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이 오래되지 않아 확신할 순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땐 섹스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특히나 여성의 성이 억압된 분위기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여자가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은 것은 결혼상대로서 상식적인 결격사유 중 하나였다.  당연히 애인을 바꿔가며 다양한 섹스 경험을 가진 여자는 '헤픈 여자' '더러운 여자' 였으며, 소위 '인조이'를 한 경험은 거의 창녀 수준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남자 역시 그리 관대한 시선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뒷구멍으로는 온갖 윤락업소가 창궐하고 창녀촌의 규모가 커져가는 반면 건전한 방법으로 여러 여자를 거쳤다는 사실이 앞에서 탄로나면 못 말리는 난봉꾼이나 문란한 남성이 되어 집안 망신이 되는 희한한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심지어 부부 간의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 올바른 성지식을 탐구하거나 다양한 쾌락을 탐닉하는 일마저 남사스럽고 천박한 일로 취급 받아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 하였으니, 실로 성이 억압받은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을 지나 나름대로 내 머리통이 여물었다고 착각하던 무렵에는 이런 의식들이 하나 같이 불만이었다. 어쨌든 섹스라는 것은 누구에게 피해주는 행동이 아니지 않은가.  (잘못 주워듣기로) 외국애들은 죄다 그렇게 개방적이라는데 우리라고 특별할 게 무엇인가.  몇 달 전에는 여자친구랑 못자서 안달이었던 주제에 자고 난 뒤에는 처녀가 아니라고 실망하던 그 선배가 그렇게 찌질해보일 수 없었다. 전에도 댁 같은 남자친구가 있었겠죠. 어떤 여자가 누구랑 잤다고 소문이 나면 헤픈 여자라고 시시덕거리는데 여념이 없었던 또래 남자놈들도 한심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가락질을 한 뒤에 나랑 자줄 쉬운 여자 없나 서성이거나, 여자친구를 모텔로 끌고갈 궁리에 여념이 없었으니 말이다.  다 큰 남자가 콘돔을 구하는데 눈치를 부려야 하는 것도 싫었고 성인용품점이 마약상인 마냥 으쓱하고 은밀한 곳에 위치하여 존재감을 지우고 있는 것도 짜증났다.


이제는 시절이 달라져서 공중파에서도 심야가 되면 진지한 섹스담론이 다뤄지곤 한다.  노골적으로 섹스에 관한 유머나 경험담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각광을 받기도 하고  교양 프로에서 '건전하고 윤택한 성생활을 위해'  부부들을 모아놓고 상담을 한다. 남자들이 야동을 밝히는 건 '유머 코드' 가 되었고 여성들은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섹스칼럼을 연재하거나 패널로 출연해 이런저런 경험을 당당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체감상 배우자의 혼전순결을 고민하거나 '과거'에 집착하는 부부는 적어졌다.  성인용품점이 아이들 지나다니는 거리에 늘어서서 문제라고 하고, '픽업 아티스트' 니 하는 객쩍은 직업 타이틀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나이 찬 30대 남성 여성들이 여러 이성경험, 섹스겅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문란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이런 세상이 오면 짜증이 덜 날 줄 알았건만. 극과극은 통한다고 해야 할지?  옛날에는 경험 많은 사람이 음탕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더니 이제는 경험 없는 사람이 하자 있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과거 근엄한 척 마이크를 대고 앉아 '요즘 젊은이들의 문란한 풍조' 를 비판하던 자리에 출연하여 혼전순결자들에게 '천연기념물이냐?'  하고 일갈을 날리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성욕이 남다르거나 성 적으로 개방적인 사람들을 공격하던 이빨들이 이제 방향을 180도 선회해 보수적으로 구는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경험없는 남자를 호구 취급하거나 하자 있는 사람으로 보고, 혼전순결을 고수하려는 여성을 [시대착오적이고 편협하기 그지 없는, 성 억압적인 구시대 가치관의 선봉장] 으로 화형대에 매달아 불을 싸지르려고 한다.  

총각 딱지를 운운하면서 남자의 성, 남자의 첫경험을 때만 되면 당장 갖다버려야할 쑥스러운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지만, 남녀를 통틀어 혼전순결-이런 표현마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결혼 전 무경험]-을 유지 중인 사람들을 향해 드러내는 요즘 사람들의 적대감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무래도 공격자들은 혼전순결자들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섹스 행위를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처럼 위협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두가지, 일종의 피해의식과 더불어 무경험자들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아직도 개방적으로 섹스를 탐닉하는 행위를 아주 음탕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왔기에 그들은 불안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섹스박람회가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아 폐쇄 당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니까.  비슷한 또래이면서 이러한 사회 정서에 상준하는 이들의 존재는 혼전 섹스에 개방적인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들을 부정하고 꾸짖는 심벌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부 젊은들이 가급적 혼전순결- 그러니까 결혼전 무경험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이 상상하듯 [육체적 순결이야 말로 아름답고 성스러우며 훼손되지 말아야할 진정한 인간의 가치요!!  함부로 몸을 섞는 더럽고 불결한 자들은 바퀴벌레처럼 박멸해야 마땅하다!]  꼭 이러한 광신도적 가치관으로 성에 접근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고자나 변태, 호구도 아니고.  가령 종교적 가치관으로 순결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꼭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해 편협하고 공격적인 마음을 먹고 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른 종교적 신념들이 그러하듯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짓밟으며 창조론을 밀어붙여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불합리하고 무자비한 인간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 중에도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섹스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은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프리섹스나 개방적인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온전히 자신의 것임을 말한다. 어떠한 사회 정서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 분위기에 의한 간접적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는 것.   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섹스는 즐거운 것이며 청춘은 돌아오지 아니하고 어쩌고 저쩌고 갖다붙일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  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지켜야할 것이며 성병, 낙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어쩌고 저쩌고 명분을 해명할 필요 없이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하는 거.  

섹스는 남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예전 세상은 섹스 하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떨더니 이제는 섹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떤다.  가끔 세상이 이렇게 챗바퀴 속을 돌고 도는 것 같아

지겹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