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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30 14:21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대 이전의 것이야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나라 꼴이 돌아가기 시작한 60년 대 이후에도 제대로 된 작업 기록이 없다는 건 아쉽네요. 63년 그림을 그린 분은 어떤 분인지, 또 그 분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작업 하신건지 그 후 어떤 과정을 거쳐 불타기 이전 그림으로 바뀐건지 그 그림 역시 어디에 기초를 둔건지 알 수가 없으니... 글 쓰신 분이 단청장의 길을 걷지는 않으시더라도 아버님을 도와 이번에 하신 작업의 상세한 과정, 어떤 지시에 의해 작업을 했고 색과 그림을 고른 기준 등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후대를 위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2/12/30 14:53
홍창원 장인의 아드님이신가보군요! 덜덜;
만봉스님은 사찰단청 뿐만 아니라 불화제작에 있어서도 굉장한 실력을 가지신 화사시죠. 물론 만봉스님이 그렸다고 해서 63년도 단청이 조선 전기 양식을 "그대로" 이었느냐. 라고 보기에는 어려울겁니다. 다만, 오랫동안 전국의 사찰에서 단청을 제작, 보수해온 만봉스님이기에 조선 전기 단청 양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조선 초 궁궐단청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찰 단청의 자료는 꽤 많이 남아 있죠. 무위사 극락전이나 수덕사 대웅전 등, 조선 초기의 사찰단청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단청은 창경궁 단청으로 일부 확인이 가능하구요) 이것으로 봤을 때, 만봉스님의 초본과 무위사 단청, 수덕사 단청을 통해 조선 전기의 단청 양식을 어느정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걸 바탕으로 조선 전기 숭례문 단청 양식을 비정할 수 있는거죠
12/12/30 14:57
http://m.clien.net/cs3/board?bo_style=view&bo_table=park&page=1&wr_id=17977853
관련보고서 중간내용이라고 합니다 일부 인용하면 1963년단청의 양식은 조선 초기 단청의 무위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단청과 조선중기의단청인 창경궁 명정전 단청양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데 故 한석성 선생의 증언에따르면 기존의 단청 면을 벗겨내고 원래의 문양을 찾았으며 적심 등에서 구 부재에남아있는 단청을 모사하여 복원하였다고 한다. 1954년도 단청의 경우 숭례문의위상을 고려해서 이전 단청보다 격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되며 1963년도 단청의 경우는 문화재의 원형복원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문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2/12/30 15:22
정확하게 짚어내셨네요^^
사실 단청이라는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하지는 못하고 또 그렇게 안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저 사진을 주셔서 제가 거의 완벽(?)하게 똑같이 선으로 땄고, 그 이후에 프린트 해서 아버지께서 몇몇 부분을 수정해 주시고 저는 그 것을 보고 다시 수정하고.. 해서 완성된 작품입니다. 구름, 꼬리 부분도 아버지께서 보기 좋게(?) 바꾸셨고 미간 부분은 살집(?) 부분을 없에고 비늘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을 또 옮겨서 그리는 부분에서 조금씩 바꼈을 수도 있고요.. 저는 잘 모르지면 화풍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12/12/30 15:32
기존의 다른 그림을 복원한 것이고, 그림체의 차이라는 것이군요.
흑백으로 올라온 그림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기는 한데, 눈이 약간 달라보이고, 그 눈이 달라보이는 것이 꽤 큰 차이 갔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이 조금 바뀌는 느낌이네요.(눈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과 눈이 커 보이는 것의 차이가 있고, 꽤 달라보이네요.) 어쨌든 기존 것을 복원했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기존 것과 전혀 새로운 그림이어서 정말 생뚱맞았거든요. 일반인들이야 당연히 잘 알 수가 없는 부분이구요. 하지만 우리 선조들도 '모에' 였던 건지... --; 그림 참 멋 없는 건 변함 없네요. 세월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겠으나, 부천쪽에 많이 있는 만화그림들이 시간이 지났지만 딱히 세월의 멋은 없거든요. 그나저나 사과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구한테 사과해야하는 건가요?
12/12/30 15:51
http://www.dailia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302 카툰스런 센스가 종특인거 같긴합니다 크크
12/12/30 15:52
간단하게 아버지께 여쭤 봤는데 지금 남아있는 용 모양이 63년도 용과 88년도 용이라고 하시네요.
