읽으면서 어린날 꿈을 키웠노라고 말합니다.그런 그가, 광복군 장교가 아니라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을 이순신이 과연 납득할까요?

아무튼....

군사독재정권의 종식과 더불어 다시 이순신 신드롬은 막을 내리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국에 이순신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아이엠에프가 끝난 뒤,세계화의 칼바람 앞에서면서 한국민들은 이순신을 되살려내었습니다.그리고 그의 손에 칼을 다시 쥐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기수를 돌려,한양으로 가시오!”

모든 이순신 신드롬에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있습니다.오늘날,우리가 부르짖는 이 신드롬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길 선택하기 보다,빠져나가는 일본군을 그냥 놔두고,한양으로 향해 선조를 몰아내는 쿠테타를 했다면 성공했을까요?천만의 말씀입니다.
서인은 이미 힘을 잃었고,동인 정권은 실용정부였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정신적으로 치유하려던 서인들과 달랐습니다.전쟁영웅들 중심의 동인정권이 들어섬으로써 백성들이 효과적으로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광해군의 실패였고,그것은 그들의 정치적 미숙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이순신이 이것을 반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그가 권력을 잡아도 동인정권일 뿐이니까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순신에게 겨눴던 선조의 칼날에 몸서리를 치고,선조의 코앞에 이순신이 칼날을 겨눠주길 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이번 선거의 결과가 그 해답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Timeless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1-17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