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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26 22:37:01
Name VictoryFood
Subject 과거에는 옷감이 왜 이렇게 비쌌나? (feat. 비단, 양모, 무명) (수정됨)


그저께 문화유산채널 유튜브에서 전통방식으로 비단을 짜는 방법의 ASMR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누에벌레가 뽕잎을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치를 만들고 그 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어 실을 뽑아내고 그 실을 베틀로 비단을 짜는 것까지 모두 ASMR 로 보여줍니다.
(누에벌레가 나오니 주의하세요.)
설명이 하나도 없는데도 넋놓고 보게 되네요.

베틀로 옷감을 만드는 건 많이 봤지만 실제 실은 어떻게 뽑는지 몰랐는데 저렇게 고치를 뜨거운 물에 녹여서(?) 실을 뽑아내는 거였군요.
물론 실을 뽑는 데애도 상당히 많은 과정이 들어가지만요.

이걸 보니 왜 이리 비단이 비쌌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저리 손이 많이 가도 실제 나오는 양은 그다지 많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잠깐 여담이지만 비단의 시초는 중국이고 - 실크로드 - 특히 사천성 지방이 유명했다네요.
촉금이라고 불리는 촉나라의 특산품이었구요.
제갈량이 죽을 때 뽕나무 8백그루가 있다고 한 것도 그 뽕나무를 통해서 비단을 만들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 것이었죠.

이 영상을 보고 궁금해서 다른 옷감은 어떻게 만드는지도 찾아봤습니다.



비단과 함께 대표적인 동물섬유인 양모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영어 자동 자막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말을 안 들어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이어폰으로 들으시면 목소리는 왼쪽에서만 나오니까 오른쪽 이어폰만 끼면 ASMR 같이 볼 수도 있어요. ^^

양모도 만드는 것은 거의 비슷하군요.
양에서 털을 깍고 그 털을 씻고 말린 후에 물레로 실을 뽑아냅니다.
누에고치야 고치 하나에서 실이 얇게 나온다지만 양털은 짧게 잘리는데 길게 실이 나오는게 신기하네요.
방식은 비단과 같이 여러 양털 섬유를 모아서 실을 만드는 건데 저렇게 단순히 물레를 돌리는 것으로 긴 실이 만들어지는군요.



그래도 옷감하면 뭐니뭐니해도 면직물, 즉 무명이죠.
목화를 이용해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대중들의 옷을 해입는 것은 면직물이었습니다.

위 영상은 목화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영상입니다.
목화의 씨를 감싸고 있는 솜을 얻기 위해 씨를 다 제거하고 그 솜에서 섬유를 얻고 있네요.
저렇게 하고난 다음에는 비단이나 양모 처럼 물레를 이용해서 섬유를 실로 만드는 거랍니다.
실로 만든 다음에야 역시나 베틀을 이용해서 옷감을 만들었을 거구요.



저런 방식을 요즘 기계로 하면 이렇게 되나 봅니다.
사람이 하면 기껐해야 목화솜 수십-수백개를 손질할 수 있을 텐데 기계로 하니 대단위로 할 수 있게 된 거겠죠.

어쨌든 저렇게 여러 과정을 통해 힘들게 해서 만드니 옷감은 비쌀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옷은 의식주 중의 하나라 필수품이었고 옷은 헤어지니 입다보면 어쩔 수 없이 꼭 새로 해입어야 했죠.
이러니 면포가 과거 화폐로 사용되었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사실 지금 지폐도 종이가 아닌 면으로 만듭니다.)



이러다가 1733년에 영국에서 존 케이라는 사람이 플라잉셔틀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계를 발명합니다.
베틀의 북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해주는 건데요.
하나하나 손으로 움직여야 했던 옷감 제조방식을 획기적으로 줄여줬죠.

이렇게 방직기가 자동화 되다보니 방직기의 원료가 되는 실의 수요도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위 영상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사실 베틀로 옷감을 만드는 것보다 물레로 실을 뽑아내는 게 더 소규모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전방 산업이 기계화가 되었으니 후방 산업이 이걸 어떻게 커버했겠어요.



