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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2/12 21:27:30 |
Name |
phoneK |
Subject |
[공모] Fly High -6화- '푸른 눈동자' |
"아직 정보가 충분치 않아. 게임속에 구체화된 K의 유닛은 지상공격력150 공중공격력250의 만능유닛이다. 핵을 쏠 수도 있다는 것은, 실제로 다른 모든 기술을 다 쓸 수 있다고 봐야할지도 몰라."
3일 후, 강민과 용호, 진호는 강민의 집에 함께 모여 그간 있었던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낸 것은 역시 강민이었다. 강민이 K의 상세한 데이타를 꺼내놓자 용호와 진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결국 이 K란 유닛은, ‘사기유닛’이로군. 이길 방법이 있을까?"
"그거보다는 일단 클로킹을 풀 생각부터 해야할 거 같은데. 옵저버에 스캔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니, 그보다 그 유닛을 처치하면 그걸로 끝일까? 또 다른 유닛을 마구 만들어낼 수있는 존재라면 완전 초치는 건데. 차라리 하드웨어적으로 접근하는 건 어떨까?"
진호의 말에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소문을 들어보니 문제가 생긴 컴퓨터는 모조리 협회에서 압수해갔다더군. 아무래도 그 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같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 이대로라면 게임채널 자체가 사라져버릴테니까."
셋은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 K가 나타난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은 아직 짙은 안개속에 묻혀있었다. 무언가 전환점이 될 만한 것을 찾아야겠는데, 아직은 그럴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 세 명이서 이 일을 전부 떠맡는건 무리일 것같아. 특히 진호 너는 일도 해야하고 연예도 해야되서 바쁘잖아."
"그래서 어쩔려구?"
"아군을 더 만드는 거지. 우리와 생각이 비슷하고 올드 게이머이며 스타를 사랑하는 사람."
용호와 진호는 잠시 생각한 뒤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박서?"
"아니. 요환이형은 이미 우리편이 되었어. 어제 저녁쯤에 전화를 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전했지. 다만 오늘 선약이 있어서 못 나온 것뿐이야."
강민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푸른 눈의 전사라 불리는 사람이지. 협회의 일원이기도 하니까, 지금쯤은 조사에 착수했을거야."
강민은 한 때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그의 활약을 떠올렸다. 한국이란 낯선 땅에서 그가 이룬 크고 작은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스타크래프트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천재'라 불리우는 사람이 뜨게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되는 법, 그런 의미에서 스타크래프트계에서 기욤의 출현은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푸른 눈의 전사라면, 기욤을 말하는군. 그는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떤 관점에서 풀어낼 생각일까. 무척 기분좋은 상상이야 그건."
기욤과 몇번 대결해 본 적있던 진호는 그의 천재성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천재란 것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란 뜻이다. 단지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하지만 '천재'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는 기욤과 다른 게이머를 비교해보면 진실로 느낄 수 있었다.
진호는 다른 게이머에게서 보지 못한 불꽃을 그에게서 본 것이다. 그 불꽃은 한 때 기욤의 모든 유닛하나하나에게서 푸른물고기처럼 세차게 튀어오르곤 했다.
"워낙 자존심이 센 녀석이라 회유하기 쉽지 않겠지만, 일단 목표가 생기면 멈추지 않는 녀석이지. 아마 이번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거야. 더욱이 협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보다 앞서 일을 처리하려 할 테지."
"협회 의장과의 관계 때문?"
용호는 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래. 기욤과는 배다른 형제이지 그는."
"잘왔다, 김주혁군."
의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혁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주혁은 난생처음 만나는 협회 의장에게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협회 의장이라고해도 전혀 스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도와줄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
그러나 의장은 그런 주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우리는 녀석을 K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K라는 녀석이 주혁군과 관련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고있지. 무언가 짚히는게 있다면 말해주지 않겠나?"
"녀석은, 절 미워하고 있는게 틀림없어요. 게이머 전체에게가 아니라 유독 나한테만 말입니다!"
주혁은 무릎에 얹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한번 만 더 게임을 하게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이제 전 어떻게 해야되죠?"
"주혁군, 알고있는 걸 전부 말해주게. 그 말은 언제 들은건가? 방송경기 외에도 녀석과 조우한 적이 있던가?"
주혁은 전날 강민과 있었던 일을 전부 의장에게 고해바쳤다. 의장은 강민 선수가 개입되있다는 것에 무척 놀라면서도 납득이 간다는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찌보면 이것은 게이머들의 모든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 주혁군, 자네는 영웅이 될 수 있어. 우리에게 잘 협조해준다면 녀석을 멋지게 잡아낼 수 있을거야."
의장이 벨을 울려 뭐라고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흰 셔츠에 말쑥한 옷차림을 한 의장과는 달리 무척 지저분하고 기름냄새를 풍기는 아저씨였다. 악수를 건넨 손에도 알 수 없는 때같은 게 묻어있었다.
"반갑네, 주혁군. 나는 국립컴퓨터기술연구소의 박재익이라고 한다."
"아, 저는..."
주혁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의 손이 너무 더러워보였기 때문이다.
