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11/04 18:13:21
Name PoeticWolf
Subject 적的은 가까이에...
적. 的.
굳이 다시 설명드릴 필요는 없이 다들 아시겠지만 ‘~의, ~에 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혹은 일본어의 표현 방법입니다. 한국 고유의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죠. 국어과 교수님들이나 국어학자들은 ‘잘못된’ 표현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어차피 언어란 섞이고 섞이는 것인데, 단지 일본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말에 어울리지 않다, 라는 건 사람에 따라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언어의 표현 방법을 우리 것으로 소화하면서 언어가 더 풍성해질 수도 있겠지요. 저는 ‘쓰지 말자’ 쪽에 가까운데, 그건 ‘취향’에서 나오는 판단이지 언어학이나 국어학의 측면에서 나온 판단은 아닙니다. 네, 과연 ‘-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전 학문의 관점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웹 정서와는 달리 길고 읽을 만한 글들이 자주 올라오는 PGR에서는 감히 ‘-적’을 의식해서 덜 써보시는 건 어떨까, 라고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학문을 근거로 하고 있으면 ‘주장’하겠지만 제 취향을 소개하는 거라 ‘제안’일 뿐입니다.) 일단 ‘-적’이 들어간 표현은 대부분 ‘이 표현을 알 수준의 사람은 알겠지. 모르면 읽는 사람이 무식한거지 내가 잘못 쓴 것은 아님.’의 태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는 사람을 덜 배려한 글이라는 것이죠.

바로 몇 시간 전에 기사나 글들을 통해 접한 표현들을 몇 가지 예로 들겠습니다. 출처는 나름 공신력 있는 국내 잡지입니다.

- 이데올로기적 충돌. 충무로적 발상. 파우스트적 성찰.

글쓴이가 한 번만 더 읽는 사람을 위해 백스페이스를 누를 수고를 할 의향이 있었다면 ‘이데올로기의 충돌’, ‘충무로의 정서가 밴 발상’, ‘파우스트가 했을 법한 성찰’ 등의 표현으로 풀어쓸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충무로적 발상’은 문맥에 따라 ‘충무로의 정서가 밴 발상’, ‘충무로 인쇄소 사람들이 좋아하는 발상’, ‘충무로의 문화가 깃든 발상’ 등 다양한 풀어쓰기가 가능합니다. 엄청나게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충무로적 발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입니다. ‘파우스트적 성찰’도 마찬가지죠.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시나 문학 소설도 아닌데 애매모호한 표현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수님들의 논문은 ‘-적’ 투성이죠. ‘-적’이 들어간다고 작가가 다 오만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독자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오만하고 읽기 어려운 글의 전형에 유독 ‘-적’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출판사에 있을 때 논문집을 여러 권 편집한 적이 있는데 국어과 교수님들 빼고는 전부 ‘-적’과 번역체를 즐겨 쓰시더군요. 학계의 유행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쓰지 않으면 무식해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쓴다는 분도 계셨고요.

그러나 이런 ‘-적’이란 표현이 학술 논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죠. 저희의 일상 글에서도 다양하게 나옵니다. PGR의 글들을 언급하기 전에(감히 그러려고 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저만해도 지금 이 짧은 걸 끄적거리는 와중에 ‘-적’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습관처럼 ‘-적’을 쓰면 술술 쓸 수 있겠지만 일부러 안 쓰려고 하니 글을 다시 읽게 되고, 제 말을 온전히 전달하려는 태도를 되새김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말을 안 해도 되고요.

- 개인적으로 저는 -> 저는
- 학문적으로 -> 학문의 관점에서
- 습관적으로 -> 습관처럼
- 반복적으로 -> 반복해서
- 의도적으로 -> 일부러

글에서 ‘-적’만 조금 덜어내도 말이 편안해지고 쾌적해집니다. 학계에서는 덜 유식해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덜 오만한 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뺄 수 없는 표현도 있습니다. 문맥에 따라 다르겠지만 ‘긍정적’, ‘이상적’과 같은 표현들은 대체하기가 어렵지요.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고 두루뭉수리 적은 것 사과드립니다.
PGR처럼 인터넷에서 보기 드문 ‘글빨’ 커뮤니티의 멤버들로부터 이런 작은 습관이 자라다보면 어느 새 ‘쉽고 친절하게 쓰기’가 학계에도 유행이 되지 않을까 희망해봅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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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릭랜드
11/11/04 18:19
수정 아이콘
'적'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좀 더 알게 되면 저도 실천하게 될 것 같아서요.

