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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22 12:49:06
Name   Tigris
Subject   유랑담 약록 #05 / 120606水 _ 흐린 날의 노면전차, 하코다테


(파란색 → 녹색 → 붉은색 순)









《A》

 방은 아침 햇살로 따스했다. 건너편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성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혹시 싶은 마음에 침대 부근에 펼쳐놓았던 내 물건들을 점검해보았다. 잠들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일어나서 보니 나의 짐은 그야말로 무방비로 진열되어 있었다. 다행히 아무 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객지를 떠도는 처지라고는 해도, 무고한 사람을 의심부터 했던 자신이 민망했다. 역시 견물생심 같은 소리는 변명일 뿐이고,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않는 게 현대인이라면 당연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미토리 시루시루’를 나서며 주인영감님께 하루 더 묵겠다고 이야기하며 미리 숙박료를 지불했다.


- 오늘은 나가나보군. 어딜 가볼 생각인가?

- 글쎄요…. 일단 외국인 묘지에 가보고 싶습니다. 하코다테의 라멘도 맛보고 싶네요.

- 그럼 고료카쿠(五稜郭)로 가서 노면전차를 타면 되겠군. 나가서 저쪽(손짓) 방향으로 가면 되네. 고료가쿠 타워 옆에 ‘아지사이’라고, 맛있는 라멘집이 있으니 가보게. 아, 그리고 혹시 싶어서 말해두지만 하코다테 산은 이륜차로 못 올라간다네. 로프웨이를 타게.

- 거긴 뭐가 있습니까?

- 하코다테의 야경이 있지.

 잠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과연 하코다테 산을 오르는 675번 도도道道는 이런저런 제한이 걸려있었다. 이륜차는 상시 일절 통행금지, 동계에도 모든 차량 통행금지, 하계에는 4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는 17시부터 22시 사이 통행금지 등. 한겨울이야 북쪽의 해안도시니까 강설량이 많아서 그렇다 쳐도, 그 외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제한이라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당신네들 10월 중순부터 4월 25일까지 몽땅 동계잖아

 하코다테 산은 그렇다쳐도 노면전차는 한 번 타보고 싶었다. 오늘은 걷기로 했다. 나는 핸드스트랩을 감은 사진기만 들고 길을 나섰다. 구름은 많았지만 날이 흐리진 않았다. 11시 30분이었다.








《B》

 주택가 사이를 걷다보니 문득 고료카쿠 공원의 한쪽 꼭짓점이 나타났다.






 공원은 시야가 넓어 편했다. 멀리 오각의 타워가 보였다. 공원 가운데의 고료카쿠를 해자가 둘러싸고 있었고, 그 물의 가장자리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잠시 서서 지나는 사람을 지켜보았다. 파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느긋하게 걸어가는 여노인, 회색 코트 차림에 양산을 쓴 여노인, 하얀 운동복에 하얀 베레모를 쓰고 뛰어가는 남노인과 그 옆을 노란 스포츠 자켓 차림으로 뛰어가는 남노인 콤비, 마트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가는 아주머니,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운동복에 하얀 팔토시, 하얀 모자, 하얀 마스크를 쓰고 달려가는 아주머니, 하늘색 운동복 차림으로 2열 종대를 이루어 달려가는 여덟 명의 여학생 등이 제각각의 속도로 공원을 걸었다. 희한하게도 달리는 사람은 모두 반시계방향으로 갔다.











 물가에 참새가 몇 마리 폴짝였다. 한국 까마귀에 비하면 너무 커서 위화감이 들던 홋카이도의 까마귀와 달리, 참새는 어릴 적 동네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자그마한 모습이어서 괜히 반가웠다. 물에는 오리도 놀고 있었다. 안정적이야

