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12/11 16:59:16
Name epic
Subject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1)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최초의 지구 최남단 도달을 목표로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은 경쟁을 벌였습니다.
둘 모두 남극점을 밟았지만 아문센이 34일 먼저 도착한데다 스콧은 돌아오는 도중 동반한 대원 4명 모두와
죽음을 맞아 경주는 아문센 - 노르웨이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드라마틱한 역사적 사건을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고산등반 - 우에무라 나오미 - 극지탐험 순으로 이 분야에 흥미를 느껴 몇몇 자료들을 탐독하고는 이 오랜
사건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부질없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파고들다보니 이 탐험가들의 평가가 국내에서 상당히 심한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 당대 초강대국 영국의 영향력 -와 더불어 극히 적은 관련 번역서의 저자(와 역자)들이
자신의 관점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온갖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덧붙이고, 이 빈약하면서도 굴절된 자료들을
그나마 단편적으로 접한 네티즌들의 섣부른 평가가 확대 재생산 되는 바람에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역사에도, 아니 모든 분야에 흔한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할만하지만 저는 이
탐험가들의 행적을 글로나마 따라다니다보니 일종의 감정 이입을 경험했고 그래서인지 그런 왜곡된 지점들에
닿을 때 마다 분노에 가까운 격한 감정이 쌓여나가는 바람에 조금이나마 바로잡았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대단한 권위자인양 굴 생각은 없으며 애초에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저또한 그저 빈약한
국내의 2차 자료들을 조금 접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설명하거나 주장하는 것들 또한
오류가 있거나 편견에 의한 억지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학술 논문에 준하는 온갖 디테일을 세심히 배치하고 출처를 일일이 기록하는 작업을 할 정도의
의욕 또한 없습니다.감안하여 가볍게 읽어주시고 혹시라도 인용할 때 주의하시길.

이어질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먼저 남극점 탐험의 배경과 풍경을 간단히 그리고서 1~3차 탐험의 구체적인
과정을 적고 개인적인 평가를 덧붙인 후 부록으로 책과 인터넷의 왜곡된 부분들을 지적해 볼 생각 입니다.

중간에 글의 흐름과 관련 없지만 참고할만한 내용은 [주 : ]로 표기하겠습니다. 전체적인 흐름 위주로
읽어나갈 분들은 건너 뛰시길.


0. 출처

이 글의 대부분은 세 권의 책을 주로 인용하여 작성 됩니다. 독일인이 쓴 <남극점 대결, 아문센과 스콧>,
스콧이 직접 쓴 <남극일기>, 그리고 영국의 '아문센 전문가' 롤랜드 헌트포드의 <섀클턴 평전>.

(그밖에 아문센을 소재로 쓴 리더십 교재 <아문센 마인드>, 아문센의 자서전 <아문센 탐험기> ('탐험가로서의
나의 삶'이 원제), 몇 권의 남극 관련 논픽션, 한 장 정도(책의 1/8 내지 1/20 정도)를 할애하여
'아문센-스콧'에 대해 쓴 몇몇 책들, 그리고 최근 각광받는 (남극점 정복과 무관한) 섀클턴의 2차 탐험에
관한 몇 권의 책들이 참고가 되었으며 인터넷의 자료들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주 :
그런데 (뒤에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애석하게도 저 세 권의 책들은 그 내용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남극점 경주 자체를 책 한 권 분량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책 <남극점 대결, 아문센과 스콧>은
당시의 사진들과 각종 인용문들 덕에 그럴싸해보이긴 하나 실상은 거의 소설 수준의 책입니다.

('거의 유일'이란 표현은 제가 절판된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책들을 철저히 찾아보지 않은데다 특히
아동~청소년용 서적들을 죄다 배제했기 때문 입니다. 이 분야는 특성상 그런 책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데
그 대부분이, 아니 전부가 내용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고 또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이 많아
온전한 지식을 얻는데는 별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독일인이 쓴 이 책은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 둘 모두에 신랄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스콧은 무능력하면서 우유부단한 인물로, 아문센은 냉혹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렸습니다.

