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3/25 23:40:51
Name 리콜한방
File #1 10_32_49__58c0b0c1ee49c[X230,330]_(1).jpg (54.6 KB), Download : 51
Subject [후기] 홍상수-김민희 신작 영화 보고 왔습니다. (스포X)


- 방금 보고 온 [밤의 해변에서 혼자] 후기입니다.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너무 궁금한 마음에 보고 왔습니다.

일단 혼란스럽습니다. 익히 제가 알던 홍상수 영화와 아주 닮았지만 또 상당히 다릅니다. 늘 홍상수 영화는 자기 비판과 자기 합리화를 누구보다도 솔직히 보여줬습니다. 근데 이번은 다르죠. 온 국민이 아는 관계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양심이 없는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전반적 구도와 형식 면에서는 반성의 태도를 취합니다. 또한 이 정도로 그의 작품에서 '외로움'이 가볍지 않고 무겁게 작품을 지배한 경우가 있었나 싶습니다. 유머러스한 부분도 꽤나 있는 편이지만 그 유머의 쓰임은 철저히 지금 홍감독-김민희 관계와 대비됩니다.

김민희는 그의 속 얘기를 오롯이 다 꺼내어 늘어놓고 나머지 조연들은 홍상수 본심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두 현실과 현실 아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정신이 없는 거죠. 그 상태에서 상당히 수위 높은 솔직함을 보여줍니다. 김기덕의 [아리랑]이 생각날 정도로요.

두 사람이 매체에 나온 것처럼 그들의 사랑을 포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요소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다만 두 사람이 어떤 면 때문에 연인이 됐고 '이 지경'에 왔는지 명료하게 보여주기에 분명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것 또한 '그들 나름의' 비판적 시각 아래 묘사하고 있지만요.

어떨 땐 그들이 파렴치하고 노골적으로 느껴지면서 다른 장면에선 그저 저들도 한낱 인간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감정도 다가와요. 양가적 감정으로인해 보는 사람이 다 어지럽습니다. 이런 복합성 때문에 0점을 주고 싶은 5점 영화이면서, 5점을 주고 싶은 0점짜리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어쨌든 영화는 신선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도덕적 우위에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명사들의 속내를 관찰하면서 그 도덕적 우위 아래 그들의 변명을 판단합니다. 마치 영화 [라쇼몽] 캐릭터들의 각자 항변들을 듣는 것처럼요. 이런 식의 영화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불륜을 소재로 배우부터 감독까지 그 당사자들로 극 영화를 채워서 이런 영화적 체험을 유도하는 한국 작품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무엇보다 '외롭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지금이 순간까지 제가 갖는 하나의 감정이 고독입니다. 저들의 외로움을 비웃었지만 그들보다 외로운 게 저 자신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영화가 유도하기도 합니다.)


아, 연기 얘기를 안했군요.
네. 베를린에서 상 받을만합니다.
특히 첫 술자리 롱테이크 씬은 연출과 연기 모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연이었던 서영화와 정재영도 잘했고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ace T MndSclptr
17/03/26 00:04
수정 아이콘
홍상수 영화는 현실을 겉만 대충 뜯어다가 똑같이 그린 느낌이고 알맹이가 하나도 안 느껴져서 싫어하는데 이번 작품은 좋았네요 진짜 살다 살다 홍상수 영화를 보고 좋다는 느낌도 받네... 연기 영화 둘다 박수쳐줄만 합니다.
킹이바
17/03/26 00:27
수정 아이콘
김민희는 현재 연기로선 절정에 달한 거 같더군요. 말씀하신 술자리 롱테이크 씬은 대단합니다. 다른 배우들 중에선 정재영이 가장 기억남네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함춘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 중 일부 사람들은 극 중 지극히 적은 대사 '내로남불식의'을 (가장 많이 인용되고 퍼지는 건 영희의 지인들이 영희를 두둔하던 그 장면의 대사겠죠) 가지고 자기 변명과 합리화만 가지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하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네요. 그걸로 영화를 평가하는 건 지극히 침소봉대하여 영화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의 홍상수는 비겁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는 적어도 그 안에선 비겁하지 않았다고 봐요. 실제 삶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미안함 변명 애정 후회 등등)을 다 녹여냈고 그걸 픽션과 사실의 경계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매력적인 영화로 뽑아냈어요. 온전히 반성과 변명의 영화라 보진 않지만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이겠죠. 그렇지만 가장 머릿 속에 남는 정서는 '외로움'이며, 장면은 홀로 걷는 김민희였어요. 쫓기기도, 누군가 깨워주기도 하지만 결국 홀로 걸어가며 그 뒷모습을 바라봐주는..
자전거도둑
17/03/26 00:34
수정 아이콘
편견을 가지고 이번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좋더군요. 이래서 문화예술이 무서운건가봅니다.
서동북남
17/03/26 00:38
수정 아이콘
영화 잘 찍는 인간쓰레기와 연기 잘하는 인간쓰레기죠.
뭐 예술계에서는 영화만 잘 찍고 연기만 잘하면 되겠지만 예술 바깥으로 튀어나오진 말길 바랄 뿐.
sinsalatu
17/03/26 02:52
수정 아이콘
인간쓰레기 뵨사마도 잘만사는데요 뭐 ㅡㅡ 휴 먼산
구밀복검
17/03/26 00:49
수정 아이콘
참고로 영화 촬영은 작년 2월에 끝났습니다. 홍-김 관계가 처음 보도된 건 촬영 종료 후 4개월 뒤였죠.
17/03/26 01:59
수정 아이콘
뭐 본인들이 선택한길이니만큼 훌륭한 업적이라도 많이 남기길 바랍니다
언어물리
17/03/26 05:21
수정 아이콘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한가인
17/03/26 10:54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전국민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해도 저는 보고 싶지 않네요.
우리는커플
17/03/26 11:51
수정 아이콘
저는 예술인으로서의 홍상수와 김민희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17/03/26 13:57
수정 아이콘
홍상수 영화를 처음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모호성을 극대화한 영화같아요. 그 모호성 안에서 본심도 풀어놓고 변명도 풀어놓고 반성도 풀어놨네요. 선택은 우리보고 하라는 걸까요.
17/03/26 14:46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에서 전반적 구도와 형식 면에서는 반성의 태도를 취하는 부분이 어떤 점인지 궁금합니다.
리콜한방
17/03/26 15:30
수정 아이콘
[안 보신 분들은 스포 주의 해주세요]
일단 영화 시작부터 그의 영화로선 드물게 온통 검정 화면에 손글씨가 아닌 명조체 폰트로 크레딧을 시작하죠. 매우 무겁고 진중합니다. 음악도 내내 단조풍의 곡으로 채워지고요. 오프닝부터 후반까지 김민희가 첫 시퀀스에 등장할 때 항상 카메라는 김민희의 정면을 찍지 않습니다. 거의 뒤통수를 담고 있어요. 극 상황도 김민희는 현재 헤어진 상황입니다. 실제 그들과는 반대죠. 또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고 달콤한 장면에선 김민희가 자리에 없거나 (안재홍 커플), 제대로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죠 (정재영 커플 커피가게씬). 김민희는 '나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몇번 보여주지만 정작 극 중 김민희 커플은 만나지도 않고 그녀는 외로우며 일도 끊겼고 서울로 들어오지도 않죠.