그러다가 1765년에 제임스 하그리브스 라는 영국 목수가 아내의 이름을 딴 제니 방적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건 목화에서 실을 뽑아내는 것을 기계화한건데 8개의 물레를 동시에 돌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영국이 화폐로도 사용될 정도의 중요한 면직물을 마구마구 뽑아내게 되니 이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겠습니까.
이 영상들을 보다보니 왜 산업혁명에서 방직기와 방적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알겠더라구요.
우리는 흔히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직물 산업이 더 중요했다고 하니까요.

비단 짜는 영상으로 시작한 호기심으로 찾아봤는데 그냥 인터넷에서 찾다보니 틀린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공자분들이 보시기에 틀린 내용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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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20/01/26 22:49
수정 아이콘
먼 과거에는 대부분의 것들이 비쌌죠. 공업이 발달하며 대부분의 것들이 싸졌고 싸지고 있고..
헤이즐넛주세요
20/01/26 23:04
수정 아이콘
할머니 세대까지는 길쌈하느라 이골이 날 정도였으니, 수천 년간 아낙의 삶에서 길쌈으로부터 해방된지가 불과 얼마 안되네요.
남자는 소키우며 밭갈고 여자는 길쌈하느라.. 견우와 직녀..
VictoryFood
20/01/26 23:11
수정 아이콘
댓글보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전근대 시절에는 의식주 중에서 남자는 농사를 지으며 식(食)을 책임지고, 여자는 길쌈을 하면서 의(衣)를 책임 졌잖아요.
집에 해당하는 주(住)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책임졌고요.
(물론 백프로 그렇다는게 아니라 주로 그랬다는 겁니다.)
여기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경제활동을 남자들이 주로 하게 되고 그게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든 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1/26 23:45
수정 아이콘
어느 정도는 맞는거 같네요. 보통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환경은 남성의 경제 기여도가 큰 것이 영향을 주더라고요.

지금은 논박도 많이 되지만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해서 여자가 시집가려면 일방적으로 혼수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북인도 같은 경우는 건조한 지역이라 쟁기를 이용한 깊이 갈이에 남성의 노동력이 필수적(+소)이라 그런 문화가 생긴 것으로 유추하더군요. 반대로 남인도나 서아프리카 같이 습윤한 지역의 경우 여성들의 노동력도 굉장히 중요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더 향상되었다고.
계층방정
20/01/27 07:23
수정 아이콘
출처가 안 나와 있는 게 아쉽긴 한데 나무위키 가내수공업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더군요. https://namu.wiki/w/%EA%B0%80%EB%82%B4%EC%88%98%EA%B3%B5%EC%97%85
설사왕
20/01/26 23:16
수정 아이콘
패딩만 해도 불과 몇년새 엄청나게 싸지지 않았나요? 7, 8년 전 대비 거의 반값 정도밖에 안되는것 같습니다.
겨울이 안 추워서 안 팔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오리털이나 거위털 등의 수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지 모르겠군요.
만약 공급이 늘어나 그렇게 된거라면 한편으로 그 친구들이 안쓰럽네요.
87%쇼콜라
20/01/26 23:29
수정 아이콘
오리털 회사쪽에서 일해봤는데, 원래는 한국이라던지 그외 국가들이 작업했을때는 공급이 수요보다 작아서 단가가 비쌌는데, 최근 몇년가 패딩유행으로 인해서 털 시장 공급경쟁이 시작되었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가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이죠.
20/01/26 23:57
수정 아이콘
옷을 만들어입는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Euthanasia
20/01/27 00:27
수정 아이콘
삼베가 궁금했는데..
VictoryFood
20/01/27 00:37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YS-e-bbWJjE
이게 삼베실을 뽑는 과정인데요.
삼베는 다른 섬유와는 달리 섬유에서 실을 만드는게 아니라 껍질을 잘게 갈라서 만들더라구요.
물레와 같이 방적 과정이 없어서 본문에서는 뺐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qb9vbL3eY
실을 만든 후에 베틀로 옷감을 만드는 건 비슷하구요.
forangel
20/01/27 00:41
수정 아이콘
70년대말인지 80년대초인지 아주 어릴때 동네 어떤집에서 누에 기르고 영상처럼 고치 삶고 틀 같은걸로 비단 짜내는걸 볼수 있었습니다.
목화나 삼베는 어머니가 짜던걸 본 기억도 있구요.

