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7/26 21:24:31
Name 로빈
File #1 daum_gallery_photo_20170726213236.jpg (97.0 KB), Download : 50
Subject [일반] (스포무) 야심은 컸지만 싱거웠던 군함도


영화가 끝나고 든 느낌은 어정쩡하다, 애매하다, 심심하다 였어요.

최근 몇 년간 일제 강점기의 비극성을 담아낸 시대극이 자주 만들어지고 있죠.

군함도는 그중에 블록버스트급의 영화인 ‘밀정’과 ‘암살’이 흥행에 성공한 방식을 따른다고 할 수 있죠...

군함도의 제작비가 220억(마케팅 비용까지 270억)이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800만이라는 말도 있고 1000만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아무래도 대형 영화이고 국내 개봉만으로 승부를 봐야하기 때문에 타협을 하거나 안전한 흥행공식을 따라야 하는 면이 있겠죠.

그런 걸 감안한다면 참아줄 만한 대목(친절하고 호의적인 관객의 입장에서)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너무 쉬운 길을 택한 것 같네요.

황정민은 그동안 익히 보던 그 모습이고, 소지섭도 예상 가능한 모습이고, 이경영도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과 닮아있죠.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를 보지 않았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약간의 유쾌함이 제거됐을 뿐 그 인물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 같아요. 마치 그 배우들의 캐릭터에 맞춰서 에피소드를 만들어서 구성한 것처럼 보였죠. 그런게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인물들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기 보다는 전형석에 갇혀서 소비되는 느낌이었죠.

영화에 나오는 일본인들도 지나치게 악하게만 그렸고요.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단선적이네요.

사니리오도 군함도만이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여기저기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져온 설정을 버무렸다고 할 만큼 인상적이지도 성찰적이도 감동적이도 않았고요. 무엇보다 군함도 특유의 비극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요...

인물이나 시나리오는 클리셰 범벅이라고 해야 될 것 같네요.

음악(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겠지만)도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액션씬에서 긴장감과 비극성을 표현하기엔 너무 튀고 어색했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까를 생각했네요.

솔직히 답은 찾지 못했죠.

예를 들어 일본인에 대한 시각도 악인(악인으로 묘사해도)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성을 담아낸 모습이면 어떨까 싶었지만 어떻게 구현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평면적인 인물들도 입체성을 더해서 섬세하게 표현했으면 싶었지만 역시 답을 찾기 어려웠고요.

어쩌면 (타협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리를 두고 성찰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여전히 일본은 자신들의 과오와 만행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과 참회와 성찰이 없다보니 그 상처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한 내부적으로도 친일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그 짓눌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요. 그런 부담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어 보였어요.

또한 감독은 군함도의 지옥도를 통해서 헬조선의 비극성까지 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지만 민망할 만큼 너무 뻔한 방식이었죠. 직설 화법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닳아빠진 전개 방식이라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고 피로감이 들었어요.

그래도 국뽕에 취하지 않으려고 했고, 신파를 최대한 거둬내면서 거리를 두려는 의지가 엿보였지만 너무 설명적이고 계몽적인 몇몇 장면으로 인해 영화가 무너져버렸죠.

애초에 비극성에 초첨을 맞출 건지, 군함도로 끌려간 인간을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담아내려는 건지, 군함도를 현재화 해서 헬조선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려고 했던 건지 그 모든 걸 다 담아내면서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영화였네요.

그럼에도 군함도의 비극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아주 실패한 영화라고만은 할 수 없어요. 또한 재난 블록버스터로 본다면 시원함이나 통쾌함은 느끼기 어렵지만 그럭저럭 볼 수 있을 만큼 망작은 아니예요.

마치 실제 군함도에서 촬영한 것처럼 재현도 뛰어났고요. 다만 군함도라는 은폐되고 고립된 공간의 비극성과 폭력성을 공간을 통해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건 아쉽네요.

글구 아역으로 나온 김수안의 연기는 압도적이예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어요. 군함도를 그나마 살렸다고 한다면 바로 소희역으로 나온 김수안 때문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요.



첨언
군함도를 덩케르크와 비교하기도 하던데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아요.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던 이들이 탈출하는 것과 군인으로 참전(자발적 참전은 많지는 않겠지만)해서 싸우다가 후퇴하는 것과는 다르죠. 전쟁의 참상과 비극성, 그 가운데 공포와 생존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유사하지만 군함도의 비극과 덩케르크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의 비극은 앞서도 말했지만 현재진행형이죠. 적어도 일본이 전후 독일이 보였던 반성과 참회와 성찰 정도가 있었다면, 국내에서 프랑스에서 벌였던 나치 가담자에 대한 처벌 정도가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일제 강점기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피해자의 고통에서만 머물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시각이 용인되고 논의되고 토론이 가능했을 거예요. 영화나 소설에서 훨씬 다채롭고 생기 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말이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도둑
17/07/26 21:32
수정 아이콘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고싶었는데... 그런것없이 그냥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무난하더라고요. 시계 볼 정도는 아니라는것에 만족해야겠죠... 뭐..
발적화
17/07/26 21:34
수정 아이콘
그냥저냥 볼만했는데 류승완 감독이 찍은게 맞나 싶더군요....

