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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12 11:21:11
Name singularian
Subject [일반] 새로운 친구를 맞이했습니다. (수정됨)
새로운 친구를 맞이했습니다. [평문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 서로 의지하며 정서교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내게 깍듯했던 그 녀석과 헤어진 후 남은 정을 떼는 게 너무 힘들었던 지난 기억이 더 이상 또 다른 시작을 안에서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이란 것이 똭 1:1 물물교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석이 내게 냉겨(?) 논 것에 눌려서 그것을 치우는데 한참 걸렸다. 

그런 힘든 경험이 있었던 다음엔 일방적으로 정만 줄 수 있되 내겐 냉정한 친구를 사귀기로 했다. 마음 약한 내가 언제든 정을 떼기 쉽도록. 그중 하나가 오래 동안 곁에 두었던 친구인 반려 머그컵이다. 

그런데 매일 시달리는 진한 커피의 등살에 그 컵 속의 단단한 유약이 거북이등 마냥 갈라지고 그 갈라진 사이로 지워지지 않는 커피 물이 든 것에 더하여 이젠 뚜껑마저 박살이 났다. 

도자기 표면의 유약이 경시변화(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로 갈라지고 그 안에 때가 끼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그것이 나와 오랜 친구라는 증표로 느끼고 있었으나, 뚜껑이 깨지고 나선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China, Porcelain) 축제에서 만난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져 왔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맺기로 했다. 

한때 돈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 취미로 한동안 도자기가 매우 궁금하던 시기가 있었다. 심취라고하기 보다는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가 있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에 궁금증이 더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려청자는 순수한 고려 장인들의 솜씨라기보다는 당시 우리의 서남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상해 아래 절강성 부근의 도자기술자들이 전란을 피해 송(또는 5호16국)나라 여권을 들고 전라도 지역으로 피란 와서 기술을 전파했고 고려인들이 이를 응용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고 들었다. 

특허청이 개청하기 한참 전의 일이지만, 그 도자기 제작에 관한 Know-how의 지적재산권이 한국이 독자 개발한 것도 훔쳐온 것도 아니다. 그들 중원의 기술자들이 이 땅으로 이민을 왔고 동시에 그 기술이 묻어온 것이다. 청자의 기원도 11∼12세기가 아닌 10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화나 기술의 전파나 이전을 보면, 시카고나 뉴욕의 피자를 참고해 보면 된다. 이탈리아 이민이 가지고 온 식문화를 미국에 맞게 변화시켜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중원 이민자들이 가져온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한국인들이 청출어람 명품 청자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 땅에 살던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창의력은 만땅이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봤다. 

그 궁금증 바람에 타이페이의 국립박물관에 가서 오전 오후 밥 때도 놓쳐가며 하루 종일 도자기 감상만 하고 온 적도 있다. 

거길 가보니 내가 보고 배우던 단색기물인 우리의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당삼채라고 하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도자기가 많이 있어, 내심 도자기의 새로움을 느끼고 왔었다. 

당삼채라고 하는 채색 도자기는 보기만 했어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궁금함을 해소하러가서 오히려 더 붙여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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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나라들이 서역과의 교류 증표인 당삼채 낙타가 보인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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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머리는 우리 고려시대의 총각머리인데, 당시 그 동네 미장원엔 저 머리가 유행했었나보다. [출처 : 인터넷]


엄밀히 말하면 당삼채는 자기(사기)는 아니다 도기(점토 흙)이다. 굽는 온도도 자기(1,300‘도 이상)에 비하여 낮은 900’도 정도의 온도라서 굽는 중 안료의 색이 덜 날아간다. 그래서 당시의 기술로 자기보다 도기는 색 표현이 더 쉬운 반면에, 대신 잘 부서진다. 

도자기(특히 자기)는 과거 전 세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었다. 중국이 독점적으로 수출하던 시절, 이 도자기는 상류층이 수집하는 물품목록 중 으뜸의 대상이었다. 도자기는 금, 은, 보석이나 후추 같은 향신료와 같이 서역에선 매우 진귀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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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이전에 도자기의 주 고객층은 이슬람이었고 주력상품은 하얀 바탕에 청색으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였다. 발주처인 이슬람은 자신의 그림과 무늬를 화공에게 주고 자신들의 취향과 문화에 맞도록 주문을 넣어 많은 그릇을 수입해갔다는 것은 지금도 남아 있는 그들의 도자기 주문서에서 알 수 있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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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중국의 도자기 화공이 자국 문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슬람 상인이 가지고온 그림과 글자를 묘사하여 도자기에 넣었다. 애플의 아이폰 마냥 차이나(China)의 도자기(China) OEM/ODM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그 후 유럽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중국과 일본(임진왜란 이후)에서 도자기를 사갔다. 

