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6/01 00:47:43
Name AhnGoon
Subject [잡설]난데없이 클래식과 저그의 만남;;;
언제부턴가 마재윤 선수의 별명이 '마에스트로'로 굳어진 것 같더군요...
그리고, 저번 MSL에서, 마재윤 선수와 박정석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가장 따라하고 싶은(!) 저그 선수는 3명입니다.
1. 박성준, 2. 박태민, 3. 마재윤
(뭐 평생 흉내도 못내지 싶습니다만... -_-;)
그리고 이렇게 연결해봤습니다.

박성준 - 피아노 에뜌드(연습곡)
박태민 - 소나타
마재윤 - 심포니(교향곡)

1. 박성준
에뜌드(etude)는 피아노의 기교를 익히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자체로도 상당한 예술성을 지닙니다. 보통 쇼팽의 연습곡 시리즈들이 유명하지만, 최고의 난이도를 지닌 연습곡은 보통 리스트의 연습곡이라고 하더군요.

보통의 연습곡들은 엄청난 빠르기와, 난이도가 높은 화음의 정확한 운지, 그리고 복잡한 리듬을 정확하게 쳐 내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에뜌드 연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교파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듣게 되면, 저절로 '이 복잡한 곡을 라이브로, 그것도 한번도 안틀리고 친단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박성준 선수의 경기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연주를 듣고 있을 때의 기분이 듭니다. 일단은 경기가 엄청나게 스피디하고, 상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몰아치면서도 한치의 실수도 없는 컨트롤과 함께, 절대 뚫을 수 없는 병력 규모인 듯 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상대방의 방어진을 무너뜨립니다. 한번이라도 미스가 나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그냥 끝장일 듯도 한데, 왠지 박성준 선수가 컨트롤 하고 있으면 실수를 안 할 것 같은 믿음이 생기죠.

2. 박태민
소나타는 비교적 엄격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악곡입니다. 보통 독주곡이나 중주곡으로 이뤄지는데, [제시 - 발전 - 제현 - 종결]의 형태를 가지고 있죠. 제시부에서는 비교적 느릿하면서도 전체적인 곡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부에서는 그 제시된 주제를 리듬과 선율 등을 변주해 가면서 내용을 확장시킵니다. 제현부가 되면 여러 가지로 전개된 변주들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곡의 짜임새를 만들게 되고, 종결부에서는 앞에서 이루어진 모든 전개들을 마무리 짓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어떤 해답 같은건 없습니다.

우리가 보통 많이 아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비창', '열정' 등을 들어보시게 되면 제가 말씀드린 저 4단계의 형태를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쉽게 말해서, 앞에서는 비교적 느릿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주제를 제시하고, 그 연주들이 다채로운 빛깔로 펼쳐지다가 제현부가 되면 날카롭게, 또는 물밀듯이 몰아치는 연주가 이어지고,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서 곡이 마무리되게 됩니다.

박태민 선수의 경기가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상대방은 갖혀있죠. 그냥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던 형식을 따라가는겁니다.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반 이후의 박태민 선수의 쏟아지는 물량을 막고 또 막고... 하다가 결국 굶어죽든 병력이 밀리든... 해서 지는거죠. 가장 대표적인 경기가.. MBC에서도 자주 보여주는 당골왕때의 이윤열-박태민의 그 경기라고 하겠습니다.

3. 마재윤
교향곡의 경우에도 소나타의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여러 악장으로 이뤄진 클래식 곡의 형식은 대동소이하다고 보셔도 됩니다. 낭만주의 (쇼팽, 슈베르트 이후)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이 소나타의 형식도 많이 바뀌긴 합니다만...

교향곡의 가장 큰 특징은 '화음'에 있습니다.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등등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서 멋진 소리를 만들어내죠.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 아니라면, 그냥 들어서는 지금 어떤어떤 악기들이 소리를 내고 있는지조차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많이 아는 '카라얀'이라는 지휘자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이 점에 있는데요. 악기들의 조합 뿐만 아니라, 그 위치나 소리 크기, 악단의 구성 등등을 적절히 조화해서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데 아주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마재윤 선수의 경기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일단 하이브 테크는 기본이고, 언제나 최선의 조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맨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 박정석 선수와의 경기에서도, 저그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유닛을 다 활용했었죠? 왠만해서는 잘 안사용하는 퀸까지 말입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교향곡 연주를 들으면서 거의 마약에 빠진 듯한 '멍~'한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마재윤 선수의 경기 운영은 그런 마력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P.S: 헤비메탈 팬 분들이라면, '교향곡'하면, 메가데스의 'Symphony of destruction'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네요... '파괴의 교향곡'이라... 왠지 마재윤 선수와 어울리기도 합니다. ^^;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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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01 01:57
수정 아이콘
저는 테란을 그나마 가장 잘하므로 따라하고싶은 선수는
1.김정민선수 2.김정민선수 3.김정민선수 4.김정민선수
그런데 정말 마재윤선수... 괴물급인거 같더군요 (저그를 한없이 못하는저로써는 정말이지 부럽답니다 ㅠ)
06/06/01 02:18
수정 아이콘
전 플토를 가장 따라하고 싶은선수가
강민, 박지호, 박용욱 선수입니다.
테란유저이지만 -_- 이분들의 플토는...뭔가 틀려요 흉내를 낼수가없어요