 나는 왼쪽, 그러니까 시계방향으로 느긋하게 고료카쿠 공원을 걸었다. 무언가 행사를 준비하는 모양인지, 해자에 수상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물가의 낮은 쇠울타리에는  ‘고료카쿠 공원 외주外周 : 1바퀴 1,815m / 여기는 정문 기점에서부터 600m 지점입니다.’라는 하얀 안내판이 있었는데, 그 문구 아래에 반시계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정문 부근에는 얼룩 고양이가 잔디밭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료카쿠 및 하코다테전쟁 유적(五稜郭と箱館戦争の遺構)’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국가특별사적에 등록되어 있는 이곳 고료카쿠(五稜郭, 오릉곽)는, 에도막부가 끝나기 1년 전인 1866년에 완성된 7만 4천평 규모의 군사목적 성곽이다.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지시에 의해 유럽의 최신식 디자인을 도입하여, 이름 그대로 다섯 꼭지의 별 모양으로 축조되었다. 돌출된 꼭지에 대포언덕시즈를 설치하여 보다 넓고 효율적인 수비를 꾀했던 이 성곽은, 존왕양이에서 대정봉환에 이어 왕정형 신정부로 지향점을 바꾼 유신지사 반막부 신세력과, 신센구미(新選組, 신선조) 잔당을 위시한 도쿠가와 가문 휘하 막부 충신 구세력 간의 내전인 보신전쟁(戊辰戦争)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칸사이 지방에서 발생한 전선이 패퇴를 거듭해 이곳 홋카이도까지 밀리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듣기로는 ‘결국 공격 측이 서구열강의 도움으로 사정거리가 더 긴 대포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료카쿠의 디자인은 아무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라던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입구의 다리를 건너 고료카쿠로 들어갔다. 전쟁의 흔적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특이한 모양의 공원으로서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외곽의 돌담 위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고로카쿠의 안팎을 걸어 다녔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몇 명인가의 인부가 제초기를 내려놓고 휴식하고 있었다.

















 멀리 타워 옆 입구도로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선두에는 제복 차림의 여성 가이드가 작은 깃발로 선도하고 있었고, 중간 중간에 검은 양복 차림의 성인 남성들이 제각각 가방이나 사진기를 들고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왔다. 한 반 치고는 많아보였고 두 반 치고는 적어보였다. 어쩌면 지방 소도시 분교의 한 학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걷다보니 멀끔한 건물이 하나 보였다. 다가가니 2010년에 복원된 하코다테 부교쇼(奉行所, magistrate's office)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유럽식 외형을 도입한 이 성곽의 지휘본부가 이처럼 낮은 기와지붕에 망루까지 달린 구식 건물이라는 점은 꽤 인상적이었다. 겨우 2.5층 높이의 망루에서 뭐가 보이긴 했을까. 비유적으로 생각하면 이곳에서 마무리된 홋카이도의 중세는 삿포로의 구 홋카이도청사(통칭 '아카렝가')라는 서양식 벽돌건물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한편 이런 관청이 있으면서도 거주구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이 성곽의 군사적인 용도를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부교쇼의 입장료는 성인 500엔이었는데, 크게 흥미가 없어 들어가지 않았다.

 부교쇼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건물 모양새를 살펴보고 있었더니 아까 멀리서 보였던 아이들이 걸어왔다. 아이들은 가로로 길게 늘어서 가이드의 안내를 들었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포격전을 대비하여 낮은 건물로 만들었다는 말이 얼핏 들렸다. 성곽 디자인도 그렇고, 아무래도 당시에는 곡사포 같은 개념의 무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제에에엔장, 도탄됐습니다

 연보랏빛 등나무가 탐스럽게 얽힌 나무문을 지나고 다시 다리를 건너 고료카쿠 타워로 갔다.








