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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1/17 10:05:42
Name 글곰
Subject [스포있음] 셜록 시즌 4. 끝인가 계속인가
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스포 있습니다.



어제 KBS에서 셜록 시즌4 마지막화를 방송했습니다. 음. 사실 별로였어요. 이렇게 시리즈를 계속 끌고간다면 말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나다를까 막바지에 결국 시리즈의 종결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마무리짓고 시즌 5가 나온다면 엄청나게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겠지요. 제목을 저렇게 적은 건 그냥 스포방지용이고 셜록은 이제 슬프지만 더 이상은 안 나온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각설하고, 시즌 4의 최종보스는 마이크로프트의 동생이자 셜록의 누나인 유로스입니다. 한니발 렉터의 여성전환 느낌입니다. 작중에서도 대 놓고 한니발 렉터를 언급할 정도니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평면적인 클리셰 캐릭터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성우의 연기가 좋았거든요. 원래 배우의 목소리는 안 들어봤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셜록과의 첫 대면에서 긴장감을 불어넣고, 왓슨이 유로스에게 현혹되는 것처럼 페이크도 살짝 곁들이고, 진실의 편린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실 유리창 없음! 으로 그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연출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지요.

셜록은 하나뿐인 형, 하나뿐인 친구와 함께 뜬금없이 방탈출 게임을 하게 됩니다. 그래요. 2화에서부터 징조가 보였지만 드라마는 이미 추리극이 아니라 심리극으로 변모한 지 오래입니다. 셜록은 약간의 추리를 곁들여 문제를 해결하고, 그럭저럭 고뇌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것만으로는 이후의 개연성이 부족하니까 괜히 관짝도 두들겨 부숩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탄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상황이 그의 마음을 급하게 합니다만 이를 어쩝니까. 시청자인 저의 마음은 하나도 급하지 않습니다. 5분마다 한 번씩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되풀이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상황이니 긴박감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아 좋아요. 그래도 아이는 살려야죠. 셜록은 신사니까. 그런데 왜 자살을 하려는지 모르겠네요. 아니 이유는 압니다. 아는데, 짜증나네요. 개연성이 없거든요.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튼을 쏴버릴 때가 차라리 나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왓슨을 네가 괴롭혔겠다 이 나쁜 놈아]라는 최소한의 감정적 이유라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형과 친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당하자 아몰랑 자살로 대응하는 캐릭터는 제가 알던 셜록이 아닌 거 같아요.

하여튼 드라마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작가들이 긴박감에 대한 강박증이라도 걸렸는지, 친애하는 왓슨 선생은 이번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우물에 처박힙니다. 클리셰범벅답게 우물에 점차 물이 차오르고, 셜록은 괜히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말의 긴장감조차 없이 문제를 해결하네요. 비석의 숫자 몇 개를 훑어보더니 이야 깨달았다! 그리고 반전! 우와 반전! 우와 놀라운 반전! 이야! 우와!

고작 이딴 게 반전이라니.

악당, 모리아티 이상 가는 악당으로 세팅된 유로스는 불과 한시간만에 '사실 걔도 불쌍한 아이였단다'의 축에 끼여 버립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갑작스레 해답을 쏟아내지요. 유로스가 셜록을 왜 괴롭혔을까요? 어릴 때 친구랑만 놀고 누나랑은 안놀아줘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동생을 괴롭히고! 어, 내가 느그 친구랑! 어, 바람도 피우게 하고! 어, 상담도 하고! 그랬어 인마! 네가 안놀아줘서!

이야. 대단하다. 그쵸?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이런 꼴로 끝나다니 씁쓸합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몸값도 치솟았고, 닥터 스트레인지 노릇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좀 더 멋진 마무리를 지어줄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런 결과에다, 갑자기 죽은 사람이 DVD 영상으로 되돌아와서는 [야 이 게이들아 어디 한 번 둘이 잘 살아봐라 사람들도 도와 가면서 말이야] 그런 훈훈한 멘트 하나 치고는 그냥 시리즈 끝! 입니다. 그냥 실망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에휴.