63년도 용이 저 위에 제가 올린 사진이고, 88년도 용이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있는 용이고요.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은 73년도 용을 만봉스님이 하셨고 그것을 보고 그린게 88년도 용이니 아마 비슷할 거라고 하셨고, 63년도 용은 1990년대에 인간문화재도 하셨던 해각스님이라는 분이 그린 용이라고 하시네요. 63년도 용으로 복원한건 63년도 단청이 조선 전기 단청을 최대한 복원 한 것이라 그것을 많이 참고 하셨다고 하셨고요.
12/12/30 15:56
전 단청에 대해서는 역시 모르겠으니!;
조금 다른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글을 따로 쓰자니 용두사미가 돼서 또 부끄러워질거같으니 여기다가 짧게; 경북 안동에 봉정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사적기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입증하는 증거는 이 사적기가 유일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존하는 봉정사와의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근데 1972년 극락전 해체, 보수 작업 과정에서 至正23년(1363)에 중수되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연히 중수는 창건된 이후에 하는거기 때문에, 적어도 1363년보다 몇십년, 혹은 몇백년 앞서 창건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겁니다. 즉 극락전은 고려중기까지 올라가는 목조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죠. 이로 인해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1972년 해체, 보수할 당시의 봉정사 극락전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찰건축물의 양식인데, 묵서명의 기록대로 본다면 고려시대의 사찰건축인거죠. 해체, 보수 후 복원 시점을 조선시대로 잡을 것인가, 아니면 고려시대로 올릴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그겁니다. 고려와 조선의 사찰 양식이 비슷하다면 또 모르겠는데, 딱 보면 차이가 꽤나 큽니다. 조선시대는 정면에 3칸, 혹은 5칸의 문이 있지만 옆구리로 들어가서 옆구리로 나오고, 고려시대는 정면에 1칸의 문이 있고 좌우로 창문을 뚫어서 정문으로 들어가는 방식,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조선시대와 달리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고려시대의 내부 방식 등 차이가 꽤나 큽니다. http://goo.gl/8XQTI <- 이게 1972년 해체, 복원수리가 이루어지기 전의 봉정사 극락전 모습이고 http://goo.gl/weiVO <- 이게 현재의 봉정사 극락전 모습입니다. 위의 링크를 보시면 아시다시피, 결국 복원은 고려시대 건축 양식으로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다시피 '복원시점 이후의 것들은 이대로 사라져도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결국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단순히 과거의 것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보존철학적인 접근을 하려고 하는거죠 하지만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의 실력은 꽤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어서 동남아 등 제3세계국가에서 배우러 많이 옵니다만, 여전히 더 연구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존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모든 가치를 다 살릴 수도 없고, 모든 이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다만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쓰다보니 확 타올라서 더 적고싶어지지만 내용이 길어지니; 몇몇개 더 첨부해서 글을 따로 작성해야될까 고민이 됩니다;
12/12/30 16:32
http://www.koreapas.net/bbs/view.php?id=gofun&page=1&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006
닉네임 '한세희'를 이용하시는 고파스 분께서도 퍼가셨습니다. 가입하지 않으셨다 하여 대신 적어봅니다.
12/12/30 18:01
바로 님같은 댓글이 합리화에 해당되는거구요.
대다수의 생각이 아닌 소수의 생각으로 일반화된 것들을 설득할때 합리화가 진행되죠. 오프라인에서 매일 보는 사람에게도 하루가 바뀌고 만나게 되면 인사를 하죠. 이걸 합리화라고 하지 않잖아요.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에서는 그렇게 해온게 관례였으니 으레 그렇게 하는거죠. 이런 관례속에 다른 생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사에만 그치지 말고 가볍게 뺨에 키스라도 합시다, 그러면 관계가 더 친밀해지지 않을까요?" 라고 말이죠. 이런게 바로 합리화에 시작된 타인의 설득인겁니다. 인터넷 세계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주류가 된게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바다라는거죠. 초기부터 조건없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시작된 세상입니다. 처음에는 출처나 원작자를 밝히지도 않는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쓴 글인양 행세를 하고 다니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정보글은 퍼온 출처라든가 원작자를 기재하여 원문을 쓴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힌게 현재입니다. 그외의 허락을 요할때는 보통 원작자가 직접 기재를 하죠. 허락을 맡고 퍼가라든가 혹은 아예 퍼가지 말라고 하던가요. 언급하신 원작자의 양해를 구해야 문제가 없는 것은 저작권이 걸려있는 저작물들이죠. 이런 것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관례를 넘어 아예 법으로 만들어져 있죠.