둘 다 어느 정도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너무 단순하고 선명하게 그려짐으로서
소설속 캐릭터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소설적 재미'가 더해진데다
양 쪽을 다 까는 관점은 (따져보면 스콧 쪽이 더 가혹한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건 또 원래 그럴만한지라...)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책에 좋은 평가를 내린 분들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 '소설적 재미'를 위해 왜곡된 부분들이 너무 많은지라 이 책이야말로 앞서 말한 굴절된 평가의 주범일
소지가 높습니다. (더구나 번역도 꽤나 성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극일기>의 번역자 서문을 읽었을 때 느낀 분노는 이 책의 해악?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지게 했습니다.
본문이 아닌 이 서문을 인용한, 아니 표절한 인터넷의 단편들을 보자면 그런 감정이 더욱 깊어 집니다.

본문은 단순히 번역한 일기문이며 어찌보면 희귀한, 번역된 1차 자료이지만 이또한 문제가 많습니다. 먼저 최초에
영국에서 출판되었을 때에 이미 상당한 편집을 거쳤습니다. 이는 분량이 너무 많고 일반 독자가 거의 흥미 없을만한
내용들(반복되는 기상 관측치 등)이 포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스콧에게 불리하게 평가될 만한
내용들이 (자책한다든지 동료를 욕한다든지) 철저한 검열을 당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책이 국내에 번역되면서 다시 분량이 대폭 줄었으며 (중간중간 몇 달 분을 2 페이지 정도의
요약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서문에서 당당히 밝힌 번역자의 철저한 스콧 옹호 관점 때문에 번역된 일기문 또한
또 한 번 검열을 거치지 않았는지 상당히 의심이 갑니다.


방대한 <섀클턴 평전>은 비교적 믿음이 가는 책입니다. 저자는 본인이 기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섀클턴의
치부나 약점 따위도 적나라하게 기술했으며 전반적인 배경 설명과 디테일이 상세합니다. 그가 영국인임에도
스콧에 철저하게 비판적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는 '아문센 - 스콧 대결'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섀클턴' 평전이니까요. 그가 먼저 썼다는 <탐험가 스콧과 아문센>이 번역되지
않은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스콧에 대한 악평이 종종 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들에 대한 소개와 평가는 나중에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1부. 남극점 탐험의 배경

1. 남극점 탐험 연대표

지명, 날짜 등은 다 무시하고 출발점과 루트를 표시한 선만 보시기 바랍니다. (자세한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지도상의 루트를 따라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에 도전한 때가 1911~1912년인데, 그 전에도 두 차례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남극점에 도달한 두 탐험대는 사실상 같은 시기에 도전했으므로 한데 묶으면 총 3차에 걸쳐 남극점에 도전을 했다는거죠.
이는 1901 ~ 1912년 사이의 일입니다.

1차 : 스콧(영국) - 디스커버리호(섀클턴이 대원으로 참여) 1901 ~ 1904년, 남위 82도 17분 기록

2차 : 섀클턴(영국) - 님로드호 1907 ~ 1909년, 남위 88도 23분

3차 : 스콧(영국) - 테라노바호 1910 ~ 1913년, 남위 90도 도달 후 복귀 중 사망
      아문센(노르웨이) - 프람호 1910 ~ 1912년, 성공


(남극 대륙에 최초로 사람이 상륙한 것이 1895년입니다. 바로 그 사람인 노르웨이의 보르츠크레빈크가 1900년에 개썰매와 함께
남위 78도 50분까지 갔지만 이는 빙하 탐사가 목적이었을 뿐 남극점을 향한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3차 탐험 이후
거의 반 세기 동안 아무도 남극점을 밟지 않았습니다.)