흉내냈다가 무난한 안드로메다 구경하고옵니다.
MeineLiebe
06/06/01 06:07
수정 아이콘
비교적 정확한 비유이군요.
NeVeRDiEDrOnE
06/06/01 08:2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교향곡은 물량형 플레이어에 더 어울릴 듯 싶습니다. 조화는 오케스트라보다는 실내악의 본질이죠. 오케스트라는 아무레도 그 물량에 따른 소리가 첫번째 특징이고요.
06/06/01 08:43
수정 아이콘
NeVeRDiEDrOnE// 동감합니다. 근데, 마재윤 선수를 실내악에 비유하기엔 운영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요;;
06/06/01 23:17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댓글이 안-_-습이군요.. 클래식 얘기는 아무래도 공감대를 얻기가 힘들었을까요? ㅠㅠ
06/06/02 10:30
수정 아이콘
으하하...댓글이 진짜 안습;입니다.
전 안심팬이라서 처음에는 "연~습 고오오옥?" 하고
눈썹을 치켜뜨고 봤는데...맞는 말씀만 주루루룩.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교향곡'이란 우리가 보는 '경기'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와 '현악'이 어우러지는.
(저그와 테란, 플토가 만들어 내는 '화음'이랄까..ㅡ,,ㅡ;;)

비유상으로 엄격하게 재단해보자면,
피아노 연습곡에서 피아노 소나타..면 교향곡은 조금 점프가.
(하기사 마재윤 선수는 그만큼 신인류적 저그이긴 하지만서도..)

이에 덧붙여 박명수 선수는 어떤 저그일까요.
바하의 캐논을 연상시키는 선수라고 하면 어울릴까요?
단순하고 과격한 연주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완벽한 화음?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06/06/02 10:45
수정 아이콘
spangle// 박명수 선수의 경기는... 뭐랄까,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라는 곡에 참 잘 어울리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초반 3해처리의 조용하고도 차분한 도입부가 지나자 마자.. 곡이(경기가) 끝날때까지 정신없이 몰아치는 연주(공격)이 일품인 선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
뭐, 중간 단계를 너무 뛰어넘은 것 같다면.. 제가 언급하지 않은 조용호 선수나, 홍진호 선수, 변은종 선수.. 등등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 선수들의 스타일이나 특성등을 제가 잘 모르는고로... -_-;; (네, 저 스타 질레트때부터 봤습니다 ㅠㅠ)
루크레티아
06/06/02 11:02
수정 아이콘
박성준 선수와 마재윤 선수의 비유는 정말 제대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박태민 선수는 착착 짜여진 소나타보다는 은근히 끌어들이는 콘체르토가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은근슬쩍 페이스로 말아넣고 잡아먹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느리디 느린 첼로와 바이올린의 콘체르토를 들으면서 어느새 빠져버리는 느낌이에요. ^^

그리고 좋은 글에 사소한 태클이지만 갖히다가 아니고 갇히다 입니다 ^^;;
06/06/02 11:16
수정 아이콘
루크레티아// 허걱! 그렇네요. 하필이면 에이스 게시판으로 온 후에서야 오타를 발견하다니요~ (이젠 수정이 불가능해요 ㅠㅠ)
콘트롤 아티스
06/06/02 15:06
수정 아이콘
음악을 잘 모르시는 분이 쓰셨군요
06/06/02 15:14
수정 아이콘
콘트롤 아티스트// 네. 그냥 클래식 음악을 듣는걸 좋아하는 애호가 정도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태클도 많이 들어오고, 악플도 달리지 않을까 나름 기대를 했는데, (네, 낚시글이었어요. ㅠㅠ) 너무 반응이 안습인지라;;
06/06/02 16:26
수정 아이콘
클래식과 저렇게 비유가 될 수 있네요~ +ㅁ+! 잘 읽었습니다 ^^
사고뭉치
06/06/02 17:00
수정 아이콘
어머어머, 전 너무 재미나게 읽었는걸요! 잘 읽었습니다! ^^*
NeVeRDiEDrOnE
06/06/02 20:37
수정 아이콘
ace계시판 입성 축하드리고요, 적어도 전공자인 저보다는 잘 아시는 것 같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_^;;
음악세계
06/06/04 11:27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ace 게시판에 오신걸 축하하구요. 다만 본문에 큰 오류가 있어서 지적해 드립니다. 소나타는 제시-발전-'재현' 입니다. 주제가 다시 한번 출현해서 재현부 라고 하는 것이지요. 제현이 아니구요^^ㅋ ace게시판은 수정이 불가능 하나요...??ㅋ