12/12/30 19:09
문제의 여지가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쓰인 글은 자동으로 저작권이 적용되며, 저작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 자신의 저작물이 공개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판례상으로 볼땐 불펌글로 인해 저작권법이 적용되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으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의 초창기에 펌질하는 것이 문제없었다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자동차가 처음 생겼을때엔 도로교통법이 지금과 같지 않고, 음주단속도 없었는데 문화로 자리잡힌건가요? 법이 생겨난 것이지요. 본인의 생각만으로 엄연히 있는 저작권법을 해석하시네요.
12/12/30 19:24
저작권은 자동으로 적용되지만 법적인 책임으로 갈 경우, 그에 대한 입증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작권 등록이 먼저 이뤄지는게 선이죠.
게다가 이 댓글 맨위로 올라가보면 펌글에 대해 문제삼은 유저는 글쓴이가 아니라 파이어로드라는 유저입니다. 현재로써 이글의 글쓴이의 공개의향은 알 수 없는부분이고, 이부분은 이미 제가 댓글로 적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제가 적은 내용중 인터넷 초창기의 펌질을 왜 여기서 언급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맨처음에 질럿유저가 합리화에 대해 말했기에 그때문에 초기상황을 언급한 것이고 그 댓글부분은 저작권 법내용과는 무관한 부분입니다. 저작권 법과 관련된 내용은 다시 단 댓글쪽과 관련있죠. 그리고 애초에 처음부터 저작권 법쪽으로 얘기가 시작된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읽어 보시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12/12/30 19:56
본문과 상관이 없어져서 글쓴분에게는 죄송하군요;;
처음에도 나온 이야기이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인터넷 상에 올라온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허락 없이 퍼간 경우 문제의 여지가 있냐 없냐인데, 법적으로 보든 그냥 원작자가 내려달라고 요구를 하든 어쨌든 문제의 여지가 있지 않나요? 원작자의 동의 없이 출처만 밝히는 상황이 아무 책임 없고 하등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이건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엄연히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무 문제 없다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면 퍼간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시정 요구가 들어올 빌미가 없는 상황 정도로 보면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 합리화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르지 않은 것을 관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리화라는 단어가 거슬리셨다면 모르겠지만, 논제 자체의 정당성 부분에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되네요.
12/12/30 20:11
말씀하신 전제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니까 문제의 여지가 없죠.
원작자가 자신의 글에 대해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명시가 되어있고 그걸 지키지 않았다면, 법적인 책임을 떠나서 님 말대로 잘못된겁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 원작자의 동의 없이 출처만 밝히는 상황이 아무 책임 없고 하등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이건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엄연히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이부분은 그냥 님생각이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님 고유의 권한이니 제가 그부분까지 왈가왈부할 것은 못되는거고 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터넷은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태동되었고, 자신의 정보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싶다면 저작권을 등록하여 지킬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초창기와 현재의 사례를 예로 관례로 표현한겁니다. 정리하자면 이 글의 글쓴이가 이글의 공개여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관례상 누구의 글인지 출처를 표기하고 퍼간다면 일반적인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특별히 지적받지 않을 행동이고 (물론 님처럼 개별적으로 자신의 도덕적인 관점에서 맞지 않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법적으로도 저작권이 적용만 되어있을 뿐이지, 저작권 등록도 안되어있고 저작권 등록을 따로 명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퍼간 글을 가지고 원글의 조작이나 소유권 침해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처벌을 내릴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적은겁니다.
12/12/30 20:18
1. 63년것에 비해서도 디테일이 떨어져 보입니다.
63년것이 '해학'으로 보인다면, 2012년것은 '우습게' 보입니다. 2. 63년의 스타일을 왜 복원해야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시대에 따라 스타일이 바뀌는 것이라면 가장 멋져 보이는 것으로 결정해도 '단청복원'의 의미에 전혀 벗어나지 않습니다. 3. 결론은 이거죠. 이렇게 '퇴행된 스타일'로 복원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느냐? 없지 않느냐. (못생겨 보인다는 거죠 뭐.) 불만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오세훈의 서울시청건물이 오버랩되면서 행정상의 문제라고 의심-확신-확산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도 이번 단청은 영 아니올시다 입니다. 스타일선택도 매우 납득이 안가며, 퀄리티도 한참 떨어져 보입니다. 고급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게 프리스타일랩이 울려 펴지는데 그게 힙통령의 것이라면 난감하지 않습니까?