디스커버리호 등은 선박 이름 입니다. 탐험 기간이 3~4년인데, 이는 영국/노르웨이에서 출발했다가 돌아오기 까지의 기간을 다
합친 겁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실질적인 남극점 도전 자체 - 육상에서,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여 남극점에 도착하거나 도중에 포기한 채 다시 돌아오는데
걸리는 기간만 놓고 보면 4개월 남짓 입니다. (완전히 성공한건 3차 때의 아문센이 유일하므로 애매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기간은 반드시 여름이어야 합니다. 극지에서는 겨울에 해가 아예 안뜨죠. 어두운데다 기온이 너무 낮습니다.

그런데 육상 탐험 말고도 반드시 여름 이어야 할 시기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물론 이건 다 그 당시 기준 입니다.)
상륙하는 시기 입니다. 남극 대륙은 바닷물이 얼어붙었다 깨지고 합쳐지고 떠다니고 하는 해빙이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해빙이 많이 줄어들고 약해지는 여름이어야 안전한 상륙이 가능합니다. (당시 극지 탐험가에게는 해빙에 갇혀 배가
오도가도 못하다가 급기야 조여오는 얼음의 압력에 난파되는 위험이 늘 따랐습니다.)

전형적인 그 시대의 남극 탐험 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초가을 경에 출발하여 한겨울에 남극에 도착 합니다. (이러면서 한 해를 넘기죠.) 그런데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가므로
계절이 반전 됩니다. 한겨울은 이제 한여름이 됩니다. 상륙한 다음 화물을 하역 하고 캠프를 건설하고는 여기서 1년을
보냅니다. 다시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거죠. (또 한 해가 넘어가 3년차가 됩니다.)
여름이 오면 썰매를 끌고 탐험을 떠났다가 돌아온 다음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 옵니다.

두 가지 질문 :

(1) 왜 여름에 상륙한 다음 바로 출발하지 않고 1년이나 다시 여름을 기다리느냐.

보통 상륙 시기는 한여름이고 탐험을 떠나는 시기는 초여름 입니다. 이는 늦봄 정도의 해빙에도 상륙이 어려웠기 때문이었겠죠.  
상륙 - 기지 건설 후 남은 여름은 얼마간 육상으로 남하하여 전진 저장기지를 설치하는데 보냅니다. (라곤 하지만 사실은
3차 때에만 이랬습니다.)

(2) 스콧의 두 번의 탐험은 왜 3년이 아닌 4년이 걸렸나.

1차 시기에는 3년차 까지의 일정을 마치고도 디스커버리호가 해빙에 갇힌 상태여서 구원선이 왔지만 (영국 왕립지리협회의 지시로)
귀국을 거부하고 과학탐사를 위해 1년을 더 있다가 해빙을 깨고 디스커버리호로 귀환 했습니다.
그리고 3차 때는 남극점 도달 후 돌아오다가 죽음을 맞았죠. 그가 돌아오지 않자 나머지 대원들이 다시 1년을 (정확히는 8개월)
보낸 후 3구의 시체가 있는 텐트를 찾아내 장례를 치루고 돌아왔습니다.

영국 탐험대는 3번 시도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까지 따지면) 다 실패했고 노르웨이는 한 번에 성공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영국 탐험대의 무능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하지만 아문센은 탐험 경력이 전무했던 스콧, 섀클턴에 비해
남극에서 겨울을 보낸 경험에다 최초의 북서항로 항해로 명성을 얻은 베테랑 탐험가 였습니다. 그리고
아문센의 성공에는 앞서 두 차례의 시행착오(후 출판된 책)가 크게 기여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죠. 특히 아슬아슬하게 실패한
섀클턴의 2차 탐험에 대해 아문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섀클턴은 스콧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 (탐험 완전 실패와 극적인 귀환 성공) 1914년의 무모한 남극대륙 횡단 탐험 덕분에
다시 각광받고 있지만 그의 실패한 남극점 탐험 시도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탐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은 실제로 경쟁이 일어난 3차 탐험 때의 준비와 방식 등만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 하곤 하는데, 제대로 평가하려면 앞선 2차례의 탐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특히 스콧의 (도착)성공과 (귀환)실패는
섀클턴의 2차 탐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3차에 걸친 육상 탐험의 여정을 그리기에 앞서,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위해 시간을 돌려 남극 대륙이 발견되고 인간이
상륙하기 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배경지식 쌓기 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탐험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2. 남극 발견과 영국의 탐험가들