 안내판에 따르면 타워는 두 층의 지상층과 두 층의 전망층으로 나눠져 있었고, 성인 840엔의 티켓을 끊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야 하는 전망층은 각각 지상 86m, 9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상 1층에는 시민창작 야외극 「星の城、明日に輝け」(우리말로는 '별의 성이여, 내일에 빛나라' 정도가 될 것이다)의 역대 포스터를 전시하고 25회째인 올해의 공연을 홍보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수상무대는 이 야외극을 위한 것인 모양이었다. 주최가 ‘NPO법인 시민창작 「하코다테 야외극」 모임’으로 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안내문에는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탭이 시민 자원봉사사로 구성되어있으며, 1988년의 초연부터 매년 조금씩 극을 발전시키며 진행해왔다고 되어 있었다. 굉장한 일이었다. 무대예술에 투신한 친구들이 고생하는 것을 평소 지켜봐온 나로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감도 오지 않았다. 창작극, 창작뮤지컬에는 인재도 투자도 모이지 않아 매번 번안극만 흥행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한국만의 현실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타워 지상 1층 한쪽 구석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신센구미의 창설멤버 중 하나이자 이곳에서 전사함으로써 종언마저 신센구미와 함께한 히지카타 토시조(土方 歳三)의 동상이었다. 그는 신센구미가 철저한 좌막파의 노선을 걷도록 만들었던 당사자이면서, 신센구미 와해 후에도 잔존세력을 챙겨 시대의 잔당으로 내몰린 도쿠가와 가에 끝까지 충성을 바쳤고, 밀려나고 밀려난 전선의 끄트머리였던 이곳 하코다테에서 일본역사 유일의 공화국인 에조 공화국 설립에 이바지하는 등, 복잡다난했던 일본의 개화기 한가운데를 살아간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아직 메이지 유신에 대한 평가조차 분분한 만큼 히지카타 토시조에 대한 평가 또한 최후의 충신에서부터 정치깡패까지 다양하다. 허나 이국에서 온 과객인 나로서는 딱히 그에 대한 가치평가를 고민할만한 이유는 없었고, 그저 ‘신선조의 일원이라더니, 되게 서구적인 복장을 하고 있구만.’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고료카쿠 타워를 나오니 길 건너에 ‘시루시루’의 영감님이 일러준 라멘집과 하코다테 명물이라는 햄버거 가게 ‘럭키 피에로’가 나란히 보였다. ‘럭키 피에로’는 이따 저녁에 먹기로 하고, 우선 라멘집 ‘아지사이’로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라멘과 카레라이스로 된 A런치, 라멘과 볶음밥으로 된 B런치가 있기에 B런치를 주문했다. 음식은 불과 3분 만에 나왔다.





 맛은 꽤 좋은 편이었다.











 이제 배도 부르겠다, 본격적으로 하코다테를 돌아다니기 위해 노면전차를 타러 갔다. 노면전차 고료카쿠코엔마에(五稜郭公園前) 정류장은 공원으로부터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공원 부근의 도로.
중간 차선에는 우회전(한국 감각으로는 좌회전)을 하기 위한 차량들이 우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삼색 신호기 옆에 하나 덧붙은 것이 우회전 신호기. 이게 안 달린 경우에는 진행신호에 눈치껏 돌면 된다. 한국의 비보호 좌회전와 비슷하다.)
노란 차선은 중앙선이 아니라 차선변경(끼어들기) 금지를 표시하는 것이며, 그보다 우측에 있는 하얀 실선이 중앙선이다.
일본에서는 좌회전(한국 감각으로는 우회전)도 진행신호에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바깥차선까지도 그 용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태연하게 불법 주정차를 했다간 저 흐름이 모두 망가진다.
도로교통체계가 이렇게나 다른데도, 이에 관해 알려주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 신호기도 못 보는 사람에게 면허가 나오는 것이다.
국제번호판도 그렇지만, 이렇게나 무책임한 시스템이 잘도 시행되고 있다.









《C》




 정류장에는 매립형 레일의 좌우에 천막이 세워져 있을 뿐, 따로 안전설비 같은 것은 없었다. 사실 삿포로에도 노면전차가 있지만 타본 적이 없어서 이용법을 몰랐다. 정류장을 두리번거려보니 영어로 된 이용법이 있었고, 그 옆에 관광지도를 겸한 노선도가 있었다. 한쪽 종점인 ‘하코다테 돗쿠 마에(函館どつく前)’ 정류장에 외국인 묘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류장명의 'つ'는 촉음이 아닌 큰 문자 표기가 맞으며, 그 발음은 '돗쿠'로 한다. 이 '돗쿠'는 본디 dock에서 유래했으나, 정류장명의 유래가 된 업체 이름을 따라 일본어표기는どつく가, 영문표기는 dokku가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외형의 차량이 지나갔다. (전 차량이 광고에 쓰이기 때문에 외부도장이 동일한 차량은 한 대도 없다고 한다.)











(하코다테의 노면전차 노선은 19세기 말 운행되던 마차 정기노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행선지가 다른 전차가 몇 대 지나가는 동안, 아까 공원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정류장으로 건너왔다. 잠시 후 노면전차가 왔고, 설마 했건만 아이들은 모두 같은 전차에 올랐다. 나는 앞사람을 따라 뒷문으로 올라타서 자그마한 표를 뽑았다. 그리고 운전석 부근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오르려고 아우성치는 아이가 없어서 승차는 순조로웠다.







