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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0/28 09:35:11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이야기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줄여서 <만철>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일본은 러시아가 남만주에 부설한 철도의 경영권을 획득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라는 기업을 설립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기업인데요, 아마 동아시아 최초의 <슈퍼기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남만주철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만철 본사, 중국 대련


만철은 화물과 승객을 운송하는 철도여객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후쉰과 옌타이에서 광산을 직접 운영하였고 안동, 잉커우의 항만을 운영하는 등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화물을 보관하는 창고, 여행자를 위한 숙박사업, 그리고 학교와 병원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정유, 유리생산, 설탕정제, 그리고 강철생산에도 개입하여 정말 (동아시아에 한정해서) 문어발식 사업확장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철은 정말 이윤이 많이 남는(profitable) 기업이었습니다. 기업의 자산가치는 1908년에 1억 6천만 엔이었는데 1930년에는 10억 엔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윤율은 20~30%에 달했다고 합니다. 규모로 따지면 일본의 가장 거대한 회사였으며 이윤측면에서도 가장 수익성 좋은 기업이었습니다.

1920년대 만철의 수익은 연간 2억180만 엔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 정부 연간 세입의 1/4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만철은 일본인들에게 도전과 모험의 상징이자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었습니다. 1930년, 만철에 근무했던 일본인은 21,824명에 달했고 그들은 대부분 화이트 컬러 전문직, 관리자였습니다. 만철에서 그들은 괜찮은 보수를 받으며 만주 현지에서 귀족처럼 지낼 수 있었고 중국인 하인을 부릴 수 있었습니다. 일본 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삶의 질을 누렸습니다.

만철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처럼 하나의 거대한 국가 같은 기능(행정, 군사, 외교 등)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가장 큰 목적은 '이윤'인 그러한 존재로 거듭나길 원했죠. 이런 맥락에서 만철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면서 <제국일본>의 '창'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만철이 운송, 철강, 숙식, 의료, 광산 등의 산업에 진출하면서도 굉장히 신경 썼던 것은 바로 <싱크탱크>입니다. 민간기업이면서 독자적인 싱크탱크를 설립하여 '지배'에 필요한 '지식'을 배양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만주는 본국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있었으며 러시아, 중국 등과 조우한 상태에 놓여있는 상당히 위험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죠. 이 싱크탱크의 이름은 <만철조사부>였습니다. 

따라서 만철은 자원탐사, 산업개발, 경제, 안보 등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두뇌집단이 필요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만철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연구자들을 대거 채용했는데, 만철은 중국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중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미루어봤을 때 중국 공산당의 발흥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례로 오가미 스에히로 등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도 <만철조사부>에 일하게 되었고 만철은 괴뢰 만주국을 실험장으로 삼아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경제정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 만주국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후일 일본의 수상)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던 박정희입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만철조사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 하는데, 영어로 Manchuria Railway Company Research Department라고 불리는 이 조직은 정말 동아시아 싱크탱크로서는 정말 어마무시한 규모였기 때문입니다.

이 싱크탱크는 일본의 수많은 신진 학자들을 끌어들였고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연구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사부의 본부는 만철의 본사가 있던 대련에 있었지만 나중에는 선양, 하얼빈, 상하이, 난징, 뉴욕 그리고 파리에도 지부를 두게 됩니다. 그리고 6200건에 달하는 분석 보고서를 생산해냅니다.

만철의 영향 아래 만주국은 동아시아에서 최첨단, 최신의 정책과 건축기술 도시계획 등을 입안합니다. 흰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듯이 만철은 만주 자체를 자기들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철은 동아시아의 많은 젊은 학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젊고 다양한 시각을 모두 수용하는 유일한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창시한 동주 이용희 교수 1940년부터 45년까지 만주에 있을 때 큰 지적 성장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1943년 중국 대련(만철의 본사가 있는 곳)에서 E.H. Carr의 Twenty Years’Crisis(1939) 와 W. Sharp and G. Kirk, Contemporary International Politics(1940)를 사서 읽고 구미의 국제정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는 원래 처음에는 만주국 어용 기구였던 협화회에서 근무했으나, 이내 그만두었고 만주 봉천/하얼빈과 원산(현재 북한)을 잇는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봉천에 있던 만철 도서관을 애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활도 잠시, 이내 만철조사부에서 근무하면서 원 없이 많은 책을 읽고 식민지 치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인류학/사회과학/정치학 서적, 그리스-로마 고전 등을 탐독하면서 조선과 국제정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1948년 무렵 이용희는 미소대립과 냉전과 우발적 전쟁 가능성을 예측하면서, 극동지역에서 미국이 소련에 대한 포위전을 전개하고 소련은 이에 응수하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 1949년에 이용희는 미국 입장에서 3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1안은 장개석에 대한 지원을 대폭 증가하는 것이요, 2안은 일본을 군사기지화하고 재무장시키는 것이요, 그리고 3안은 신중국(모택동)을 인정하고 이를 이용하여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용희 개인은 3안이 현실적이라고 보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결국 2안이 현실화되었고, 그리고 3안은 1970년대에 현실화되었습니다. 
       
