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을 잘 못 마십니다. 흔히 요즘 말하는 술찌죠.
제 자신의 주량 사이즈(?)를 처음 알게 된건 18살 때였습니다.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큰아버지가 어른들 한테 술 배우는 거라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줬었고 그거 세잔 마시고 30분 간격으로 두번 토하고 뻗었습니다.

위기는 금새 다가 왔습니다. 대학 시절 뭔놈의 인간들이 틈만 나면 술을 마시자고 합니다.
물론 저는 사람들끼리 하하호호 떠드는걸 좋아 하기 때문에 그런 "자리" 는 좋았지만 문제는 술 이였죠.
공강이면 다들 모여 교내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자주 마셨는데, 신입생은 첫잔을 지름 15cm 정도 높이 20cm 정도 되는 코펠에
가득 따라놓고 원샷을 시켰습니다. 또래 여자애들도 그걸 순순히 마시는데 하찮은 자존심에 거부 할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다 마시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 하고 그런 술자리를 반복 했습니다.

MT는 더 고통 스러웠습니다. 소주를 냉면사발에 부어 주는데 그거 한번 마시고 나면 흔히 술병 이라고 다음날 까지 물만 마셔도
토하고 잠도 제대로 못들고 피부에 두드러기 까지 났습니다. 소주 두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 지는데 당연한 결과죠.
제 인생 유일하게 필름 끊긴날이 어느날 술집에서 과 사람들이랑 게임하면서 술 마시기를 하는데 제가 하도 안걸리니까
모두 저를 저격해서 맥주 글라스로 소주 7잔을 연거푸 마신적 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강의실 책상에 누워있더군요.

사회에 나와선 그나마 쉬워졌습니다. 대학시절 수련의 결과로 주량이 약간 늘기도 했고 재수 좋게 술 강요하는 직장 상사를
만나보진 못했습니다. 스트레스는 항상 근거리에서 온다고 오히려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항상 스트레스 였습니다.

"야 뭐하냐 좀 마셔라" "하 이xx 또 짠만 하고 내려놓네"

가끔 오기가 생겨서 연중행사로  억지스럽게 마시기도 해봤습니다.
그렇게 친구들 앞에서 오바이트도 하고 다음날 일어나서 몸에 두드러기 난것도 보여주고,
한번은 60도 짜리 바카디 반병을 마신적이 있었습니다. 일반 스트레이트 잔 보다 더 긴 잔에 7잔, 작정하고 한번 보여주려고 마셨죠
"나는 술을 이만큼 마시면 이렇게 된다" 저렇게 마시고 술집에서 토하고 술집에서 나와서 토하고
택시에 내려서 집 앞에서 토하고 집에 들어가서 자기전에 토하고 4번 토하고 그 다음날까지 죽는줄 알았습니다.

저런걸 보여줘도 친구들은 제가 술을 안 마시는게 마음에 안드나 봅니다. 다음 다다음 다다다음 술자리에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하여간 이xx는 여자들 있을때만 많이 마셔요"
저는 여자들이 소주 마셔도 술 못 마신다 솔직히 말하며, 혼자 맥주를 마시고 더 마셔봤자 맥주 한두잔인데
친구들에겐 그게 큰 차이로 보이나 봅니다.

이제 곧 40대고 같이 술마신지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친구들이 이제 좀 인정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