(1) 캡틴 쿡의 대항해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하기 약 140년 전, 영국 해군 소속의 제임스 쿡은 남극 대륙을 찾아 두 차례 긴 항해를 떠났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항해는 남극 대륙을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쿡이 찾아 헤맨건 정확히 말해 '남극대륙'이 아니라 '남방대륙'으로, 아직 탐험되지 않은 남반구 태평양 어딘가에 존재가
'가정'된 신세계 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유라시아 대륙에 상응하는 땅덩어리가 남반구에도 존재할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래 쿡은 '금성의 태양표면상 이동'이라는 천체 현상 관측을 명목으로 태평양을 향했지만 영국 정부의 비밀지령을 받은
채 였습니다. "남방대륙을 찾고 상륙하여 원주민을 만나고 육상을 탐험하라." 말하자면 콜롬부스가 했던 것과 같이
신대륙 식민지 건설을 위한 탐색과 기초 사업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쿡은 남방대륙의 유력한 예상 지점이던 남위 40도 부근을 따라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나 없는 걸 찾아낼 수는 없었죠. 하지만
영국은 포기하지 않았고 쿡은 다시 2차 탐험을 떠나 이번에는 더 남으로 내려가서 남위 60도 선을 따라 지구를 거의 두 바퀴
돌다시피 하며 탐색을 계속 합니다. 도중에 남극대륙에 상당히 근접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남극대륙의 보호막인 해빙에 막혀
결국 발견에 실패 합니다. (도달한 최남단은 남위 71도 10분 입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성과는 많았습니다. 식민지화에 적합한 '남방대륙' 같은건 없다는게 분명해졌고 당시 존재는
알려져 있었지만 거의 탐험되지 않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해안선이 대부분 확정 되었으며 원주민들과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가 대륙의 일부가 아닌 섬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 때 확인합니다.

남미 대륙 최남단 동쪽에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을 처음 발견했고 그 일대에 풍부한 바다표범의 존재를 알려 포획선들이
몰려들게 합니다. 이 포획선들은 훗날 남극권 탐험에 많은 기여를 합니다.
나중에 그가 탐험한 지역 모두 대영제국의 일부가 되죠.

쿡은 보고서에 남극대륙에 관한 예언 비슷한 글을 남깁니다. "남극대륙은 저 얼어붙은 바다 너머에 존재할 것이다.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갈 수 없는 불모의 땅일 것이다."


[주:
제임스 쿡은 다시 탐험을 떠나 이번에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 해협을 통해 북극권에 다녀오는 등 전세계의
바다를 누빈 해양 탐험가 입니다. 그의 탐험은 그 자체의 성과만으로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그밖에
오랜 항해에 따르는 두 가지 장애를 최초로 극복한 점으로도 유명 합니다.

먼저, 쿡의 선원들은 그전까지 없었던 초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아무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영국 해군이
라임주스를 본격적으로 배급하기 한참 전이었으며 아무도 괴혈병의 원인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쿡은 절인 양배추를
식단에 넣고 신선한 야채를 사들이는데 전력을 다하여 완벽한 예방에 성공 합니다. 더불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책,
배를 주기적으로 소독하고 환기시켜서 (비록 덕분에 혹사당하긴 했지만) 선원들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성공 합니다.