12/12/30 21:04
복원에 있어서 복원 시기를 맞추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고려시대, 저 부분은 조선시대, 요 부분은 근대. 뭐 이런식으로 하지 않거든요 통일된 시기를 잡아서 복원하는데, 숭례문 복원에 있어서 조선 전기로 잡은게 단순히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는지 아니면 여론조사를 통한 결과물이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복원 시기는 조선 전기로 잡은 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홍예천장 역시 조선 전기의 기법으로 복원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조선 전기 홍예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숭례문 복원사업 중 단청 편수를 맡으신 홍창원 장인이 글쓴 분이 적은 바와 같이 63년작과 조선 전기 사찰단청을 바탕으로 복원한 거겠죠 숭례문 단청의 저 용이 까이는건 좀 단순해보입니다. 안이뻐보이거든요. 유치해보이구요 근데 뭐 이건 어쩔수없을듯 합니다. -조선 전기의 것을 최대한 복원했다면- 당시의 심미안과 현재의 심미안이, 그리고 홍창원 장인의 심미안과 우리의 심미안이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근데 그렇다고 이걸 우리의 심미안에 맞춰서 이쁘게 만들어라!!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면 복원의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12/12/30 21:20
예시가 잘못되셨는데요.
시중에 유통되는 음반의 mp3의 경우는 예로 맞지 않습니다. 음원들은 다 저작권에 등록된 저작물이고 그에 따른 관련사항도 명시되어있습니다. 일일이 처벌할 수도 있지만 음원사들이 구태여 안잡고 있는겁니다. 반면에 이 글은 저작권이 적용만 되어있을 뿐이지, 저작권 등록도 안되어있고 저작권 등록을 따로 명시하지도 않은 상황인데다 본문에 따로 글의 퍼감에 대한 명시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퍼간 글을 가지고 원글의 조작이나 소유권 침해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처벌을 내릴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적은겁니다.
12/12/30 21:28
저작권 등록을 해야 저작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여러번 드렸는데도
같은 얘기만 하고 계시네요.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5&docId=538828&mobile&categoryId=1595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몇가지 인용해서 여기 써 드리지요. '저작권은 저작물의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나 방식을 요구하지 않는 무방식주의(無方式主義)에 따라 권리가 발생한다.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등록하는 경우에는 추정력(推定力)과 대항력(對抗力)이라는 법률적 이익이 발생한다.' 제가 말씀드렸듯, 어떠한 절차나 방식을 요구하지 않고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 발생합니다.
12/12/30 21:41
알아듣지를 못하시고 같은 얘기만 반복하시니 댓글을 그만 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굳이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에게 부여된 권한이며, 저작물을 아무대나 게시할 권리는 저작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이를 위반하였을 시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 되지만, 실제로 타인의 저작물을 통해 어떤 이득을 취하거나, 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힌것이 아닌한 판례상 처벌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는것 뿐입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여, 처벌을 받을 확률이 별로 없으니 남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퍼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BadMooN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니 덧글을 계속 다는것입니다.
12/12/30 21:50
알아듣지 못하시는건 님이죠. 제가 언제 저작권이라는 개념자체가 저작권 등록을 해야만 생긴다고 말한적이 있습니까? 수차례 저작권 자체는 자연발생이지만 그 권리만으로 단순 정보공유 목적인 펌글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한다고 얘기한건데요. 님이야 말로 제 글을 이해를 못하니까 이 건을 비교한답시고 쌩뚱맞게 저작권 등록이 되어있고 관련규정이 명시되어있는 음원의 mp3 예를 가져와서 비교했으면서, 무슨말씀을 하시는겁니까...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게시자가 글의 공개여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는데 무슨 문제가 됩니까... 법에 적힌 내용가지고 자의로 해석해서 님이 룰을 만드려고 하지말고, 실제로 인터넷에서 적용되고있는 룰이 뭔지 파악부터 하고 도덕적인 부분에 있어서 딴지를 걸던가 해야죠.