그리고 참고로 소나타라는 것은 음악의 작곡 형식이지, 심포니와 같은 음악 악기의 구성이 아닙니다. 피아노 소나타도 있고, 바이올린 소나타도 있고... 심포니는 악기의 구성이 관현악이라는 소리고 음악의 스트럭쳐는 소나타 형식이 될 수도 있고, 변주곡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아 하나 더, 에튀드는 한 두가지의 테크닉을 집중적으로 곡을 이끌어가는 곡의 형식!! 이라고 보면 되구요, 소나타 처럼 음악의 형식이군요. 심포니만 유독 음악의 형식이 아니라서...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혹시나 해서 적어보았습니다~. 하긴 심포니의 1악장은 거의 소나타 형식이구요. 다른 악장에서 변주곡이 나왔다가, 론도 형식도 나올 때도 있고, 워낙 다양해서요~ 아참 글 자체는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ㅋ
06/06/04 13: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06/06/05 02:03
수정 아이콘
음악세계// 네, 그런 지적을 받고 싶었습니다. 저도 전공자거나 깊게 공부한 것은 아니라서 글 쓰면서도 조금은 긴가민가 했거든요 ^^; 그냥 작곡가들 위주로 곡을 찾아서 듣는 수준이라,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는 말 하기 쑥스럽구요. (론도랑 소나타의 형식도 사실 좀 헷갈립니다..;;) 뭐, 단지.. 연습곡이랑 환상곡, 피아노 소나타는 어떻게 다른거고, 바로크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들의 분위기는 대략 이렇게 다르다... 뭐 이정도만 안달까요?

그래서, PGR이라는 곳에 들르시는 분들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고려해 볼때, 이런 식으로 미끼를 던지면,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 몰려들어서 뭔가 멋진 댓글들을 달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올린 글이었는데, 에이스 게시판에까지 입성하니.. 좀 부끄럽네요 ^^;
NeVeRDiEDrOnE
06/06/05 05:50
수정 아이콘
음...음악인들 중에는 지금까지 스타하는 사람들 거의 없더군요...아무래도 시간 문제때문인지...

제친구들중에서도 지금까지 스타하는 사람들은 한두명 뿐인데 그마저도 pgr이나 pgtour는 들어보지도 못한 공방양민이여서(여태까지 하면서 뭘 했는지ㅠ.ㅜ) 저도 난감합니다-_-;;


그리고 소나타와 론도는...쉽게 생각해서 소나타는 A (a, b) B (c= a+ b) A' (a', b') Z(a'') 이정도구요 (Z는 제맘대로 코다 하핫^^)
론도는 a b a c a d ...a 이렇죠^^ 론도는 단순무식하게 같은 요소 하나가 하나건너뛰어서 계속 나오고 그 사이에 다른것이 껴있으면 무조건 론돕니다^^;;
물론 나중에는 a b a c(a'' b'') a' b' a 이런식으로 소나타형식과 섞여서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지만요... 대개는 들어서 구분하기 쉬운 편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소나타형식은 짜임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좋아서 한 곡의 1악장에 주로 많이 쓰이고 론도는 비교적 단순하고 경쾌하고 청중 효과도가 높아서 마지막 악장들에 주로 쓰였죠^^;


음악감상 화이팅입니다~ ^^;

P.S. 한가지 팁인데요... 조금 귀찮더라도 음악감상할때 실내악곡/합주곡이면 항상 총보 빌려다가 꾸준히 같이 보시면 상당한 수준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06/06/05 09:51
수정 아이콘
NeVeRDiEDrOnE// 감사합니다. 앞으로 음악감상 할 때, 말씀하신 부분들을 좀더 고려해서 들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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