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꽤 많은 세월이 흘렀군요.
그때 전 의대 본과 3학년 학생으로 정신과 실습을 돌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느 병원이나 정신과 입원실은 한 병동을 통째로 그 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안쪽으로는 탁 트인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 놓는 소위 "폐쇄병동"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이른 아침 실습 동료들과 함께 그 육중한 철문의 벨을 누를 때면
간단한 신분확인 후 어김없이 들리던 "꾸앙~" 하는 둔탁한 쇳소리는
아직도 가끔씩 기억에 되살아나 소름을 돋게 하곤 합니다.
실습학생들은 저마다 한명씩의 환자를 배정받아 실습기간 중
그들과 면담도 하고 병동 내에서 놀이도 같이 하면서 환자를 주의깊게 살핀 다음
수시로 담당 주치의와 환자 상태나 치료방침에 대해 의논을 하게 된답니다.
제가 맡았던 환자는 갓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16-7세 가량의 예쁘장한 소녀였습니다.
겉보기에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귀여운 외모의 그 소녀는 뜻밖에도 우리말로
"색정광" 이라고 일컬어지는
[색정광이란 - 색정광은 성욕의 이상항진, 음란증(淫亂症)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남성에 대하여는 사티리어시스(satyriasis), 여성의 경우는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고 한다. 사티리어시스는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사티르에 유래하고, 님포마니아는 님프(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요정)와 마니아(광기)의 합성어이다. 선천적인 것이 많고, 이것은 이상성욕에 포함되나, 원인에 대해서는 호르몬의 분비과다 등 여러 설이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다.
성교불능증의 반발로서 공격적 성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정신분열병 ·정신지체 ·알코올중독증 때문에 억제가 불가능해져 충동적으로 유치한 성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변태성욕이라 함은, 이들의 성행동이 상식의 범위 밖이고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 등에 대하여 예로부터 일컬어진 말이다. 심인성(心因性) 색정광은 올바른 성교육으로 예방 ·치료가 가능하다.]
흉칙하고도 망측한 병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대표적인 증상은 한마디로 이 세상 남자들이 전부 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지요.
아니 그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종교적인 '믿음'의 수준이었어요.
면담도중 어이없게도 그 아이는 저보다 먼저 정신과 실습을 돌았던
의대 동료들 이름을 주욱 대면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 그분들은 모두 제게 프로포즈를 했어요. 당장 결혼하재요.
나 지금 선생님도 똑같은 생각하고 있다는 거 다 알아요~"
소녀의 망상에 얼굴마저 빨개진 전 한동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
나중에 담당 주치의는 그 아이가 이제 거의 정신분열병 단계로 가고 있다는 귀뜸을 해주더군요.
어쨌든 그 이후로 그 아이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전 아주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말투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아인 대부분 "시어"를 연상시키리만치
우아하고 고상한 단어들만을 가려쓰고 있는 것이었어요.
어쩌다 주변 환자들이 욕설이라도 하는 걸 들으면 금새 눈주위가 발게지고
눈물이 글썽거리면서 못견뎌 하더군요.
한번은 저와 탁구를 치다가 거듭되는 실수에 제가 그만 무심코
"아~ 미치겠네~" 란 말을 했더니 그 아인 그걸 욕으로 간주하고는
냅다 라켓을 집어던지고 어떻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펑펑 울더군요.
아마 "미친다"란 말이 예민하게도 어떤 감정적 증폭을 초래한 모양이었지만요...
그당시 실습이 끝나갈 무렵 간호학과 학생들과 함께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위해 간단한 파티와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지는 게 일종의 전통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레크리에이션 시간, 환자들과 한가지 게임을 하다가
전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에 생생하게 남게 된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유행하던 소위 "스피드 퀴즈"란 게임을 할 때였지요.
마침 제 환자였던 그 소녀가 뒷쪽 종이에 적힌 어떤 단어를 설명하면
간호학과 학생 하나가 답을 맞추는 차례였답니다.
문제가 적힌 스케치북에는 매직으로 커다랗게 "어린이" 하고 적혀 있었어요.
여러분 같으면 그 단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놀랍게도 제 환자는 잠시도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른/의/아/버/지/
그걸 들은, 소위 자신이 정상인이라 믿는 간호학과 학생은 역시
지체없이 "할아버지~" 하고 외쳤다가 그만 '땡~' 하고 오답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웃음의 많은 부분을 "역시 저앤 정신병자야... 싸이코야.."
하는 '비웃음'이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 충격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아이의 '어린이'에 대한 엉뚱한 설명은 바로
저 유명한 미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싯구절이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시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라 마침 그게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 실렸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마음 뛰노나니..'하고 시작되는 워즈워드의 명시
"무지개"의 한 구절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했던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소녀의 시심을 이해했을런지 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 이후로 전 한동안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되었었지요.
저렇게 아름다운 생각들만이 머리에 가득 차있는 아이를 가리켜
누가 미쳤다 하고 누가 싸이코라 손가락질 하는가?
과연 자신있게 정상인이라 믿으며
때론 뭇사람들을 비방하고 헐뜯기에 욕설도 마다않는 나는 참으로 정상인인가?
아아... 그때의 복잡했던 제 머릿속에는 자꾸만 외눈박이 원숭이들이 사는 마을에
어쩌다 길을 잘못 들게 된 두눈 달린 정상 원숭이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죠.
현대의학은 그녀를 정신병자라 낙인을 찍어버렸지만 그건 단지
외눈박이 원숭이들이 만든 룰에 따를 때 그랬다는 것일지 모르지요.......
------------------------------------------------
이 내용의 끝입니다.
정신병이라는 제가 알고 있던 인식을 확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확대해석일수도 있지만,
가끔 소위 말하는 정신병자라는 사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정상인이며 우리가 팔,다리가 다쳐 아픈거와 같이 그들 역시 마음이 다쳐서 아픈 것임에도
저는 '틀리게' 라고만 생각했지 '다르게'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사회를 돌아보면 추잡하고 더러운 일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속에 사는 우리가 과연 진짜 정상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아무튼 참 생각을 많이 가지게 한 글이였습니다.
제가 의대생이 아니라서, 저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다! 라고 확신을 못드리겠습니다만,
저 자신은 그냥 이제부터라도 같은 환자로 보고 그들을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역시나, 저 내용이 먼말하는지는 알겠는데, 글로 쓸려니 정리가 안되네요. (어이그 멍청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P.s e지식채널이라는 EBS의 프로그램을 보면, 정신병원에 환자와 의사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컴맹이라 동영상을 올리진 못하겠고...ㅠㅠ 나중에 한번 찾아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그 내용 뿐만 아니라 더욱 볼 거리가 많은 내용들이 많더군요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저희아버지가 제가중2때부터 지금거고2될때까지 3년조금넘은기간동안 정신병원에 계십니다..
가끔 병문안을 갈때 앞에 표현된부분처럼 벨누르고 두꺼운 문을열고 들어가는데, 처음엔 이상했는데.. 이젠 별로 다르다는 생각도안들더군요.. 아버지 때문인지, 전 정신병이란걸 이상하게 보는사람들이 이해가 가질않습니다.. 친구들한테도 아버지가 정신적문제로 병원에 계신다니깐 이상한 표정으로 보는데.....
그들도 같은 사람이고 다만 다수의 사람과 조금'다른' 생각을 갖거나 행동을 하는 그런사람인데..
다수라고 우리가 너무일방적으로 그들을 '병' 이라고 몰아세우는건아닌지... 가끔 생각이 들거든요.. 의견낼땐 다수라도 소수의의견을 존중해줘야되니뭐니 이러면서... 휴 ..
좀 바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