12/12/30 21:56
'자신의 정보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싶다면 저작권을 등록하여 지킬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라는 부분이 그렇게 해석됩니다. 마치 저작권을 등록해야지 저작권을 지킬 수 있다는 말처럼 보이고요.
이 부분은 틀렸다는 것이 제가 드린 링크를 통해 증명이 되었습니다. 게시자가 글의 공개여부에 대해 언급이 없다해서 '저작인격권'이나 '성명표시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 위에 분명히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MP3는 저작권 등록이 되어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MP3와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님의 상이한 판단을 보면서 저작권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시는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원글 작성자에 대한 예의도 아닌것 같고요. 원글과는 상관없는 저작권 논쟁으로 덧글을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12/12/30 21:57
저도 공감합니다.
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문제의 여지가 있지는 않느냐 라고 했는데 여지가 아예 없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이런 경우 저작권은 원작자가 게시물을 생성함으로서 생기는 것이지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문제의 여지가 아예 없다고 하시는데 처벌이 어찌 나오든 간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분명 있고... 법을 떠나서 당장 원작자가 '제가 퍼가는 거 허락 안 했는데 내려주시죠?' 했을 때도, '왜 그래야 하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지도 매우 의문스럽군요.
12/12/30 22:11
'자신의 정보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싶다면 저작권을 등록하여 지킬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라는 부분이 그렇게 해석됩니다. 마치 저작권을 등록해야지 저작권을 지킬 수 있다는 말처럼 보이고요.
-> 이부분은 님의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차례 얘기하지만 저작권 자체는 자연발생이고, 그 권리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저작물을 지킬 수 없습니다. 법규정안에서만 해석하지 마시고 현실에 접목시켜서 해석해주시면 좋겠네요. 게시자가 글의 공개여부에 대해 언급이 없다해서 '저작인격권'이나 '성명표시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런데 현실은 저작권 미등록에 이것조차 적어놓지 않았다면 법에서 책임소지를 물을여지가 없으니까요. 더구나 인터넷상에서는 공개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그 부분에 대해 익스큐즈 하는게 현실이구요. 그리고 저 위에 분명히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또 MP3는 저작권 등록이 되어있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mp3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안하는거고, 미등록된 저작권물의 단순 펌은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예는 맞지 않는다는거구요. 법에 나와있는 규정으로만 해석하려 하지마시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을거 같습니다. 현재 이글을 출처를 표기하고 단순펌하는건 인터넷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되지도 않고, 법적으로도 책임의 소지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님이 하고싶은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거해서 봤을때 저작권을 침해한게 맞다. 라는걸 주장하고 싶으신거라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다만 현실에 입각해서 봤을때 언급하신 그부분보다 관례가 더 어필되고, 법적으로도 처벌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관례에 입각해서 얘기한거구요.
12/12/30 22:32
전 우리의 심마안에 맞춰서 이쁘게 만들어라!!라고 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재로 훼손된 버젼정도만 해도 납득할만하다 할수 있겠죠. '화재전 상태로 그대로 롤백' 이 아닌 다른 선택지라면 일반인의 미적감각으로도 수용할만한 모습이었어야 했습니다. 바로전 버젼은 봐줄만한데 12년 버젼은 왜 이렇게 구려?라는 물음에 셋트로 조선초기 롤백해야되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은 대중들에게 먹힐것 같진 않네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미술수준이 고려나 신라시대에 비해 떨어지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착해야하는 이유가 있나요? 안 이뻐보이는것으로 바꿔야만 했던 이유는요? 우선 선행질문들부터 패스하고 나서야 Ryul님의 답변이 의미를 가질것 같습니다.