좋은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덜 와닿아요. 죄송하지만 아시는 범위 내에서라도 좀 도 설명해주시겠어요? [m]
관심좀
11/11/04 18:19
수정 아이콘
글이 너무 현학적이고 가르치려는 듯한 가압적 태도때문에 기분이 적잖이 나쁘네요.
는 농담이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 누르고 앞으로 언어 생활에서 주의해야겠습니다!
11/11/04 18:20
수정 아이콘
심지어 일본 내에서조차 젊은이들이 '~적' 남발한다고 많이들 지적하죠.
일본적 표현이기도 하고 다방면적으로 볼 때 표현적으로 권장적이라는 데는 부정적이지만 이게 또 편리적인 측면에서 무척 효율적이서 말이적.
의식적으로 자제할 적도 많고 반성적으로 지적할 적도 있지만 슬적슬적 습관적으로 나와서 내면적으로도 깜적깜적 놀랄 적이 빈도적으로 볼 때 인간적으로 적지 않적.
스트릭랜드
11/11/04 18:21
수정 아이콘
'도ㅡㅡㅡ더'로 수정할게요.지금은 물조라 수정이 안돼요 ㅠㅠ [m]
11/11/04 18:27
수정 아이콘
크게는 동의하는데 자잘한 부분에서는 저와 생각이 다르시네요. 일본에서 온 단어건, 서양에서 온 보그체건 쓰는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이제 남은 고유어 자체가 거의 없으니...) ~적 등등 모호하고 표현이 부정확한 단어는 읽는 사람을 위해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은 합니다.(양가적, 심미적, 데카르트적 등등) 그렇지만 예시로 드신 습관적, 반복적, 의도적.. 등등은 충분히 명확한 표현이니 써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굳이 무리해서 순화할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11/11/04 18:31
수정 아이콘
행정학 강사분이 '~적'을 논문에서 쓰면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영어를 만들 때 'juk'으로 나와서 힘들어진다고, 편하게 돌리려면 적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크크크. 구글 번역이는 똑똑해서 적을 싫어합니다(음?) [m]
올라갈팀은올라간다
11/11/04 18:34
수정 아이콘
저는 사실 '적'을 줄이자는 운동에 대해서 그 당위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우선, 표현의 풍부함을 줄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어떠한 내용을 자세히 풀어서 쓰는 것도 좋지만, 여러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있는 것 또한 좋은 것인데, 이를 굳이 없앨 필요가 있나 합니다. '거시기'가 모호하다고 해서 배척해야 할 단어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도 이 표현이 일본어의 잔재 또는 일본어에서 온 표현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 근거가 궁금합니다. 우선, 일본어에서는 오히려 우리말의 '~의'에 해당하는 '~の'라는 표현이 있고, 오히려 중국어에서 완벽히 우리말의 '~의'를 的으로 씁니다. 일본어를 쓰면서 그렇게 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지도 잘 모르겠고요.
좀 더, 的의 사용을 줄여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그 근거를 들었으면 합니다.
눈시BBver.2
11/11/04 18:38
수정 아이콘
좀 애매한 것 같네요. 중국 같은 경우는 的을 ~의 의미로 확실히 받아들였으니까요 (근대화 과정에서 본래 중국어에 없던 여러 개념들도 다 받아들였죠)
적당히 하긴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적 무슨 적 -_-a

뭐 결국 적당히가 중요하겠죠. 아예 없애는 건 무리니까요 '-'a
Montreoux
11/11/04 18:50
수정 아이콘
저는 지력이 딸리고 한마디로 무식해서 그런가(예의도 아니고 겸양도 아니고 현실이고 실체라서=,.=) ~的 이 난무하는 교수님들의 글들은 확실히 지루합니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은 더해서 아예 안 읽습니다. 글은 물론이고 강연도. ebs에 나오시는 교수님들 조곤조곤 차분한 이야기 들으면 바로 졸음이 와서 프로그램채널 바로바로 전환. 교수님들 특유의 저 일본식 표현은 제눈엔 유식하다고 오만해서 그런다기 보다 오랜 습관 같아서 고치기 어려워 보입니다. 몸에 밴 습관.

