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6/04 04:06:21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오밤중에 개소리하기
내가 롤을 접었던 가장 큰 이유가 남 탓이었다. 롤 포함 팀 게임을 하다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죄다 '쟤 때문에 망했어'라고 말한다. 거기서 지목한 '쟤'가 될 때도 있었지만, 그냥 그런 남 탓이 매번 나오는 게 질려서 그만둔 게 가장 컸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고민이나 하소연이 많이 올라오는데, 누가 봐도 본인 잘못임에도 이를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피해자인 척 글을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뭐, 인터넷뿐일까. 현실에서도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멋있어 보일 정도다.

남 탓하는 게 확실히 속이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잠깐일 뿐이다. 남 탓이 지속되면 그것도 습관이 된다. 그러다 삶의 모든 불행을 한데 묶고는 '내가 불행한 건 잘못된 세상 때문이야'라고 세상을 탓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살면 발전이 없다. 잘못되고 잘 안 되면 쉽게 세상 탓만 해버리고는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조금도 고민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그렇게 된 건 세상 탓이니,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는 삶이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런 세상의 문제점을 볼 줄 안다고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선비, 프로불편러, 방구석 여포가 탄생한다.

그럼 세상은 아무 잘못이 없나? 당연히 아니다. 완벽한 세상,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서도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있다' 같은 꼰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성공이 노력 때문인지, 운 때문인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 탓하는 주제에 세상 탓한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점이다. 세상 탓만 하면서 아무런 발전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남 탓하는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 제대로 세상 탓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사람들은 '내 탓이오'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더 멋있는 삶을 산다. 아니, 멋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숭고하다는 단어가 적확할 것이다. 진심으로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세상을 바꾸려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말이다. 그런 사람이 마틴 루터 킹, 이한열,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다.

남 탓하는 사람과 진심으로 세상을 탓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남 탓하는 사람은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고, 무엇보다 발전이 없다. 진심으로 세상을 탓하는 사람은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아프고, 대부분 돈도 없더라. 그러니 세상 탓하고, 타인을 흉보기 전에, 나부터 잘 먹고 잘살자. 세금이라도 많이 내면 그것도 세상에 좋은 일 하는 거다.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기부라도 하자. (기부는 물질적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그러다가 끝내 답답하고 못 참겠어서 세상을 바꿔야겠다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진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조낸 열심히 살자. 일단 열심히 살고 나서 세상 탓하자. 그리고 꼬우면 성공하는 게 답이다. 성공하면 갈아엎기 훨씬 쉽겠지? (하지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게 함정)

※ 김용현씨 다큐 보다가 울컥해서 의식의 흐름 따라 싸질렀음을 밝힘.

※ 사실 이 말을 제일 잘 들어야 하는 게 바로 나야!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0/06/04 04:26
수정 아이콘
자존감의 문제죠.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하니 살기는 빡세고 만족은 없고..

지나친 경쟁 사회의 부작용 같기도 하구요
실제상황입니다
20/06/04 05:0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건 예전에 피지알에서 한번 했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재탕하는 겁니다만...

내탓인가 아닌가 진지하게 이걸 따지기 시작하면 자기 탓을 할 수가 없죠. 아니 자기 탓이라니? '자신'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나요? 자아는 허상이라고들 하잖습니까. 물론 '그 허상인 자아가 바로 나다!'를 시전할 순 있겠지만, '그 허상인 내 자아가 주체적이다!'를 시전할 순 없죠. 유물론자가 아니라 종교인이면 모르겠습니다만... 유게에 노력vs재능 뭐 그런 종류의 게시글 올라오면 응~ 노력도 재능이야~ 같은 소리 하잖습니까 왜. 요컨대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원론적 세계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죠. 인간은 오토마타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자기통제라는 건 존재하지 않죠. 모든 것은 자연이 결정합니다. [오오 온 우주가 도와준다]

어쨌든 세상만사가 그러하니 모든 게 인연이라는 거지요. 다양한 조건들의 발생과 이동,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의 만남... 개개의 존재는 형성될 뿐이구요. 진짜 이걸 진지하게 따지기 시작하면 저는 우리가 인간성이라는 걸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제껏 믿어온 인간관은 포기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 따라서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인간... 이게 인간인가요? 아니죠, 오토마타죠. 그걸 내면화 하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냥 사는 거죠 뭐. 저는 여기서 공허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은 한편의 꿈이라고 보거든요. 우리는 우리가 주체적인 인간일 것이라는 꿈(기대)에 과몰입을 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객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게 꿈이라는 걸 가끔씩 의식 정도 할 수 있을 뿐(그러나 반대편도 꿈일 뿐입니다. 나비도 꿈 장자도 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이 꿈이라면, 우리를 공허하게 하는 것이 깨달음이고 자각이랄까요? 꿈에서 깨어날 수도 없고 하여튼 일단은 이 꿈에 충실하긴 해야 하는데...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뭐 이런 중2병스러운 결론이 나오네요. 그냥 웬 잡놈의 개똥철학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밤중에 저도 개소리 한번 해봤네요.
20/06/05 08:25
수정 아이콘
우파니샤드에서는 말씀하시는 꿈에서, 깨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네요.
-----------------------------------------------------------------------------
분별력이 없는 사람, 마음이 불안정하고 가슴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또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분별력을 가진 사람, 마음이 안정되고 가슴이 순결한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며 태어남이 없는 세계에 도달할 것이다. <카타 우파니샤드>
치열하게
20/06/04 09:48
수정 아이콘
남탓은 안하는데 발전이 없다면 자기탓을 너무 하는 것일까요???
마스터충달
20/06/04 14:01
수정 아이콘
남탓을 하면 발전이 없는 것이지, 남탓을 안 한다고 무조건 발전하는 건 아니죠.
20/06/04 12: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평균적인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피해자임틀 자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문구 하나 퍼와봅니다.
물론 아래의 말을 가장 잘 들어야 하는 건, 본문 마지막에 써주신 것처럼 저도 저 스스로라고 생각합니다.