이슬람의 부유한 집안에서는 청화백자를 수집하였으며 이슬람의 왕이 천여점의 청화백자를 신에게 바친 것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접시로 건축물을 꾸미기도 했다. 가정집 커다란 분수대에 다양한 크기와 문양의 접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로선 다소 뭥미스러운 모양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에는 도자기가 엄청난 부의 상징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커다란 보석이 박힌 분수대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도자기에 열광했으며 매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도자기를 가지려 했다. 도자기는 귀했을 뿐만 아니라 목기와 토기와는 달리 설거지도 잘돼 위생적으로도 깔끔해서 선진문화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의 도자기는 중원에서만 생산할 수 있었지만 순수하게 중원문화만으로 발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이슬람문화는 새로운 자기의 시대를 열도록 한 열쇠였다. 청화백자의 등장은 코발트 안료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고열에서도 안정적으로 견딜 수 있는 이 안료는 당시 이슬람만 공급할 수 있는 독점적 희토류(Rare Earth)였다.

청자의 비색은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민족은 물론 세계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상들이 고려의 청자에서 조선의 백자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거란이나 여진(만주)족 등이 대륙의 교역로를 막아 이슬람으로부터 코발트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Supply Chain은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당시 1,300’도 이상의 열관리 능력이 있어 도자기를 가마에 구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원의 집권국, 한국 그리고 월남뿐이었다. 베트남 역시 쩐(Tran 1225~1400)왕조시기에 도자기의 시대가 있었다. [용산 국립 박물관에도 몇 점 있다] 


_ ഗ _ ഗ _ ഗ _ഗ _ ഗ _ഗ _ ഗ _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머그컵을 구했다. 무게감이 있는 것을 보면, 본차이나는 아니다. 

새로 마주한 이 친구의 선이 아주 예쁘고 무늬도 맘에 든다. 처음 봤지만 오래사귄 친구 같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도자기 분야 역시 특별한 감상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냥 그대로 본인의 당시 감정이나 느낌 등이 감상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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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것이 본인이 가까이 하고 싶은 만큼만 눈에 들어오고, 아는 깊이만큼 엑스터시를 느낀다. 이것은 직접 보고 만지고 몸소 느껴야만 그 기억이 시간과 함께 내게 누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손의 느낌과 그 경험이란 것은 오로지 나와 만의 dialogue archive이다.

예술 이론이야 설대 미학과를 안다녀도 서적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아무리 예술을 잘 안다 해도 나의 감정이 일렁이지 않으면 그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흔한 도자기 일뿐이다. 

새 친구는 쉽게 무언가 표현하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몸의 선이 쭉쭉빵방 곧게 서있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손잡이의 멋들어진 휘어짐에서 섹시함도 느낀다. 은은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매무새가 자기 멋의 컨셉인냥 도도하다. 바탕색 또한 은은한 우유 빛인 것이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부드러움 그 자체로 편안함이 전달된다. 

전사지이겠지만, 무늬로 그려진 화초는 채색된 묵화처럼 오래두고 보기에 편안하다. 이런 느낌은 화려함과는 달리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
.
.
이젠 너 멋있는 건 알겠는데, 근데 너 얼마짜리니?

응... 얼마 안 해, 달랑 ₩2,000원이야.

겨우 이천원짜리라 교환가치가 루이비똥 핸드백 보다 낮아 가치가 없다고 폄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흔해서 벌어진 착시이며 따라서 명백한 오류이다. 

새로 사귄 이 친구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같은 종류의 품위 있는 고령토로 정성스레 빚어졌고 그 당시와 같은 유약이 발려져 그때와 같이 1,300‘도의 고열의 고통을 견디며 구워져 네가 됐다. 도자기 탄생의 산고(탄생의 고통)는 고려시대도, 조선시대도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도 모두 똑 같다. 

네가 혹시라도 고려시대에 태어나 신안 앞바다 갯벌에서 자다가 지금에서야 세상으로 나왔다면, 나와의 인연으로 맺어질 그런 가능성은 낮다. 

지금은 선반위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것이 값싼 32나 64G USB 메모리라고 하지만, 한때는 16M-DRAM을 007백에 가득 넣고 뉴욕공항에 내리면, 메모리 쇼티지 시대에 그 값이 강남의 자그마한 건물하나는 살 수 있을 정도의 교환가치가 있을 때도 있었다고 들었으니... 
같은 물건이라도 교환가치란 시대마다 유행마다 기술 수준마다 다르니 말이다. 



_ ഗ _ ഗ _ ഗ _ഗ _ ഗ _ഗ _ ഗ _



행복이 별거냐, 사랑이 별거냐. 
너와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네가 늦게 태어나 지금의 나와 인연을 맺어준 것에 감사한다. 