그리고 쿡은 크로노미터를 본격적으로 항해에 사용한 최초의 탐험가 입니다.
크로노미터는 그냥 보통의 시계에 불과 합니다. 경도를 알려면 기준시와 비교할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하는데 당대의 시계는
정밀도가 떨어져 경도를 측정하는데 쓸 수 없었습니다. 위도 측정은 비교적 쉬웠지만 경도를 정확히 알 길이 없어 장거리 항해는
되도록 해안선을 따라가거나 위도상의 직선 항로를 유지하는 등 많은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은
정확한 측량 기구에 현상금을 걸었고 영국의 시계공 해리슨은 무려 30여 년에 걸쳐 크로노미터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검증을 받는데 또 10여 년이 걸리는 바람에 그가 현상금을 받은 것은 말년에 이르러서 입니다.)
제임스 쿡은 2차 탐험부터 크로노미터를 사용하여 태평양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습니다.]




(2) 남극발견 - 이름에 '사우스'가 붙은 징검다리, 생뚱맞은 러시아 탐험대

먼저 남극 대륙 지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주로 왼쪽 상단의 1/4만 잘 보면 됩니다.




위도 60도와 70도 사이에 점선으로 Antarctic Circle이라는 선이 보일 겁니다. 약 66도 기준인 '남극권'을 표시한 것으로
남극대륙 대부분이 이 안에 들어가는데 왼쪽 상단의 길게 돌출된 부분, 그레이엄 랜드 - 남극 반도의 일부가 상당히 벗어나 있죠.
(남극대륙은 대충 코를 치켜올린 코끼리 머리에 닭의 몸뚱이를 한 동물의 형상인데, 그 코에 해당하는 지역 입니다.)

이곳이 남극 대륙의 최북단이며 남미대륙과 꽤 가깝습니다. 이렇게 여건이 좋다보니 최초의 발견 위치도 이 부근입니다.
길다란 남극 반도가 가르고 있는 인근 바다는 그 발견자의 이름에 따라 '웨들 해', '벨링스하우젠 해'라 불리고 있습니다.


다른 지도를 보시죠.




A : 사우스 조지아섬  
B : 사우스 오크니 제도
C :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
D : 알랙산더 섬

(구글맵을 편집한 것으로, 극지 부근이다보니 면적이 상당히 왜곡되어 남극대륙이 지나치게 크게 나와 있습니다. 상단에 삐죽
나와 있는 땅덩어리가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포함된 남미대륙 최남단 부분인데, 남극대륙의 면적은 남미대륙의 80% 정도 입니다.)


A가 제임스 쿡이 발견한 사우스조지아 섬입니다. 발견 이후 이 섬에서 바다표범의 남획이 시작되어 불과 10여 년 만에 씨가 말라
버렸습니다. (여기서 바다표범은 해표류 - 바다표범, 물개, 바다코끼리(코끼리 해표) 등을 총칭하는 겁니다. 주로 중국에
수출할 가죽을 얻기 위해 사냥했으며 바다코끼리에서는 기름도 채취 했습니다.) 포획선 선장들은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 헤매다
점차 남하하여 사우스 오크니 제도,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 등을 발견 합니다.

남극반도 인근의 탐험은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약 90년 전, 1820년 전후에 집중적 이뤄졌습니다. 주로 영국의 해표잡이배
선장들과 영국 해군의 주도하에 발견된 이 섬무리들에는 앞에 '사우스'가 달린 이름이 붙여져 그 국적을 명확히 합니다.
오크니 제도, 셰틀랜드 제도 등은 본래 영국 본토 인근 바다의 섬무리 이름 입니다.

그런데 정작 최초의 남극대륙 발견자의 영예는 러시아 탐험대에 돌아갔습니다. 제임스 쿡의 숭배자였던 러시아의 벨링스 하우젠은
두 척의 배를 이끌고 최초로 남극반도 서쪽을 탐험하여 알렉산더섬(러시아 황제 이름을 딴 알렉산도르 1세 섬)을 발견하는데
이 때 '해빙으로 둘러싸인 육지'에 대한 목격담을 기록 합니다.