만철, 비록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탄생한 기업이지만,
그 영향은 동북아 전체에 아주 깊은 영향을 끼친, 보다 널리 알려져야 하는 기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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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군
19/10/28 09:38
수정 아이콘
맹획: 이거다!
대학생이잘못하면
19/10/28 10:03
수정 아이콘
거주민들은 고려 안하고 무대포로 철로를 짓는 악덕기업 촉국에 맞서는 농민들의 희망 맹획 비슷한 글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19/10/28 10:12
수정 아이콘
만철은 아무래도 일제의 침략전쟁이나 전쟁범죄와 매우 관계가 깊은 기업이다보니, 그냥 관동군이나 일본군에 묻혀 가는 느낌이 없지 않죠(...)
삼성전자
19/10/28 10:18
수정 아이콘
한국에선 그 당시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보니
저런걸 이야기하는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것 같아요. 경제사적으로도 사실 중요한 이야기인데...
김영하 소설에서 주인공이 만철 다니는 작품이 있었는데..
세인트루이스
19/10/28 10:18
수정 아이콘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만주/만주국에 대해서 좀 찾아보네요. 일본이 만주에 만주국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마지막 황제' 푸이를 명목상 통치자로 두었군요;;; 북한 위니깐 엄청 춥고 쓸모없는 황무지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이 괜히 탐낸게 아닌가보네요
19/10/28 10:50
수정 아이콘
만주는 자원도 풍부하고, 곡창지대도 꽤 넓습니다.
19/10/28 12:50
수정 아이콘
석유도 나오지않나요?
19/10/28 14:05
수정 아이콘
네, 석유도 나옵니다.
윤지호
19/10/28 11:12
수정 아이콘
중국 동북3성 가보면 진짜 끝도없는 평야에서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지평선이 계속 이어지는데 전부 옥수수밭..
세인트루이스
19/10/28 11:52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ㅡ 신기하네요. 미국 중부보다 훨씬 위도가 높은데 옥수수가 되는군요
19/10/28 13:24
수정 아이콘
철도 많아서.. 중국의 자동차 공장은 장춘에 거의 다 있죠
세인트루이스
19/10/29 02:54
수정 아이콘
자동차 공장이 철 산지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해봤네요 - 생각이상으로 만주 좋네요
감모여재
19/10/28 10:49
수정 아이콘
조사부장님이 생각나네요.
윤지호
19/10/28 11:1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기 근무했던 사람들은 정말 대본영을 갈아마시고 싶었겠군요
자기들 국가의 존망을 책임지고 있는 군부가 어쩜 그렇게 무능했는지..

뭐 대본영이 그정도로 무능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없었겠지만..
Lainworks
19/10/28 12:53
수정 아이콘
만철조사부장... 철갤... 윽 머리가 ..
11년째도피중
19/10/28 13:44
수정 아이콘
만주국과 만철에 대해 애착(!)이 있으신 분을 아는데 출판해보려고 준비하시다 퇴짜.
언젠가 자신의 글이 빛을 볼날을 기다린다 하셨는데 오히려 더 요원해지는 중입니다. 크크크
aurelius
19/10/28 14:09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현실이로군요. 우리나라로서도 적지 않은 연관이 있는 문제인데 말이죠.
Liberalist
19/10/28 18:44
수정 아이콘
저는 전형적인 문돌이라 그런가 만철하면 나쓰메 소세키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정치, 경제적으로는 저런 의미가 있는 회사였군요. 관련해서 뭐 더 깊게 읽어볼만한 추천 자료가 혹시 있으실까요?
19/10/28 21:57
수정 아이콘
돈이 모이는 곳에 지식도 모이는 법이군요
슬리미
19/10/29 09:10
수정 아이콘
이렇게 잘난 놈들이 어쩌다가..
푸른등선
19/10/29 10: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지금 조선족들 상당수도 30년대 만주국 드림을 꿈꾸고 이주하신 분들의 후손이죠. 그 중에는 농부, 군인, 사업가, 지식인 등등 헤아리기 힘든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윤동주와 박정희라는 전혀 이질적인 인간들이 만주라는 공간으로 연결되는 게 우연이 아니고요. 많은 사람들이 만주국 장교가 독립군 때려잡는 반민족집단이라는 식으로 단순 비난하는데 실질적으로 일본이 장악한 30-40년대에 만주지역에는 무장 독립군 세력이 거의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대부분 만주지역의 일본인과 일부 성공한 조선인들의 재산을 지키는 치안대 성격이 강했어요. 하여간 엄청나게 많은 젊은 조선인들이 민족의 독립이라는 비현실적(?) 구호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성공’ 위해 만주로 달려간 것만은 사실입니다.

만주국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중심이 된 것도 이후 한국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요. 만주국 모델이 사실상 대한민국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이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이미 기본 계획은 이승만 정권하에서도 관료들에 의해 만주국 모델을 본따서 입안이 되어있었고 박정희 본인도 새롭게 주도적으로 계획을 구상했다기 보다는 만주국 시절에 어깨너머로 본 걸 그대로 따라갔고 일본인들과의 친분도 경제개발과정에서 십분 활용했을 거고요. 하여간 만주국이라는 시스템은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하게 부각될 주제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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