_ ഗ _ ഗ _ ഗ _ഗ _ ഗ _ഗ _ ഗ _



그리운 날은 상념에 잠기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  .  . 
꽃을 보듯 너를 본다. 
그럼 네게선 그윽한 커피 향이 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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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thanasia
22/02/12 11:44
수정 아이콘
평문은 암호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interconnect
22/02/12 12:25
수정 아이콘
보통의 글. '그냥 글'이라는 뜻도 있고, 이게 더 많이 쓰여요.
Euthanasia
22/02/12 12:55
수정 아이콘
보통의 글이면 특수한 형식이 없는 글이란 뜻인데 본문에서 의도한 뜻은 평어라고 보여서요. 그냥 특수한 형식이 없다는 뜻이라면 제가 잘못 짚었네요.
실제상황입니다
22/02/12 12:29
수정 아이콘
사전대로만 단어를 쓸 필요도 없지만 평문은 사전에도 보통의 글이란 뜻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Euthanasia
22/02/12 12:57
수정 아이콘
네, 그걸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암호문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특수한 형식이나 규범을 요하는 글이 아닌 보통의 글이란 의미가 아니라 평어로 서술하겠다는 양해를 구하는 뜻이기에 서두에 적었다고 해석했어요.
실제상황입니다
22/02/12 13: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보통이라는 말도 굉장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단어죠. 뜻 자체만으로도 그런데, 실제 용례상으로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평문이라는 것도 어떤 맥락으로 쓰이고 있느냐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 가능한 표현이라 보구요. 더구나 위 댓글에서도 썼지만 사전대로만 쓸 필요도 없습니다. 평문 그런 뜻 아니라는 지적이 저한테는 다소 넌센스처럼 들립니다.

가령 "평어로 서술하겠다는 양해를 구하는 뜻이기에 서두에 적었다고 해석했어요"라고 하셨는데, 이때 Euthanasia님이 사용한 "평어"라는 말조차도 사전적으로 보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근데 저는 그런 맥락으로 유도리 있게 쓰는 거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편이거든요. 사실 대부분이 그냥 그렇게 살구요.
人在江湖身不由己
22/02/12 12:59
수정 아이콘
보통 평서문이라고 쓰지 않나요...
씹빠정
22/02/12 12:19
수정 아이콘
고려 조선의 도자기는 중국이 원조다 머 이런얘기인가요?
singularian
22/02/12 13:10
수정 아이콘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중원의 국가보다 빠르게 1,300‘도를 이루어 낸 나라가 없습니다. 자기제조는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도 이슬람도 초기에는 900’도 이하의 도기만 구어 냈습니다. 1,300'도 올릴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나중에 가마의 비밀을 알아낸 이후에나 자기를 구어 냈습니다.

고려나 조선의 경우 도자기 기술이 있음에도 확산이 억제된 이유는 가마 연료로 쓰이는 목재의 남벌로 인하여 산림훼손이 막대하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으로 절제되었습니다. 에너지 부족 국가...

그래서 관납의 고급품의 경우 관요를 직접 나라에서 운영하던가하고, 서민용은 필히 가마 설치 허가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산을 이동하며 가마를 만들어도 될 산림자원이 충분히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산하나 파먹고 다음 산으로 가고... 그동안 나무는 자라고...
씹빠정
22/02/12 13:13
수정 아이콘
도자기를 수천개씩 굽는게 아닌데 나무가 모자랐다는게 납득이 가질않네요. 더구나 중국일본처럼 산을 옮겨다니지못할 이유도 없어보이구요.

그렇게 생각하신 근거가 먼가요?
닉네임을바꾸다
22/02/12 13:26
수정 아이콘
뭐 조선 중기(임진왜란)이후로는 전쟁(2번의 호란)에 기근(경신대기근)등으로 경제가 한번 나락갔었을테니 그 여파로 확산되지 못했다가 더 나을거같긴한데...
singularian
22/02/12 13:39
수정 아이콘
기억하기론 전에 읽은 책에 나와 있었습니다[찾지는 못했습니다].
관련 글이나 논문 등은 여럿 있다고 봅니다.
취사와 난방의 가정용 수요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의 산업적 수요인 건축용 목재, 선박용 목재, 도자기와 소금을 만들기 위한 연료재도 산림에서 나왔습니다. 이 외에도 전선(해군) 제조, 궁궐 건축에 필요한 목재와 궁궐의 난방과 취사, 관용 도자기 제조에 필요한 연료 등이 필요한데 그리 충분치는 않아서 정부에서 번호매겨 관리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자라나는 물량 이상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재라야 충분한 열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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