'당신의 매너는 괜찮나요?'
하코다테 시 교통국의 공공캠페인. 과연 일본답게 만화풍의 그림이 일상화되어 있다.



 전차의 내부 사진을 찍는 나를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도시촌놈 처음 보냐 전차가 출발하자 아이들이 우와, 우와 하는 소리를 냈다. 다들 잘 차려입고 있어서 긴가민가했지만, 이방인을 신기해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타 지역에서 온 게 맞는 모양이었다.








 노면전차는 완전히 매뉴얼 조작으로 운전되는 듯했다. 차는 차장의 조작에 따라 천천히 선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교차로에서는 자동차용 신호등을 따랐다. 긴 직선구간에서는 제법 속력을 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덩치가 있는만큼 느긋하게 달렸다. 바쁜 일이 있는 사람, 혹은 이미 노면전차가 일상이 된 사람들에게는 답답한 탈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느긋함이 마음에 들었다.















 요금은 구간별로 늘어났다. 가령 내가 승차하며 뽑은 엄지손가락만한 표에는 9라는 숫자가 써 있었는데, 내릴 때 전광판에서 9번 칸에 표시된 차비를 표와 함께 요금수납기에 넣으면 되는 식이었다. 복잡해 보였지만, 교통카드 등으로 전자화 되지 않는 이상엔 가장 간단한 방법인 듯 싶기도 했다.








 서너 정류장쯤 지났을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정류장 더 지났을 때였다. 손님이 줄을 서서 내리는데, 한 노파가 차비를 조금 더 냈는지 요금수납기에서 10엔이 거슬러져 나왔다. 차장이 ‘손님, 거스름돈 가져가세요.’라고 말했다. 허나 노파는 듣지 못했는지 그냥 내렸다. 차장은 주저없이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차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손님, 요금 더 내셨어요.’ 그마저도 노파가 듣지 못했는지 차장은 동전을 들고 손님을 좇아 달려갔다. 저것이 이곳의 상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열한 번째 정류장에서 표와 차비를 각자 내며 한 명씩 차근차근 내렸다. 차내가 조용해졌다. 남은 세 명의 손님도 다음 정류장에서 모두 내렸고, 그 다음 정류장인 종점까지 가는 건 나 혼자였다.













《D》

 종점인 '하코다테 돗쿠 마에'는 어째 황량한 동네였다. 잠시 후 내가 타고 온 노면전차마저 다시 선로를 따라 떠나가자, 주변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는 빗줄기가 가끔 얼굴에 떨어졌다. 나는 무작정 바다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보았다. 어촌의 순한 개는 낯선 자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곧 콘트리트 부두가 보였다. 몇 대인가의 어선이 정박되어 있었다.








 부두 한 편 지붕이 있는 곳에서 예닐곱 명의 중년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방파제로 가려진 어촌마을이 보였다.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마을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조용했고, 비가 내려 날이 어두운데도 불 켜진 집이 없었다. 가끔 고양이가 지나쳐갔다.








 골목을 걷다보니 뒷산의 비탈을 따라 계단이 놓여있었다. 더 가봐야 뭐가 나올 거 같지도 않아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의 끝은 뜬금없이 카페로 이어졌다. 길과 카페의 마당이 구분되지 않아서 어느새 사유지에 들어온 줄 알고 당황했지만, 원래 그런 길인 듯도 싶었다.















《E》



 무덤이 보였다.

 나는 묘지를 둘러보는 일을 좋아한다. 괴기담 애호나 네크로필리아 같은 취향은 아니다. 오히려 귀신이라든지 심령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원천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무덤이 무덤으로 보일 뿐이다. 요사스러운 이미지를 밀쳐두고 바라보면 무덤이란 그저 죽음의 온순한 기록물에 지나지 않는다. 기념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국의 인파를 면면이 관찰하며 걸을 때 그들의 삶이 엿보이듯, 죽음의 기록물이 한데 모여있는 곳에서 개별의 무덤을 찬찬히 살피며 걷다보면 그 문화권의 사람들이 죽음을 어떤 방식,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엿보인다.