초반 소지섭 싸움 장면 빼고는 명량 감독이 찍었다고 생각이 들정도..
젠틀늘보
17/07/26 21:45
수정 아이콘
웰메이드 탈출 액션 블럭버스트 무비를 목표로 했고 나름 성공한거 같습니다

군함도는 고립된 공간 역할에 지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이라도 알게 됐으니 그대로 좋고요

왠만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무비보다 구멍과 무리한 설정이 적어 매우 만족합니다
리콜한방
17/07/26 22:0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베를린을 제외하고 부당거래나 베테랑 모두 좋지 않게 봤는데 군함도는 그보다도 더 심하게 느껴지겠군요.
군함도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정현] 팬심으로 보고 싶긴 하나 고민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alphamale
17/07/27 00:20
수정 아이콘
아쉽게도 이정현의 분량이 매우 적다고들 하더라구요... ㅠㅠ
탈리스만
17/07/26 22:10
수정 아이콘
군함도 보고 왔는데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커트라인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 최근에 '사냥' 을 빼면 실패한 영화가 없었거든요.
심지어 닦이 영화라는 인천상륙작전도 괜찮게 보고 왔는데 군함도는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 그렇다고 절대평가에서 군함도가 인천상륙작전보다 못하다는 건 아닙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음? 박한 평가에 비해 볼 만 한데..' 였고
군함도는 ' 기대치에 비해 너무 별로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17/07/27 00:41
수정 아이콘
명량정도만 해줘도 보겠는데..
17/07/27 02:24
수정 아이콘
흥행을 위해 배우 먼저 섭외하고 소재를 군함도로 정한 다음 나머지는 다 짜맞춘 것처럼 느껴졌네요.
어찌그리도 뻔하게 캐릭터와 설정을 가져왔는지..
개인적으로는 군함도에 비한다면 명량의 작품성과 상업성을 높게 매기고 싶습니다...
알팅이
17/07/27 15:42
수정 아이콘
그래도 리얼이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겠지요...? 주말에 보러 갈건데...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17/07/27 16:37
수정 아이콘
제가 '리얼'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리얼이랑 비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기대치 좀 낮추고 본다면 그럭저럭 볼만 할 거예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7600 6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774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5923 8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8851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9124 3
101343 [일반] 다윈의 악마, 다윈의 천사 (부제 : 평범한 한국인을 위한 진화론) [16] 오지의1210 24/04/24 1210 3
101342 [정치] [서평]을 빙자한 지방 소멸 잡썰, '한국 도시의 미래' [12] 사람되고싶다1004 24/04/24 1004 0
101341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34] 사부작1874 24/04/24 1874 0
101340 [일반] 미국 대선의 예상치 못한 그 이름, '케네디' [44] Davi4ever4396 24/04/24 4396 2
101339 [일반] [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6] *alchemist*2156 24/04/24 2156 4
101338 [일반] 범죄도시4 보고왔습니다.(스포X) [22] 네오짱3467 24/04/24 3467 4
101337 [일반] 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결심했고, 이젠 아닙니다 [16] Kaestro3484 24/04/24 3484 10
101336 [일반] 틱톡강제매각법 美 상원의회 통과…1년내 안 팔면 美서 서비스 금지 [28] EnergyFlow3354 24/04/24 3354 2
101334 [정치] 이와중에 소리 없이 국익을 말아먹는 김건희 여사 [16] 미카노아2732 24/04/24 2732 0
10133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2) [14] Kaestro2701 24/04/23 2701 3
101332 [정치] 국민연금 더무서운이야기 [125] 오사십오9253 24/04/23 9253 0
101331 [일반] 기독교 난제) 구원을 위해서 꼭 모든 진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83] 푸른잔향3970 24/04/23 3970 8
101330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선거와 임직 [26] SAS Tony Parker 2852 24/04/23 2852 2
101329 [일반]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 [59] 회개한가인3614 24/04/23 3614 1
101328 [정치] 인기 없는 정책 - 의료 개혁의 대안 [134] 여왕의심복5970 24/04/23 5970 0
101327 [일반] 20개월 아기와 걸어서(?!!) 교토 여행기 [30] 카즈하2555 24/04/23 2555 8
101326 [일반] (메탈/락) 노래 커버해봤습니다! [4] Neuromancer740 24/04/23 740 2
101325 [일반] 롯데백화점 마산점, 현대백화점 부산점 영업 종료 [38] Leeka5587 24/04/23 558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