---‐---------------------‐-------------------------------
[피해자가 되려는 거대한 경쟁이 있다.]

자신을 파괴하려는 appeal은 중독과도 같은 것이다.
당신은 가난, 타락, 희생, 고통, 피해자가 되는 것에 붙잡힐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엄청난 단물을 얻는 것이다. 하하하
이 세상에서 피해자가 되는 것에서 얻는 단물을 이길 것이 없다.
내말은 깨닫는 것을 제외하면 피해자가 되는 것에서 얻는 단물을 이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편에 서줄 변호사들을 구하고 맥도날드를 발라버릴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기를 열망한다. 피해자가 되려는 거대한 경쟁이 있다.
 
원인은 언제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원인은 언제나 부자들이다.
가난한 여자의 집 앞 보도에 쌓인 눈에서 넘어졌다고 그녀가 고소당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은 부자들에게만 일어난다.

//

피해자와 불의가 없다면 당신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들이 벗어나기 가장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가 거기에서 번창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불의, 비난, 자기연민, 희생자, 피해자에서 번창하기 때문이다.
가해자 피해자 모델은 사회에서 아주 인기 있다.
피해자가 되는 관문이 몹시 붐빈다는 의미이다.

- 호킨스, 2004
20/06/04 13:00
수정 아이콘
내 탓을 자처하면 손해보는 세상이 되어버려서요
마스터충달
20/06/04 18:28
수정 아이콘
일겅...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6558 [일반] 한국(KOREA) 여성이 페미니즘에 등돌린 이야기 [38] 영소이10695 20/06/04 10695 24
86557 [일반] 한국(KOREA)형 창작 클래식 음악 모델 [38] 표절작곡가8297 20/06/04 8297 17
86556 [일반] 에어컨의 계절이 왔습니다. 에어컨이 컴퓨터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6] 트린다미어10280 20/06/04 10280 6
86555 [일반] 판타지 소설 추천. [38] 굴리9812 20/06/04 9812 0
86554 [일반] 계모가 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둔 9세 아이 숨져 [33] 로즈마리9231 20/06/04 9231 1
86552 [일반] [미국] 매티스 장군, 트럼프 강도높게 비판하다 [72] aurelius10921 20/06/04 10921 14
86551 [일반] 존속살해혐의도 되쳐버리는 성폭행혐의.news [114] 아지매13002 20/06/04 13002 10
86550 [일반] [개미사육기] 개미의 친구, 나이젤 (사진 있어요) [40] ArthurMorgan7815 20/06/04 7815 27
86549 [일반] 오밤중에 개소리하기 [8] 마스터충달6740 20/06/04 6740 5
86548 [일반] 프루스트를 읽으며 생각해본 문학작품을 읽는 것의 의미 [22] 소오강호6642 20/06/04 6642 1
86547 [일반] 정보와 혐오 [12] UMC7510 20/06/04 7510 2
86546 [정치] 그 왜 진실의 눈과 머리인가? 하는 극우 카페 있잖습니까? [29] 공기청정기11284 20/06/03 11284 0
86545 [일반] [검술] 나의 검은 봄바람과 같나니, 야규 신카게류 [27] 라쇼7595 20/06/03 7595 3
86544 [정치] 역사왜곡금지법 발의 [457] 치열하게22183 20/06/03 22183 0
86542 [일반] 고이다 못해 썩은 숙련도. [21] 공기청정기9857 20/06/03 9857 1
86541 [일반] 고등학생이 쓰는 등교, 올해 교육의 문제점 [18] 와드박는피들7851 20/06/03 7851 14
86540 [정치] 코로나19 이후 국민들의 신뢰도 변화. [24] 감별사10616 20/06/03 10616 0
86539 [일반] 요즘 근황 [9] 공기청정기8151 20/06/03 8151 0
86538 [일반] 30분 늦은 사회복무요원, 복무 5일 연장 [27] 은여우9784 20/06/03 9784 3
86537 [정치] 박정희 대통령의 수도이전계획 보고서 [74] 삭제됨11591 20/06/03 11591 0
86536 [일반] 4-3-3전술과 4-2-3-1 전술이라고 쓰고 쓸데없는 잡담입니다 [16] 제논7534 20/06/03 7534 1
86534 [일반] 여성 징병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 [257] 라임트레비19419 20/06/03 19419 38
86532 [일반] 끌어당김의 법칙인가 뭔가 이해해보기 [18] 9920 20/06/03 9920 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