 무덤을 싫어하고 기피하는 태도도 어렴풋이 이해는 간다. 죽음을 삶의 반대로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무덤이란 죽은 자들의 공간이자 음침하고 끔찍한 죽음의 잔해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입장에서 무덤은, 삶의 마지막 표현형이자 살아있었던 자의 잔해이며,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이다. 살아있는 1인칭에서 죽음은 무조건적으로 두렵고 싫은 것이지만, 과연 그 바깥에서도 죽음은 끔찍할까. 아닐 것이다. 마치 썰물 끝에 찾아오는 간조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문화권, 특히 현대적 도회에서 죽음을 금기로 삼고 외면하려 하는 건, 다들 자신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죽음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리라. 그 마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무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묘비를 살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 묘비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일본식 이름으로 보아 이곳은 일본인 기독교도 묘지인 듯했다. 비석은 제각각 모나거나 둥글거나 높거나 낮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하며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OO家의 묘’라고 적힌 것도 있었고, ‘OO에서 태어나 OO에서 세례받은 하나님의 아들 OOOO가 쇼와 OO년 O월 O일 이곳에 영면’하는 식으로 길게 쓰인 경우도 있었고, 개신교 경전의 한 구절을 음각해놓은 묘비도 있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빌립보서 3장 20절 / 일본 크리스트교단 하코다테 교회’라고 되어 있는 단체묘에는 스물여섯 명의 이름과 망일, 나이가 나란히 음각되어 있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죽음은 1889년―일본 연호가 아닌 서기로 표기되어 있었다―이었고 가장 가까운 죽음은 불과 3개월 전이었다.

 한국의 공동묘지에 가보면 묘비가 다들 흡사하다. 똑같은 묘비가 끝없이 이어진 모습이 한편으로는 공포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것은 분명 죽음에 대한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의 표현형일 것이며, 가능한 경건하고 엄숙하게 죽음을 대하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 이곳의 죽음은 각자 개성적인 형태의 묘비로 표현되어 있다. 죽음을 대하는 관념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바르고 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정치적 올바름 때문이 아니라, 예의범절이라는 것 자체가 우열을 부여하기엔 너무 국지적이고 시대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보다 각지의 사람들이 죽음 앞에 바치는 정성을 근본적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샛길을 따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니 이번엔 절이 보였다. 입구에 조동종(曹洞宗)의 사찰이라고 음각된 빗돌이 서 있었다. 한국에서는 유행하지 않았지만 선종의 경향이 강한 일본 불교에서는 지금도 조동종이 최대규모의 종파다. 절 밖에는 몇 개의 조그마한 불상이 붉은 턱받이(?)를 하고 서 있었고, 돌담 너머에는 돌담보다 더 높이 솟아오른 비석들이 보였다.

 돌담을 따라가니 하얀 철책 안으로 ‘외국인 묘지(프로테스탄트 묘지)’라고 한국어로 부기되어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보통 이곳을 외국인 묘지라 부르지만, 외국인이 아닌 일본인 크리스트교도의 묘도 함께 있습니다. 당시 하코다테에서 타계한 외국인은 대부분 이 묘지에 매장되었기에 외국인 묘지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이곳에는 1854년 4월 페리 제독이 내항했던 당시 사망한 수병 월프(50세)와 레믹(19세)의 묘를 시작으로 독일의 대리영사 하버, 덴마크 영사 듀스, 하코다테에서 창고업을 하던 영국인 스코트의 묘 등 40기가 있습니다. - 하코다테 시’



























 조금 더 가니 붉은 벽돌로 된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다. 철문이 굳게 잠긴 입구에는 ‘중화산장(中華山莊)’이라고 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의 공동묘지인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하얀색 낮은 철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는데, 입구에는 ‘러시아인 묘지,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라고 되어 있었다. 이곳의 십자가 문양은 조금 특이했다. 조금 더 지난 곳에는 ‘하리스토스 정교회 묘지’라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이곳의 묘비에는 ‘천주(天主)’라는 표현이 종종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엔 풀밭이 무성한 곳이 나왔다. 낡은 나무 현판에 구 육군 묘지라고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초라한 비석들이 잡초 사이에 어수선하게 꽂혀 있었다. 관리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더 이상 육군이라는 조직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작금의 일본 세태를 생각했을 때 이렇듯 구 육군 묘지가 방치되는 모습은 꽤나 상징성을 띄는 것으로 내게는 읽혔다. 사실 홋카이도는 제국주의 일본에 적잖은 불쾌감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내가 대화를 나눠본 홋카이도의 노인들은, 수탈 당한 조선 등과 마찬가지인 ‘외지’로 분류되어 징발, 징용, 징병 당했던 당시의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덧 외국인 묘지 지역은 끝이 났는지, 산자락에는 일반적인 일본의 묘지가 보였다. 나는 포장된 비탈을 천천히 걸어내려오며 무덤들을 살폈다. 붉은색 묘비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치즈태비 한 마리가 사뿐사뿐 묘지 사이를 걸어갔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 요하네에 의한 복음서 11장 25절'