당시에는 남극대륙은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아서 그도 자신이 발견한 것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후대에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인정받게 된거죠.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약 3일 후 영국 탐험대 역시 남극대륙 - 남극 반도의 최북단 지역을 목격합니다.
초창기 남극권 탐험은 미국의 파머 등 몇몇 예외 말고는 영국이 주도했지만 남극대륙 최초 발견자라는 기록은 러시아인이
세우게 됩니다.

남극 일대의 얼어붙은 섬들은 새로운 식민지 찾기에 혈안이 된 영국인들에게 별 매력이 없었지만 단 하나, 풍부한 바다표범이 그들을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남획으로 금새 씨가 말라버려 다시 무관심의 대상이 될 처지에 놓입니다. 이 위기?를 타파한 것은
또다른 생물 자원 - 고래 입니다. 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말이죠.


[주 :
남극 반도 끝단 인근의 섬 이름이 '엘리펀트섬' 입니다. 이 이름에는 저의 코끼리 머리 형상설을 지지하는 증거로서...가
아니라 '섬이 코끼리 해표 모양을 띠고 있다', '이 섬에 코끼리 해표가 많았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제 생각에는 후자가 맞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또한 남획으로 씨가 말라 버려서, 1915년경 표류 끝에 이 섬에 다다른 섀클턴의 탐험대원들은 줄창
쬐그만 아델리 펭귄만 잡아 먹었습니다. 섀클턴 탐험대에 참여한 과학자 중 한 명은 (탐험의 실패로 본래 계획된 관찰을 할 수
없었던 사정 때문에) 보고서에 이 때 잡아먹은 수 백 마리의 펭귄 위 속에서 나온 물고기들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남극권을 벗어난, 남극반도 인근의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의 한 섬인 킹조지 섬에는 여러 국가들의 (본토 기지 보다 마이너한)
남극 기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세종 기지 입니다.]




(3) 로스가 발견한 얼음 장벽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하기 70년 전쯤, 영국 해군 소속 제임스 로스는 자남극 관측을 위해 항해를 떠나서는 획기적인
발견을 합니다.



지도 아래쪽에 로스의 이름들을 볼 수 있죠.

저 '얼음색'으로 칠해진 '로스 빙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냥 텅빈 바다에 얼음이 떠있는 북극과는 달리 남극'대륙'은 엄연히 흙과 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땅'입니다. 그 땅은
아주 오랜 세월 쌓여온 눈이 압력으로 굳어진 얼음으로 뒤덮혀 있죠. (이렇게 대륙을 덮을 정도의 거대한 '빙하'를 '빙상'이라
부릅니다.)

'빙붕'은 빙하가 해변을 넘고 바다로 뻗어나가 생겨난 특이한 육지 입니다. 잘 이해가 안간다면 발코니를 연상하면
됩니다. 발코니는 발을 디딜 수 있는, 거실의 연장이지만 그 바닥이 공중에 떠있죠. 빙붕 또한 엄연히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반영구적인 지면이지만 (같은 얼음 벌판이라도) 밑에 흙으로 된 진짜 땅이 있는 나머지 남극 대륙과는
달리 바다 위에 떠있습니다.

바닷물이 얼어서 생겨나는 '해빙' 또한 인간이 발을 딛고 걸을 수 있지만 계속 떠다니고 나눠졌다 합쳐지고
녹아버리기도 하는데 반해 빙붕은 육지에 단단히 붙어있고 그 형태나 면적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로스 빙붕,
론 빙붕 등 남극 대륙의 빙붕들은 엄연히 남극대륙의 면적을 계산할 때 포함되는 대륙의 일부 입니다.

빙붕은 생명체와 비슷합니다. 처음 만들어질 때 그랬듯이 빙하의 흐름에 따라 매년 아주 천천히 자라납니다. 그리고
자손도 생산 합니다. 주기적으로 빙붕의 끝단이 조금씩 깨어져 나가 바다를 떠도는데 이걸 우리는 '빙산'이라 부르죠.
빙산은 주로 빙붕에서 만들어 집니다. (물론 빙산이 자라나 빙붕이 되지는 않지만요.)