그래도 즐거웠어요. 드라마 셜록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영상화한 모든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재해석을 보여주었거든요. 마지막이 마음에 안 들어서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래도 열 두 편의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언제 또 이렇게 그럴듯하게 재해석된 셜록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십 년 후? 이십 년 후? 그 때를 기다려 봅니다.


ps. 몰리 불쌍해요. 번외편이라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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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까스활명수
17/01/17 10:15
수정 아이콘
글을 읽다보니 속이 뚫리네요.
너무나 아쉽지만 보내줘야 하는게 맞나봅니다.
마스터충달
17/01/17 10:24
수정 아이콘
잘 가라 셜록... 어차피 이별이란 구질구질한 법이란다...
17/01/17 10:26
수정 아이콘
아. 왜이리 글이 찰지나 했더니 글곰님이셨군여.

진짜 허드슨 슈마허는 만들어 놓고 몰리 더 보모는 어떻할겁니까! ㅜㅜ
요르문간드
17/01/17 10:29
수정 아이콘
배우들이 너무 성공해서, 영화 3개짜리 분량인 셜록을 찍을수가 없죠.

시즌4도 간신히 시간 맞춰서 나온거 같던데.

전 그냥 마지막 팬서비스였다고 생각합니다.
17/01/17 10:49
수정 아이콘
http://m.blog.naver.com/shodream95/220913055383

여기 보면 제작진은 아예 시즌5를 배제하진 않고 있네요. 물론 여기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 엔딩 같기도 하구요.

1. 뭔가 어릴적의 트라우마들이 작중 인물들에게 과한 영향을 미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안 놀아줬다고 사이코패스가 되고 (...) 인간 하나를 통째로 지우고 개로 만들어버리고..

2. 유로스,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대비시켜 보여주려던건 이해가 되는데 유로스가 그리 된 것에 좀 더 개연성 있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네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놀아줘서 그리 된건 좀..

3. 마지막 메리 연출은 정말 하아.. 셜록 보다가 가장 실망한 순간 아니었나 싶네요. 딱 메리 역할은 4-2까지였는데..

4. 전 4-2가 그래도 괜찮아서 여전히 기대하고 있네요. 본래 사람들을 처음에 끌어들였던 그 캐릭터가 변해가는 과정, 성장을 위주로 플롯이 흘러가다보니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케이스 자체에만 집중해서 만들어내면 좋은 작품 나올거라 생각합니다. 이러건저러건 시즌5는 나오면 좋겠어요.
Chandler
17/01/17 11:27
수정 아이콘
모팻형 그냥 독타후나 집중해주세요...뭐 그래도 기대감이 컷던것때문에 지금의 실망이 큰거고 좀 지나고 다시 1시즌 1편부터 정주행 하면 역작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7/01/17 14:34
수정 아이콘
독타후도 이 시즌 마지막으로 하차하지 않나요?
Chandler
17/01/17 14:39
수정 아이콘
아 그런가요 몰랐네요 하긴 독타후도 오래했죠..
네임드선비
17/01/17 14:24
수정 아이콘
갑자기 개연성 없는 초능력물이 되다니
17/01/17 14:44
수정 아이콘
메리의 엔딩 멘트를 들으며 이제 보내줘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레스트레이드에게 "땡스 그렉" 이라는 그 말이 여운이 있네요.
머리 좋은 소시오패스 뿐이었던 셜록의 사회성 성장 과정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花樣年華
17/01/17 18:09
수정 아이콘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나쁘진 않았어요...
카라이글스
17/01/23 09:52
수정 아이콘
KBS 자막판 시청해와서 글올리신거 안보고 있다 방금 읽었네요. 유러스 애기모드 들어가고 해결될땐 진짜 벙찌긴 했어요 크크
시즌1 이후 몰입감은 점점 떨어져가고는 있지만 개인취향으로는 일단 뭔가 남겨두지 않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네요.
시즌5 나오면 좋겠지만 그건 배우들과 제작진의 의사에 맡기는걸로...드라마도 글곰님 글도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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