누에 기르던집가면 뽕나무 냄새인지 누에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특유의 냄새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데...
죽을때까지 다시 그 냄새를 맡아볼일은 없겠죠?

덤으로 최근에 낙타털 코트 샀는데 낙타털은 어떻게 채취하고 가공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20/01/27 00:59
수정 아이콘
섬유공학 전공자입니다만

훌륭한 글입니다 크크크
VictoryFood
20/01/27 01:0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흐흐
20/01/27 01:54
수정 아이콘
물레로 어떻게 실을 뽑는거에요?
VictoryFood
20/01/27 10: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비단의 경우는 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고치에서 섬유가 끄트머리가 일어나는 거 같습니다.
그 끄트머리들을 모아서 물레로 돌리면 섬유질이 엉킨 상태로 얇게 올라가는 듯해요.
면의 경우는 솜에서 씨를 빼고 치면 또 섬유질이 엉켜있는데 이걸 얇게 빼서 물레로 돌리면 역시나 섬유질이 엉킨 상태로 올라가는 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1kxHisUZ8eM&t=
요 영상이 아주 간단한 물레로 목화솜에서 실을 뽑는 영상인데 이런 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slx0Mxn-E8
요 영상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네요.
11년째도피중
20/01/27 02:4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런 글로 인해 생활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주어졌으면 좋겠네요.
작금의 시대는 민족사 일변도보다 생활사, 경제사 등이 주는 영향이 더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흐름이 쭉 계속 되지는 않겠지만요.
저격수
20/01/27 13:18
수정 아이콘
저도 실상 궁금한 건 생활사, 경제사, 과학사 같은 것들입니다만, 교과서에는 나와있지 않네요.
11년째도피중
20/01/27 19:45
수정 아이콘
역사 교과서가 왜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하면, 교과서에 실려있으면 곤란하겠죠. ^^ 실려있어도 당연히 민족사를 보조하는 형태로 실려있고요.
the hive
20/01/27 03:31
수정 아이콘
이 결과로 영국과 인도의 면화 무역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었었다고;;
삼성전자
20/01/27 11:41
수정 아이콘
아 간디가 물레를 돌리며 국산애용 운동을 한 이유가 이거였군요.
tannenbaum
20/01/27 08:05
수정 아이콘
어릴때 누에 치던 집들이 동네마다 있었어요.
한번씩 놀러가면 모내기판 같은 게 층층이 쌓여 있고 거기에 꼬물대는 누에벌레들이 와글와글.
근데 딱히 징그럽다거나 무섭다기 보단 하얗고 통통한게 좀 귀엽단 생각이 들었어요.
the hive
20/01/27 14:04
수정 아이콘
지금도 가끔 번데기 파는곳이 있긴합니;;
20/01/27 10:12
수정 아이콘
방적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가내수공업에 밀려 아편장사하기 전까지는 무역적자 봤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표절작곡가
20/01/29 13:29
수정 아이콘
값싼 노동력에 인구빨을 생각하면 밀릴만하긴 합니다....

당시에도 억이 넘어가던 중국 인구의 위엄~ 두둥!!!
김홍기
20/01/27 15:23
수정 아이콘
너무 신기하네요!
누에고치가 플라스틱처럼 단단한 소리가 나고 고치에서 실을 다 빼고 나니 우리가 먹는 갈색 번데기가 비치고요. 길었던 누에가 저렇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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