"이봐, 아무리 급해도 샤워정도는 할 수 있잖아. 게다가 주혁군은 악수를 싫어한다고 하하하."
"하하 그랬었군요. 하지만 이틀 밤샘한 뒤 바로 달려온 거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박재익이란 사람은 무언가 허술해보이면서도, 비수를 숨긴 듯한 자객의 느낌이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말 한마디마다 비치는 그의 명석함과 예리함은 곧 의장과 주혁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주혁에게는, 국립컴퓨터기술연구소라는 생소한 이름이 더욱 그런 느낌을 주고있었다.
"우선 방송경기에서 문제를 일으킨 컴퓨터에 대한 분석자료를 설명드리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상으로 거의 하자가 없는 컴퓨터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히스토리에는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히스토리라고요?"
"김주혁군, 요즘의 컴퓨터는 현재의 상황만을 기록하는 건 아니라네. 적어도 한달 이내의 모든 사건들은 컴퓨터에 기록되지. 예컨데 언제 바이러스가 침입했고, 또 어떤 해커가 침투했었는지를 비롯해서... 어떤 알 수 없는 신호가 컴퓨터를 거쳐갔는지까지 말이야.
그것은 정확히 xp세대 이후 운영체제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어. 히스토리 외에도 또 어떤 것이 있냐면..."
박재익은 무언가를 더 설명하려는 듯 하다가, 의장이 헛기침을 하자 곧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 3대의 컴퓨터의 히스토리를 살펴본 결과, 정확히 방송 당일날 무언가 알 수 없는 전자기 신호가 랜선을 통해 들어왔다가 빠져나갔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묘한 신호였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전자기 신호는 어떤 형태로든 히스토리에 기록이 되기마련인데 이번 것들은 전혀 컴퓨터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박재익은 A4용지에 인쇄한 결과를 두 사람에게 보이며 말했다. 용지에는 복잡한 도표와 영어가 씌여있었지만, 주혁은 쉽게 그 결론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측 하단에 굵은 글씨로 한 단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UNKNOWN(정체불명)'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자네 말대로 김주혁 군을 부르긴 했지만."
"의장님, 다행히 이 신호가 컴퓨터에 머문 시간이 짧지 않습니다. 대략 30초 정도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주혁군을 필두로 하여 방송경기로 함정을 파볼까 합니다."
"아저씨 그럼, 또 방송경기를 해야한단 말인가요?"
주혁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K의 마지막 경고가 그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재익의 말을 들은 의장은 주혁를 다독이며 작은 목소리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김주혁군, 이 박재익이란 분은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네. 걱정말고 기다리면 돼.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끝날거야. 그러면 자네는 영웅이 될 수 있어."
그 말에 주혁은 의장이란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은 마치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얼굴에는 한 점 거짓말도 찾을 수 없었다. 흰 피부에 이지적인 눈매에 작은 금테안경을 걸치고 웃는 모습이 마치 가면같았다. 주혁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꼈지만, 이제와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협회의 제안에 응해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는가.
"K가 주혁군의 컴퓨터에 접속해있는 동안 다른 컴퓨터 서버로 이어지는 모든 회선을 차단할 것입니다. 전자기 신호라는 것은 회선이 차단되면 그 힘을 잃음과 동시에 그 흔적이 하드웨어에 강하게 남게됩니다. 무엇보다, 누가 그 컴퓨터에 회선을 연결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복구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키포인트죠."
주혁은 박재익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전해 들었다. 방송경기 일정은 차후에 정해진다고 하였다. 의장은 몇번이나 주혁을 다독이며 격려했고, 주혁의 불안과 K의 마지막 경고도, 그의 머리 속에서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주혁이 떠난 뒤, 의장과 박재익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데, 만약 그 전자기 신호가 삽입된 컴퓨터를 회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연구소로 가져가서 분석해볼 생각입니다. 이런 자료는 항상 저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죠. 이 커피처럼요."
박재익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의장의 표정은 주혁이 있을 때완 달리 냉엄했다.
"경고하지만, 그 컴퓨터에 랜 선을 꽂을 생각을 하지 말게. 만약 그렇게 해서 또다시 안좋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자네에게 책임을 묻을 테니까."
"경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나저나 얼마전 지방으로 내려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지 뭡니까."
"반가운 얼굴이라니?"
"의장님의 형제말입니다. 듣자하니 전 프로게이머로 활약했다던데, 왜 그런 곳에 가있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기욤인가...무얼 꾸미고있는 거지?"
박재익은 의장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짐을 느끼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장은 박재익이 방을 나간 지도 모르고 생각에 잠겼다. 기욤은 늘 협회보다 앞서서 일을 처리하곤 했었다. 의장은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푸른 눈의 그가, 어느새 프로게이머가 되고 또 협회의 임원이 되어서 주위를 서성대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의장을 괴롭히는 일은 없지만, 언제나 기욤은 눈에 가시였던 것이다.
의장은 박재익이 남기고 간 인쇄물을 말없이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아무래도 당신의 재능은 제게는 남겨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처럼 검은 눈을 하고는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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