12/12/30 23:23
이건 결국 계속 말하던건데, 복원 시점에 대한 비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복원에 있어서 기준의 통일성은 정말 매우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숭례문 복원에 있어서의 기준점은 조선 전기였고, 그 기준에 맞춰서 가는거죠 선택지 자체가 틀렸다면 저 단청뿐만 아니라 복원의 기준점 자체를 다시 잡아야됩니다. 화재 전으로 말이죠 저 그림의 호불호는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심미안의 차이이거나 가치의 차이겠지만, 기준점의 문제는 복원이라는 것 자체의 문제입니다. 기준점을 통일시키지 않고 이쁘고 좋은것으로 한다면, 단청은 이쁘게 다시 그리고 상부 건축물은 더 화려하게 꾸미고, 돌도 더 반듯하고 이쁜걸로 다시 넣으면 됩니다. 근데 이러면 복원이 아니라 그냥 새로 만드는 거죠. 이게 진정 숭례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계속 말해왔던게, '저 홍예천장 단청이 조선 전기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입니다. 조선 전기의 양식을 바탕으로 홍창원 장인을 편수로 한 단청 팀의 화풍이 가미된 모습일 뿐이죠. 하지만 저 단청이 결코 잘못된거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고증을 거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홍창원 장인이 단청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기준점에 맞는 양식을 바탕으로 현시대 최고의 장인 중 한명이 복원한 그림' 이라는 가치는 충분히 만족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조선시대 미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합니다.숭례문이 조선 초에 제작되었거든요-_-;; 더 뛰어나고 화려하다는 이유로 숭례문 복원에 고려나 신라시대의 양식이 들어가면 그 역시도 복원이 아니라 그냥 성문을 새로 만드는거죠. 의미 없어요; 그리고 그리고 또 첨언하자면 조선시대 미술이 결코 이전시대에 비해 뒤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뭐 고려 미술.. 특히 불화나 도자의 경우 무지막지하게 화려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화려하다고 뛰어난 작품이고, 화려하지 않다고 모자란 작품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시대 미술을 봐도 어마무시한 작품들 많습니다. 다만 시대의 사상(시대상?;)이 유교-성리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금 덜 화려해보이기는 합니다만... 겸재의 몽유도원도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2/12/30 23:28
말씀드렸듯, 처벌받지 않는다 해서 저작권 침해를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처벌이 되지 않고있다는 말씀을 하시려던거라면 저도 똑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렇지만 실제로 저작권을 위반하면서도 위반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행여나 BaDMooN님과 저의 논쟁을 보는 분들이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실까 염려하여 잘못된 부분을 지적드린겁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부디 저작권법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이러한 인터넷 게시글 하나하나가 해당하지 않을지는 모르나, 눈시BB님의 역사관련글이나 기타 자유게시판 수필등은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펌질될 경우 법적인 제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등록을 하지 못했다 해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12/12/30 23:39
저도 예를 들어서 답변을 드리면
청동검이 부러져서 이를 복원하려고 할 때 복원하는 김에 요새 기술 좋으니까 좀 더 날카롭게 만들고 무늬도 더 깎아야지 라고 생각해서 만들면 과연 좋은 복원일까요? 드신 식당의 예를 들면 한식당에서 트는 음악은 이해하기 어렵고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판소리를 트는 것이 성악을 트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문화재라는 것은 당시의 문화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저거 모양이 좀 별로네 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 미술품이 아닌 문화재로의 가치는 더 높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의 그림에 가까운 모양으로 복원한다는 생각에 찬성합니다.
12/12/31 01:29
'정해진 기준점에 맞는 양식을 바탕으로 현시대 최고의 장인 중 한명이 복원한 그림'이라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다른 그림인 화재당시의 단청과 비교한 일반인들의 평가가 이러한 것입니다.
제가 복원의 시기와 통일성에 대해 약간의 딴지를 거는 것도 이전의 단청과 현재의 단청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불타기전의 숭례문도 기준에 맞게 복원되엇을 것이므로, 1.기준미달로 인해 그림스타일을 바꿔야 했을 것은 아니다. 2.역시 통일성있는 복원이었을 것으로 신뢰받아야 마땅하기때문에, 저번단청만 조선초기와 다른 시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1. 시대적 통일성은 크게 고려치 않는다 혹은 2.꼭 조선초기로 복원시점을 설정할 필요는 없었다 입니다. 불타기전단청은 그렇게 가치가 없었을까요? 아마도 아니겠죠. 그렇다면 남는것은 심미적으로 어느것이 뛰어난가가 인데.. 반응은 보시다시피-.-;;입니다.