 언덕 아래의 민가에는 검은 얼룩 무늬 고양이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사진기 소리에 잠시 나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도 보였다.








 길을 따라가다보니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15시 40분 경이었는데, 부활동이라도 하는지 학교는 묘하게 시끌시끌했다. 3층의 열린 창문으로 맑은 실로폰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생명이 당신을 살고 있다 - 자신의 인생이란 자기 의사대로 되는 것이 아닌, 저 편에서 오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법요(法要)를 알리고 있다.
선종스러운 화두긴 하다. 문 좌측에는 원아모집 안내판도 보인다.









 언덕을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며 멋대로 걷다보니 녹색 지붕의 특이한 건물이 나타났다. 현판에 ‘성 마리아 교회’라 되어 있었다. 지붕 부근에는 특이하게도 거꾸러진 새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상당한 함의가 있을 듯했으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것을 파악할 수 없었다. 구름 그늘에 젖은 듯한 교회의 모습에서 나는 문득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과 그 진득한 배경음악을 떠올렸다.






모토마치 공원으로 가는 길은 도로도 집도 특이했다.








"광고물, 찌라시(チラシ) 등의 투입을 거부하므로 넣지 말 것."










 모토마치 공원은 규모는 작았지만 시야가 탁 트인 것이 보기 좋았다.








 공원 바로 옆에는 구 하코다테구 공회당(旧函館区公会堂) 건물이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1910년에 지어진 모양이었다.







공원 한 쪽에 있던 동상. 올빼미의 시선이 매섭다.









 한 편에 ‘하코다테 사천왕상(四天王像) - 시민정신의 원류’라는 동상군이 있었다. 긴 설명을 대충 읽어보니 개척도시인데다 막부시대 번국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던 하코다테는 자발적으로 성장해야만 했고, 각종 시설건립과 산업부흥의 끝에 ‘메이지의 자유도시’라는 이명을 얻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네 유력자를 동상으로 만들어 기리는 모양이었는데,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사천왕이라는 네이밍은 다소 유치하지 않은가 싶었다.








 공원을 나와 좀 더 걸어가니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와 ‘천주공교회 카톨릭 모토마치 교회’ 등 여러 종교 건축물이 있었다. 각 건물들은 우아하고 아늑해보였다. 새빨간 십자가가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하고 생각하니 조금 재밌기도 했다.















《F》



 어느덧 하코다테산 정상으로 오르는 로프웨이 탑승장이 나왔다. 하코다테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꽤 좋을 듯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날이 흐려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듯도 싶었다. 탑승장 옆에는 ‘하코다테 시 기업국 모토마치 배수장’이 있었는데, 이름과는 달리 깨끗한 공원으로서 개방되어 있었다. 나는 분수 옆 벤치에 드러누웠다. 한숨 돌리며 오가는 로프웨이 안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잠깐 졸다 일어나서 조금 더 걸어가니 하코다테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였다. 아침에 검색해본 675번 도도인 모양이었다. 도로 우측에는 통행제한에 대한 안내판이, 좌측에는 교통경찰이 서 있었다. 번거로운 통제조건을 인력으로 실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 묘한 통제를 하는 겁니까'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로프웨이를 강요받고 있는 거다!








 잠시 후 하코다테 공원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가운데 분수를 중심으로 약간의 산책로와 낡은 소형 놀이기구, 그리고 소규모 동물원이 있었다. 규모가 참 미묘한 것이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구색으로 끼워넣은 놀이터 같은 위화감도 들었다. 헌데 공원 입구에 세워둔 유래를 읽어보니 그곳은 무려 1879년에 만들어진 공원이라 되어 있었다. 당시 영국 영사가 외국인 거주지내 현대적인 공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바, 지역 유지는 건축자재를 제공하고 일반시민은 노동력을 제공하여 문자 그대로 시민의 손으로 만든 공원, 이라는 설명이었다. 130년이 넘게 공원을 유지보수해왔다는 것 자체가 하코다테라는 도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듯 했다.