(빙산과 부빙은 둘 다 바다를 떠도는 얼음덩이이고 종종 같이 다니지만 전형적인 크기나 형태에 차이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빙은 바닷물이 얼어서 생겨난 것이라 (얼어붙는 과정에서 소금기가 대부분 빠져나가 아주 적긴 하지만)
염분이 들어 있으며 빙산은 눈이 얼어서 생겨난 빙하 - 빙붕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남극대륙에는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빙붕이 존재하는데 '로스 빙붕'과 '론 빙붕'이 유난히 큽니다. 그리고 로스 빙붕은
아문센과 스콧 탐험대 모두 남극점 도전을 시작한 장소 입니다.

제임스 로스가 발견 당시 '로스 빙붕'은 '로스 빙벽'이라 불렸습니다. 상륙하여 탐험을 하지 않아서 그저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얼음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밖에 그는 로스 빙붕 오른쪽 가장자리의 육지 '로스섬'에 두 화산을 목격하고는 각각 함대의 두 배 이름 에러버스 호와
테러 호의 이름을 붙여 줍니다.

제임스 로스는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도달한 사나이가 됩니다. 로스 빙붕 근해는 배로 갈 수 있는 지구 최남단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남극대륙에 인간이 발을 딛는건 그로부터 반 세기나 지나서 였습니다.

로스 빙붕의 발견은 남극점 탐험이 시작되는 황금기 이전 시대의 마지막 남극 탐험이었으며 그후 한동안
암흑기가 지속 됩니다. 다만 그가 목격한 고래떼에 대한 증언을 따라 차차 포경선들이 남극 해안에 출몰하게 됩니다.



[주 :
제임스 로스의 두 배 에러버스호와 테러 호는 후에 프랭클린에게 넘겨져 북서항로 탐험에 나서게 됩니다. 북서항로란
유럽을 출발해 아메리카 대륙 북단(캐나다 북부 해안)을 따라서 알래스카를 넘어가는 항로로, 영국과 프랑스는 무려 4세기에
걸쳐 이 항로를 개척하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프랭클린의 북서항로 탐험대 - 두 척의 배와 130여 명의
선원들은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해졌고 10여 년에 걸친 탐색 끝에 결국 그들이 탐험에 실패하고 모두 사망한 것을 알게 됩니다.
(제임스 로스도 초기 수색대에 참여 합니다.) 이 때의 처참한 실패 때문인지 영국은 다시는 북서항로 도전에 나서지 않습니다.