한 번씩 카메오로 출연하는 검은 옷의 남자 같은 경우 '현실'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김민희가 '현재 시간'을 모르는 걸 확인시켜주고 또 외국에서 한국 -결국 김민희가 1차적으로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가버리기도 하고, 호텔에서 '불륜 비판자들에게 일갈'하는 출연진들이 아예 저 사람의 존재를 못보기도 하고요. 즉 현재 김민희(와 홍상수)가 처한 진짜 중요한 현실 문제를 쳐다보지 않고 거부한다고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후반부 바다 씬에서 김민희는 거대한 바다 앞에서 그저 뒷모습으로 누워있기만 해요. 영화 스텝을 만나서 교감하는 일도 전부 꿈이었죠. 또한 꿈의 마지막을 보면, 그전까지 김민희가 '책'에 빠져있는 마음을 계속 언급했지만 정작 감독이 준 책은 받지 않고 나가버립니다. 그 전에 문성근이 자책을 하는 장면은 언급 안해도 될테고요.

- 본문엔 반성이라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반성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고뇌와 어떤 죄의식 같은 무거운 정서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네요. 절을 올린 행위는 잘 모르겠어요.. 진짜 반성인지 누구 놀리려는 건지. 그리고 그 둘은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느꼈어요.
17/06/22 12:40
수정 아이콘
답이 늦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여러 단어 중에 '고뇌'가 가장 정확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삼겹살에김치
17/03/26 17:57
수정 아이콘
저도 일단 한번은 보려고요.아가씨에서 김민희 연기를 워낙 좋게 보기도 해서 궁금하기도 하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6786 6
공지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489 0
공지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5645 8
공지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8600 28
공지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8794 3
101306 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15] Kaestro3543 24/04/20 3543 3
101305 스포 無) 테츠로! 너는 지금도 우주를 떠돌고 있니? [10] 가위바위보2425 24/04/20 2425 5
101304 서울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탄 [31] kogang20014124 24/04/19 4124 11
101303 서울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탄 [9] kogang20014369 24/04/19 4369 5
101302 이스라엘이 이란을 또다시 공격했습니다. [142] Garnett2115325 24/04/19 15325 5
101301 웹소설 추천 - 이세계 TRPG 마스터 [21] 파고들어라4908 24/04/19 4908 2
101300 문제의 성인 페스티벌에 관하여 [160] 烏鳳11806 24/04/18 11806 62
101299 쿠팡 게섯거라! 네이버 당일배송이 온다 [42] 무딜링호흡머신7789 24/04/18 7789 6
101298 MSI AMD 600 시리즈 메인보드 차세대 CPU 지원 준비 완료 [2] SAS Tony Parker 3008 24/04/18 3008 0
101297 [팁] 피지알에 webp 움짤 파일을 올려보자 [10] VictoryFood2955 24/04/18 2955 10
101296 뉴욕타임스 3.11.일자 기사 번역(보험사로 흘러가는 운전기록) [9] 오후2시4968 24/04/17 4968 5
101295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신규모집(~4/30) [3] jjohny=쿠마6946 24/04/17 6946 5
101290 기형적인 아파트 청약제도가 대한민국에 기여한 부분 [80] VictoryFood10946 24/04/16 10946 0
101289 전마협 주관 대회 참석 후기 [19] pecotek5587 24/04/17 5587 4
101288 [역사] 기술 발전이 능사는 아니더라 / 질레트의 역사 [31] Fig.15629 24/04/17 5629 12
101287 7800X3D 46.5 딜 떴습니다 토스페이 [37] SAS Tony Parker 5597 24/04/16 5597 1
101285 마룬 5(Maroon 5) - Sunday Morning 불러보았습니다! [6] Neuromancer2940 24/04/16 2940 1
101284 남들 다가는 일본, 남들 안가는 목적으로 가다. (츠이키 기지 방문)(스압) [46] 한국화약주식회사7623 24/04/16 7623 4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