출입구조차 따로 없이 개방되어 있던 공원 내 동물원에는 사슴을 비롯한 초식동물 몇 마리와 원숭이 정도가 보였다.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셈이지, 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는데, 이방인의 괜한 걱정일까.









《G》

 어지간히 걸었다 싶어진 나는 다시 노면전차에 올라서 반대편 종점인 '유노카와(湯の川)'로 갔다. 저렴하고 좋은 시영(市營) 온천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정류장에서 5분쯤 걸어가니 ‘시영 야치가시라 온천(市営谷地頭温泉)’이라는 건물이 보였다. 목욕도구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기분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온천이라기보다 온천수를 이용한 대중목욕탕이라는 인상이었다. 요금은 성인 420엔으로 온천치고는 확실히 저렴했다. 너른 실내에는 손님도 얼마 없어 한산했다. 의외로 노천풍으로 하늘을 틔워둔 공간도 있었다. 물은 매끈거리는 것이 나쁘지 않았지만, 온천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에는 다소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나는 비치되어 있던 비누로 몸을 깨끗이 씻고, 온탕과 냉탕을 두어 번 오간 후, 노천탕으로 나가서 느긋하게 누워있었다. 따뜻한 물은 기분 좋은 나른함을 불러왔다.















 온천에서 피로를 푼 건 좋았는데, 막상 나오려니 물기를 닦을 수 없어 곤란했다. 가져간 수건은 당연히 없었고, 비치된 수건도 없었다. 나는 잠시 궁리하다가 입고 왔던 면 티셔츠를 수건삼아 몸의 물기를 훔쳤다.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 몸에 남은 물기도 자연히 사라졌다. 그 후 맨살 위에 자켓을 입었다. 목 아래까지 지퍼를 잠그니 딱히 티는 나지 않았다. 나는 젖은 티셔츠를 뒷주머니에 찔러넣어 늘어뜨린 채 만에 하나 경찰과 얽히기라도 하면 귀찮아지려나, 하는 괜한 걱정을 하며 온천을 나섰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해 저문 하늘에 다시 비가 부슬거렸다. 곧 유노카와 행 노면전차가 왔다. 전차는 2분쯤 정차했다가 다시 유노카와 정류장을 빠져나왔다.








 이번에 탄 노면전차는 신형인 모양이었다. 내장재가 깨끗했고, 요금 전광판 대신 LCD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8시 50분 경인지라, 퇴근시간답게 사람들이 좀 많이 타려나 싶었는데, 19시 20분 경 다시 ‘고료카쿠 공원 앞’ 정류장에서 내릴 때까지 손님은 총 스무 명을 넘지 않았다. 이미 퇴근시간대는 지난 것일지도 모른다.







홋카이도에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아마 일본의 다른 지역도 비슷할 것이다.
(특히 교통약자 배려석의 경우 페이스메이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이 곳곳에 붙어있다.)
역시 예법은 국지적인 것이다.









 정류장 근처는 하코다테 나름의 번화가인지라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다녔지만, 스스키노(삿포로)처럼 화려한 차림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료카쿠 공원 입구로 갔다. 타워는 이미 폐점한 상태였다. 슬슬 배가 고파서 ‘럭키 피에로’에 갔다. 햄버거 가게라더니 햄버거, 카레라이스, 오무라이스, 닭튀김, 안주세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낯선 가게에서는 기본메뉴부터 먹어본다는 원칙에 따라 챠이니즈 치킨 버거와 베이컨 에그 버거를 주문했다.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고료카쿠 공원으로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연록색의 램프를 켜둔 덕에 공원이 온통 녹색으로 비쳤다. 언젠가 방송에서 봤던 ‘색조명으로 강력범죄를 예방한다’라는 것을 적용해둔 것인가 싶기도 했는데, 인구 30만도 안되는 이런 느긋한 소도시에 그런 수단까지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조명 덕분에 사진이 재밌게 나왔다. 어차피 아침에 걸어들어온 입구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하여, 길을 알아볼 때까지 느긋하게 공원을 일주했다.












































 한참을 돌아 겨우 ‘시루시루’에 돌아온 건 21시 40분 무렵이었다.