파우스트적, 이데올로기적, 충무로적... 젊은분이 쓰셨다면, 더욱 글빨이 딸려서 달리 묘사할수 없어 쓴게 아니라면
확실히 구식 같아요. 올드해 보인다능.
11/11/04 18:52
수정 아이콘
(주로 한자어(漢字語) 명사(名詞) 뒤에 붙어서)그 말이 나타내는 그것에 관련(關聯)된, 그런 상태(狀態)로 된, 그것의 성질(性質)을 띤 등(等)의 뜻으로 명사(名詞)와 관형사를 만드는 한정어(限定語) 조사(助辭)는 -으로만이 붙음)
cf) http://hanja.naver.com/hanja?q=%E7%9A%84

저는 한자로 만든 명사를 수식어로 사용하는 괜찮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대충 '한자명사+적' => 수식어느낌을 지닌 명사 => 조사앞에 명사형태로 사용 할 수 있음 이런느낌입니다)

그리고 이게 서술격조사 '~이다' 앞에 명사형태로 붙어서 동사형태로 쓰는데 이게 편리하겠다 싶더라고요.
예) '선형적'이다, '가역적'이다 등등

처음쓰는 사람한테는 어렵지만, 일단 그 세계에 진입한 사람이라면 적은수의 글자로 많은 양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 편리해서 쓰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게 쓰면 좋긴한데, 그런 논리라면 적 앞에 붙는 한자로 만든 명사도 다 풀어쓰는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에서 예를드신 개인, 학문, 습관, 반복 같은 경우에도 다 풀어 쓸 수 있는 단어니까요(다만 익숙함의 정도가 다를뿐)

http://krdic.naver.com/rescript_detail.nhn?seq=4052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이라는 표현이 어감상 더 괜찮을 수도 있으니
꼭 어느 표현을 사용하자고 규칙을 정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쓰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Marcelino
11/11/04 18:52
수정 아이콘
습관처럼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일부러 좀 있어보이려고 그렇게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무엇을 설명하려할 때에 좀 유식해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진정한 대가들은 같은 말이라도 좀 더 쉽고 간결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저부터도 지금 이 댓글을 달면서 '~적'이라는 표현을 안 쓰기가 정말 힘드네요.
11/11/04 18:56
수정 아이콘
굉장히 깔끔한 글이네요. 추천 날리고 갑니다~
몽키.D.루피
11/11/04 19:09
수정 아이콘
글의 의도를 충분히 동감합니다. 그러니까 애매하고 현학'적'인 표현을 남발한 뒤 수용자가 이해 못하는 걸 은근히 즐기는 오만한 글쓰기를 자제하자는 거잖아요. 저도 좋은 글쓰기는 누구나봐도 명쾌하게 잘 이해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11/11/04 19:28
수정 아이콘
저도 습관'적'으로 저런말 자주 썼는데 잘 배워 갑니다.
저런 표현을 한다해서 딱히 오만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을것 같네요.
저런말 말고도 우리가 평소 쓰면서 틀린지 모르고 쓰는 말도 하나씩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좋은건 공유해야죠 흐흐~
저는 댓가(X) -> 대가(O)
Mithinza
11/11/05 00:17
수정 아이콘
그런데 본문의 '충무로적'이라는 표현은 '충무로식'으로 바꾸는 게 더 적당해 보이는... 크크;; 뻘댓글이었습니다.

위쪽의 Reminis님 말씀처럼, '적'이라는 용법에 대한 불만은 그 용법에 따라오기 마련인, 별별 방식으로 과용되고 자기 맘대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수많은 한자 용법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도 대화 중에 이상한 한자어 만들어놓고 '~적인' 같은 방식으로 써먹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생각없는 번역자 상당수가 그러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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