북서항로는 1900년 대에 이르러서야 노르웨이의 젊은 탐험가에 의해 개척에 성공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남극점의
정복자 아문센 입니다. 아문센의 북서항로 개척은 과소평가 되고 있지만 그 역사와 탐험의 난이도 등을 놓고
볼 때 그의 최고의 업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2)편에 계속 됩니다. 아마 (3)편까지 쓰면 마칠 것 같습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13 09:24)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Mithinza
11/12/11 17:10
수정 아이콘
전에 남극 다큐멘터리를 볼 때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것 같아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잘 읽겠습니다.
11/12/11 17:20
수정 아이콘
사진이 안나오네요 태그좀 수정해주세요.
나는정이에사자다크항
11/12/11 17:21
수정 아이콘
이미지 태그 집어넣으신거 같은데 html체크 하셔야겠네요. 그리고 본문은 시간날때 읽어보겠습니다.
11/12/11 18:06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편이 기다려지네요. 추천!
11/12/11 18: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게요~
문앞의늑대
11/12/11 19:25
수정 아이콘
아껴서 읽고 싶은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에시앙
11/12/11 19:35
수정 아이콘
이렇게 좋은 글 읽기위해 나는 피지알에 오나보다.. [m]
11/12/11 19:52
수정 아이콘
우왕.....성의가 느껴져서 너무 기분 좋습니다. 흐흐. 다음편 기대할게요
눈시BBver.2
11/12/11 20:08
수정 아이콘
우왓 우왓 +_+) 감사합니다~
뺑덕어멈
11/12/11 20:13
수정 아이콘
엄청난 시간이 투자되었을 것 같은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8000m 고봉 초등 이야기나 14좌 완등경쟁도 관심이 있어서 검색 해보는데
남극점이야기도 재미있네요. 다음편 기대됩니다.
몽키.D.루피
11/12/11 20:57
수정 아이콘
헐.. 재밌다..
AraTa_JobsRIP
11/12/11 21:27
수정 아이콘
이건, 뭐.... 피지알의 위엄.
대단한 글이군요..
11/12/11 21:38
수정 아이콘
평소 관심이 있던 탐험사 관련 글인지라 더 흥미가 가네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Zakk WyldE
11/12/11 22:0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다음편이 너무 기대되네요. 고맙습니다. [m]
Je ne sais quoi
11/12/12 01:14
수정 아이콘
와우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11/12/12 12:53
수정 아이콘
epic님 화이팅요~. 이런 얘기도 재미있을 수가 있군요.!
추천 한방 드리며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11/12/12 13:49
수정 아이콘
제발 빨리 다음편을 올려주세요 ^^
11/12/12 16:51
수정 아이콘
이건 그냥 뭐, 추천.
2편만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284 [홍보글] 아마추어 스타크래프트 리그! 후로리그입니다 [31] rOaDin8977 11/12/17 8977
1283 아버지께서 시인이 되셨습니다 [62] 야크모11510 11/12/17 11510
1282 화해에 관한 추상적인 힌트 [48] PoeticWolf11615 11/12/16 11615
1281 뜨거운 커피는 식는다. [16] 영혼9223 11/12/16 9223
1280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2-1) [7] epic9884 11/12/15 9884
1279 언니의 결혼 날짜가 잡혔습니다. [50] 리실10779 11/12/15 10779
1278 수제비는 역시 고추장 수제비 [28] PoeticWolf9991 11/12/14 9991
1277 백제 vs 신라 - (4) 한성 백제의 멸망 [15] 눈시BBver.210252 11/12/14 10252
1276 손님 맞이 [32] PoeticWolf9219 11/12/13 9219
1275 [Text 인데도 혐오] 과학적으로 보는 좀비 아웃 브레이크. [69] OrBef12115 11/12/13 12115
1274 [리뷰]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 - 겨울은 스카이림과 함께 [33] 저퀴13948 11/12/10 13948
1273 sk플래닛배 프로리그 2주차(12/06~12/07) 간략 리뷰 및 맵별 전적 정리 [4] 전준우7461 11/12/07 7461
1272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가장. 그리고 아내의 조련술. [86] Hook간다11450 11/12/12 11450
1271 인종의 지능 차이 [91] TimeLord21484 11/12/11 21484
1270 마초가 사는 하루 [19] PoeticWolf9944 11/12/11 9944
1269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1) [18] epic10395 11/12/11 10395
1268 신라 vs 백제 - (1) 혼란스러운 아침 [12] 눈시BBver.29090 11/12/10 9090
1267 이해. [9] Love&Hate8269 11/12/09 8269
1266 차별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24] 구밀복검8597 11/12/09 8597
1265 키보드 배틀 필승 전략 [57] snoopy12048 11/12/08 12048
1264 퇴근 시간에 전화 한 통이 뭐 그리 어렵다고. [52] PoeticWolf12063 11/12/08 12063
1263 두 개의 장례식 없는 죽음을 맞이하며. [5] 헥스밤10074 11/12/08 10074
1262 커피믹스를 원두커피로 바꿔보자. [15] epic9438 11/12/08 943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