 간단히 씻고 나왔더니 주인영감님이 맥주를 권했다. 감사히 마시며 함께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 나오는 이런 저런 이슈에 대해 주인영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가볍게 맞장구만 쳤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가만히 듣고 있는 편이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몰랐던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영감님의 입에서 이어졌는데, 그 중 흥미로운 건 덴노(天皇, 일본 황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 덴노? 딱히 우러러보지 않아. 신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들 덴노 폐하라고 하지 않고 그냥 ‘덴짱’이라고 부를 정도라네. 시대가 어느 시댄데, 당연하잖나. 그 사람들, 실질적으로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없으니까 말야. 물론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놓고 덴짱이라고 말하진 못한다네. 여전히 과격한 놈들이 많거든. 가끔 그런 걸 빌미삼아 살인까지 하는 멍청이들이 신문에 나오고 그러지. 그래도 동네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다들 ‘덴짱’이라고 한다구.

- 사실 덴짱보다 더 신경쓰이는 건 황태자 쪽일세. 흔히 ‘치비덴짱(꼬마 덴짱)’이라고 부르지. 치비덴짱의 아내가 병이 있는 거 알고 있나?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든. 그래서 공식석상에도 나오질 못하는 거야. 황실이라고 해봐야 얼굴마담 역할이 할 일의 전부인데, 그걸 못하면 뭘 위한 황태자비냐구. 그냥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편이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들을 위해서도 좋다고 봐. 안 그런가?

 안 그런가, 라고 물어도 일본 황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딱히 대답할 말도 없었다. 다만 이 영감님의 과격한 어조는 묘하게, 한국의 택시기사들이 세상을 다 아는 듯한 태도로 정치 이야기를 할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방인인 내게 '일본에는 이런 사람도 적잖게 있다다들 극우혐한은 아니라고!'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포즈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맥주 세 캔을 비운 후 나는 방으로 올라왔다. 오늘은 다른 손님이 없었다. 내일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가방을 싸두었다. 다음 날 입을 옷을 꺼내다가 청바지의 가랑이 부분에 10원 동전만한 구멍이 난 걸 발견했다. 만날 세탁방에서 빨다보니 빨리 헤진 듯 싶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내일의 여정을 상상해보았다. '우선 시내 어딘가에 있을 유니클로에 가서 새 바지를 사고, 적당히 식사를 한 다음에, 하코다테 시외를 대충 쏘다니다가, 가장 늦은 시각의 배를 타고 혼슈를 향하면 하루치 숙박비가 굳겠군.' 그러고보니 이 밤이 지난 10개월 간 살아왔던 홋카이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쉬움이 들었다. 홋카이도에서의 추억들을 상기해보려고 했더니, 온통 아쉬운 기억만 생각났다. 가려다 가보지 못한 곳, 먹으려다 먹지 못한 음식, 만나려다 만나지 못한 사람들……. 특히 하늘 좋은 홋카이도에 살면서 별하늘 사진을 만족스럽게 찍어본 적이 없는 게 가장 아쉬웠다. 도시에서는 땅이 밝아 별이 부족했고, 시외로 가면 여정에 바빴고, 작정하고 시간을 내본 날에는 우연하게도 날이 흐렸다. 돌이켜보면 참 운이 없었다. 오늘 날씨를 생각하면 내일 또한 기회는 없을 듯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잠을 청해보았다.




(계속)



* kimbill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7-20 09:18)
* 관리사유 : 연재 게시물 이동 조치합니다.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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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2 14:18
올려주실 때마다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잉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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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2 15:03
아 럭키삐에로 햄버거ㅜㅜ
하코다테는 또 가고싶은 곳중에 하나네요...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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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2 16:00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사천왕이라던지 십인중이라던지 하는걸 참 좋아해서 말이죠~
예전부터 내려오는거라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전국시대만 해도 사천왕이 얼마나 많은지 흐흐흐~
연필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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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3 00:24
일본에 앞으로 들러볼 곳이 많아서 행복하네요.
서린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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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8 00:49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부분 온천은 타올을 제공하지 않으니 직접 갖고가셔야 하구요
없을경우 유료로 렌탈을 할 수 있습니다. 약 100~200엔 정도 들 거에요.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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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9 22:05
뒤늦게 검색해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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