12/12/31 02:28
최근까지 남아있던 단청은 언제를 기준으로 잡아서 한것이냐. 라는걸 찾아봤습니다만, 보고서를 찾아보는게 제일 좋겠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밤이기도 하고 당장 제가 구할수는 없더군요;
그래서 관련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근데 홍예천장 부분만 나온 내용은 극히 적고, 전반적인 숭례문 단청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미리 밝힙니다. 해방 이후 단청 보수에 관한 기록 숭례문의 단청은 비교적 기록이나 사진이 많이 남아 있어 그 문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조선고적도보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고적을 사진과 도면으로 넣어 발행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숭례문의 사진은 발행시기로 보아 1915년에서 1935년 사이의 단청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단청 보수는 1954년, 1963년, 1970년, 1973년, 1988년에 시공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외에 1966년 발간된 수리보고서의 문양모사도를 보면 1862년 수리공사 전후의 단청이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140여년의 짧은 시간에 걸쳐 약 7번의 단청보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고, 각 시기마다 단청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후략)(정인선, 「조선시대 중층 문루의 단청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2006, p92) 1970년의 단청에 관한 기록 "... 중수한 숭례문 단청을 철저한 조사와 모사를 통해 옛 모습으로 환원시켰다.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세월이 그리 많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숭례문 단청을 다시 하는 것이다. 별로 상하지도 않은 단청을 개체하면서 전혀 딴 무늬와 색조로 바뀌었다...(후략)"(한석성, 박해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단청』, p47. 정인선, 앞의 논문, p109 재인용) 여기에서, 적어도 1970년 단청 당시의 것은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무늬와 색조로 바뀐 단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적어도 1970년에는 이미 한번의 변용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1970년 이전의 단청은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잡았는지 보겠습니다. 숭례문 단청의 변천 (전략)...현재까지의 자료를 종합할 때 1892년~1893년경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의 숭례문은 외부는 금모로 단청이고 내부는 긋기단청으로 유실된 판벽을 보수하고 재단청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곳은 재단청한 흔적이 없으며 남아있는 문양의 양식이나 퇴락의 정도를 고려할 때 기존의 단청은 1800년대 후반에 시공한 단청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숭례문 고(古)부재 중 종보에 남아있는 단청의 흔적을 통해 육안으로서는 문양을 찾기가 어렵지만 장단 직휘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 1800년 후반의 내부단청인 긋기단청 이전의 단청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후략) (이정연, 「숭례문 단청의 변천 및 천연안료 적용방안에 대한 연구」, 충남대학교, 2012, p28) (전략)... 1963년의 단청은 조선후기단청과 1954년의 단청에서 사용된 도리, 평방, 창방의 머리초 양식과는 전혀 다른 조선초기의 단청양식으로 시문되었음을 확인하였다...(후략) (이정연, 앞의 논문, p91) 이 부분을 통해서 보면 1970년대 이전의 단청은 19세기의 단청을 바탕으로 보수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63년 보수 당시 조선 전기 양식으로 보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1963년에는 조선 전기의 단청 양식으로 보수하였지만 1970년대에 전혀 다른 양식으로 보수하였고, 1988년 보수 당시에는 문양은 조선 초기 양식이나 수법과 색채는 조선 중 후기의 단청양식으로 제작하였고, 불에 타기 전까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다시 생각해보면요. 1. 기준미달로 인해 그림스타일을 바꿔야 했을 것은 아니다. -> 1988년 보수 당시의 단청이 조선 전기의 단청 양식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청의 변용은 있어야한다. 2. 역시 통일성있는 복원이었을 것으로 신뢰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에, 저번단청만 조선초기와 다른 시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 위와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의 단청 양식으로 비정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 전기와는 다른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에서 나온 결론을 보겠습니다. 1. 시대적 통일성은 크게 고려치 않는다. -> 실제로 크게 고려합니다. 적어도 현재의 복원 양상은 시대의 통일을 꽤나 중요시 여깁니다. 2. 꼭 조선초기로 복원시점을 설정할 필요는 없었다. -> 이 부분은 논란이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 전기로 비정한 복원 시점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3. 불타기 전 단청은 가치가 있다. -> 굳이 말을 하자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1988년이면 근세문화재도 아니거든요. 숭례문에 있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라고 보자면 이번 조사 당시 발견된 방공호 역시 중요할겁니다. 4. 심미적으로 어느 것이 뛰어난가. 에 대한 논란 -> 새롭게 그려진 단청의 예술적 가치 역시 인정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심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 그리고 두 작품 간의 예술적 가치가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는건 무리가 있습니다. ...무지 길어졌는데요;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1. 남아있던 단청은 1988년 당시 보수할 때 조선 초 양식과 중, 후기의 양식을 섞어서 그렸다. 2.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 기준점을 잡고 시대의 통일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단청을 그대로 가지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3. 기준점을 조선 전기로 잡아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에 대해서는 단청과 관련된 이야기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단청의 경우 조선 전기의 단청의 예가 적기 때문에, 1963년본 숭례문 단청과 무위사 등 사찰단청을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4.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 가치의 충돌은 어쩔 수는 없다. 정도가 되겠네요.
