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7/01/11 04:09:05
Name 시퐁
Subject GG를 누르는 그 순간까지.(프로리그 결승전을 보고)
프로리그 결승, 마재윤의 틈을 내어주지 않는 승부에 손을 들었다. 이번엔 우승이다, 그래 1년이 넘도록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지 않은가. 그 GO가!! 그 CJ가!!

항상 그들은 우승후보였다. 피망배 프로리그 이후, 강민의 이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던 많은 이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팀리그 결승에 오르고 한번의 준우승, 한번의 우승을 일구어냈다. 프로리그에서는 항상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정규 시즌 1위도 차지한 적 있다. 그들은 강팀이었다. 팀의 주축이었던 강민이 이적해도, 박태민과 전상욱이 떠나가도 그들은 언제나 강팀으로 불렸다. 그들의 뒤에는 항상 BIG 4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아도 연습 환경이 열악해도 연봉이 없어도 그들은 강했다. 또한 그 색깔이 남달랐기에 팬들은 떠나지 않았다. 항상 GO의 팬이었고, CJ의 팬이었으며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을때마다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고질적인 문제가 '변칙에 약하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상대는 기발한 전략과 전술로 흔들었고 언제나 정공을 선호하던 그들은 쉽게 무너져내렸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것이 정공과 전투력으로만 승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리그라는 것이 이제는 '어떤 상대냐'가 크게 좌우하는 엔트리 싸움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 개개인의 능력은 출중할지라도 상대가 어떤 수를 들고 나올지 모르는 이상 절대적인 승리를 장담할 순 없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공을 선호했고 운영으로 승부를 걸었으며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방식을 응원했다. 그것은 내가 그런 승부를 좋아한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좋아한다는 이유,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자신의 방식으로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가.

엔트리를 보았을때 나는 솔직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HERO의 팀플레이의 조합도 무언가 한 수를 들고 나온것 같았고 개인전도 평범하지 않았다. 변수가 많은 저저전이기에 마재윤의 승리를 의심했고 서지훈은 박성준에게 중요한 경기에서 진 적이 있다. 박지호가 앞마당을 가져가고 박성준이 예상치 못한 빌드를 선택했을때 나는 두려웠다. 그들의 패배가 두려웠다. 지는 모습이 보기 싫어 텔레비젼의 전원을 꺼버리고 싶기도 했다. 리모컨을 들었다 놓기가 수차례였다. 마지막 경기, 팀플에서 김민구가 무력화되고 주현준 홀로 남은 상황에서 상대의 저그와 프로토스 모두가 세력을 키워가고 있을때 나는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역전을 바랄 수 있겠는가. 드랍쉽으로 지속적인 견제를 하고 앞마당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너무나도 희박한 가능성이고 상대팀의 기세가 그 가능성을 짓누르지 않았던가. 나는 화가 났고 두려웠으며 그들이 패배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전원을 내리지 않았다. 리모컨도 텔레비젼 위에 올려놓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중계진의 흥분한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고 뮤탈리스크가 요란하게 날아들었지만 나의 방에 드리워진 침묵은 깊었다.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그 마지막 순간을 볼 의무가 있다. GG를 누르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패배 이후 그들의 표정을 가슴에 담아둘 의무가 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무대 뒤로 퇴장하고 엔딩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그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리라. 나는 팬이니까. 언제나 그들의 팬이었고 앞으로도 그들을 응원할 테니까.

응원하는 선수가 질 수도 있다. 응원하는 팀이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멀어질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팬은 그래서는 안된다. 리그 최하위로 떨어지더라도 선수 전원이 PC방에 있더라도 응원해야 한다. 처음 팬이 되게 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처음의 감동을 마음에 담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나는 단 한순간도 후회해 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팬인 것이 언제나 자랑스러울 것이다. 뒤를 돌아보기 시작한다면, 과거에 묶이기 시작한다면 시간이 흐름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와 그들은 같은 시간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미래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미래와 함께 할 것이며 더불어 언젠가 나에게 감동의 순간을 선물해줄 것을 믿기에 언제나 희망을 꿈꾼다. 그들이 가장 멋진 곳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임을 믿는다.

팬에게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논리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진실의 감동이다.
* 퍼플레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1-1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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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용
07/01/11 04:19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글입니다^^
원추~!! 추게로~!!
태바리
07/01/11 09:16
수정 아이콘
김민구 선수가 엘리되기 직전에 티비 끄고 리모콘 던저버린 제가 부끄럽습니다.
CJ 화이팅!!!
buffering
07/01/11 09:56
수정 아이콘
제가 좋아하는 팬의 모습입니다. 멋집니다. -_-)b
나두미키
07/01/11 10:14
수정 아이콘
추게로!!!!
아쉽습니다 CJ와 SK의 결승을 기대했건만...
07/01/11 10:16
수정 아이콘
저도 CJ 응원하는 입장이긴 하나 지금 상태로 우승후보는 될수있어도
우승은 힘들다고 봅니다.
강민 이적 이후로 팀자체적으로 전략적인 모습을 찾아볼수가 없죠.
경기나, 엔트리를 봤을때 말이죠.
07/01/11 13:5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cj팬은 아니지만 여러 구절들이 가슴에 와닸네요...
맞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선수가 잘해서 좋아하고 우승한다고 응원하는게 아니거든요..
Withinae
07/01/11 14:27
수정 아이콘
오호...대단한 글입니다. 팬심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타마마임팩트
07/01/11 18:14
수정 아이콘
CJ가 축구로 따지자면 잉글랜드 정도 되는걸까요?
저도 CJ팬이긴 하지만. 변칙에 약한. 말하자면 만년 우승후보?!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니까 이해해주세요 ^^:;
홍승식
07/01/11 19:38
수정 아이콘
1주일 후에 메인화면 좌측 상단에서 볼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
夜空ノムコウ
07/01/13 08:15
수정 아이콘
TV를 확 꺼버렸고 지금도 결승 재방송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감동적인 글이네요.
07/01/13 11:13
수정 아이콘
저도 제가 응원하는 상대가 불리해지거나 패배하면 리모콘으로 TV를 끄고 재방송도 안보고 그랬었는데...
이 글을 보니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멋지네요.
니구려우동
07/01/13 11:50
수정 아이콘
저도 결승을 차마 못보겠던데 말입니다. 나오면 그냥 채널 휙 돌려보기도 하고...하아. 뭔가 참 슬프네요. CJ. 그래도 다음에는, 우승하는겁니다!
이재열
07/01/13 12:16
수정 아이콘
뭐 중요한건 아니지만.. 서지훈선수 4강에서 박성준선수에게 실신 당한적이 한번 있죠..
CoNd.XellOs
07/01/14 19:21
수정 아이콘
와, 멋진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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