12/12/31 16:50
전혀 근거없이 본인의 생각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저작권법을 가져와 증명해 드렸는데,
말씀의 근거를 대보시죠. 근거없이 자기 생각만 가지고 맞다 하는 것을 우리는 궤변이라 합니다. 저작권법에 제가 주장하는 모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205&docId=48899139&qb=7J247YSw64S36riAIOyggOyekeq2jA==&enc=utf8§ion=kin&rank=15&search_sort=0&spq=0 네이버지식인 '변호사 답변' 을 참고해 보시지요. 여기서 변호사는 '저작물로 등록되지 않더라도 창작성이 있으면 저작권이 인정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을 보면 어디도 저작권 등록에 대한 얘기는 없이 창조성이 인정되는 저작물이란 얘기를 합니다. 현재 저작권법에서 인터넷글과 관련된 주요 쟁점사항은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글들중 어디까지를 저작권법의 대상으로 볼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수많은 댓글들이나 기타 간단한 유머등을 고유의 창조성이 있는 저작물로 볼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블로그에 '아 오늘 친구랑 삼겹살에 소주한잔했다 즐거운 하루였다' 라고 쓴글은 저작물로 보기 어렵겠지만 제가 그 내용을 제 수필로서 작업하여 어떤 저의 고유의 창조성이 인정된다면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근데 님께서는 이 부분을 왜곡하여 인터넷에 쓰여진글(심지어 역사글이나 수필까지)은 저작권 등록이 되지 않으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단정을 하고 계시고,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사항입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205&docId=56545007&qb=67iU66Gc6re46riAIOyggOyekeq2jA==&enc=utf8§ion=kin&rank=4&search_sort=0&spq=0&sp=1 여기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와있습니다. 타인이 나의 글을 이용한다면 저작권 침해입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205&docId=147048560&qb=67iU66Gc6re46riAIOyggOyekeq2jA==&enc=utf8§ion=kin&rank=30&search_sort=0&spq=0 여기 링크를 보시면 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적용이 되기 위해서는 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자신이 원 저작자인지를 입증하여야 하겠고, 그 침해사실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보상이 미미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저작권 등록만이 저작자를 입증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저작권 등록을 통해서 더 입증이 쉬워지는것 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글이나 게시판에 올린글도 자신이 원저작자임이 명백하고 입증할 수 있다면 상관없는 것입니다. 저작권법만 한번 읽어보시면 되는것을 굳이 이렇게 변호사들의 법해석까지 올려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더이상 글을 달지 마시고 본인의 잘못된 상식을 저작권법을 읽어보시면서 수정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자료 찾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검색해 보신다면 본인 생각이 잘못된 것을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저는 더이상 댓글달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만간 자유게시판에 저작권 관련글을 한번 쓰도록 하지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으시다면 그 글에서 논쟁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2/12/31 17:28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32&aid=0002289767&date=20121231&type=1&rankingSeq=4&rankingSectionId=103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라고 하지마 -_-;;;; 너희들이 그러니까 대접을 못받는거야 ;;
12/12/31 21:49
일반적인 인식은 조선시대 종교 정책이 숭유억불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명한 사찰의 역사를 살펴보면 의외로 영-정조 시기에 중건, 중수된 사찰이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해 있습니다. 어떤 사찰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주불전인 대웅전은 고려 말기 ~ 17**년(영조 몇년)에 중수되었다' 이런 식이죠. 그래서 불교문화가 죽었다고 단정짓기에는 힘들구요. 화려함이라는 잣대에서는 청자가 백자보다 나을 수 있겠죠. 그런데 백자는 백자만의 느낌, 장점이 있습니다. 그걸 굳이 낫다 못하다를 따질 것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17/10/12 05:22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051016125565617&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아버지가 감옥에 가셨네. 본인은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정말 몰라쓰까? 당신도 같이 감옥에 가야하는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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