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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2/12 21:13:18 |
Name |
phoneK |
Subject |
[공모] Fly High -5화- '강민' |
주혁은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조금 전 자기가 한 말을 들었을까봐 불안해하며-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손짓만으로 강민을 안내했다.
"스타리그 우승을 축하해요. 그런데 최근 불미스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더군요. 김주혁 씨 주위에서요."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겁니까? 선배라곤 해도 은퇴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밤늦게
찾아오다니."
"그래서 미리 사과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급한 문제라서요. 그리고 은퇴는 했지만 그리 한물간 실력은 아니지요 후후."
강민은 넉살좋게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가 주혁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에는 아직 초성대와의 일전을 다룬 리플레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경기였죠. 채팅메세지가 뜰 줄 알았는데 뜨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당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같은데 어떻습니까? 주위에 원망을 살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던가요?"
"너무 무례하군요,당신! 지금 나를 심문하겠다는 겁니까!"
주혁은 당장이라도 내쫓을 기세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강민은 계속 주혁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혹, 이번 스타리그 결승도 부정한 일이 겹쳐진 것은 아닌지?"
강민의 싸늘한 시선과 함께 방 안의 공기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혁과 강민은 서로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고요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족발왔습니다!"
강민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실력이 있어서 우승한 건지 궁금한데, 한번 겨뤄보지 않으실런지요? 마침 내기할 만한 물건도 도착한 것같으니."
강민은 내기를 좋아했다.그리고 내기를 하면 반드시 이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족발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주혁의 집에는 컴퓨터가 4대나 있었다. 강민은 2개의 컴퓨터를 마주 배치하고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모니터 너머로 주혁을 힐끔 쳐다보았다. 상기된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맵은 'Fly High'로 합시다. 단판승부로. 족발이 식기전에 끝냅시다."
"실례지만, 스타안하신지 오래되셨죠 선배님? 제가 본실력을 발휘해도 괜찮나요?"
이번엔 주혁이 강민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민은 대수롭지 않은 듯 헤드폰의 볼륨을 조절하며 짧게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good luck"
주혁의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강민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곧 게임이 스타트되자 강민은 빠른 손놀림으로 모든 사운드와 효과음을 제거했다. 그리고 헤드폰의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덕분에 프로브 나누기가 늦어졌지만 맵인 'Fly High'는 어차피 장기전을 목표로 제작된 맵이니 앞으로가 더욱 중요했다.
강민이 더블넥을 선택하려는 찰나, 김주혁은 어디 두고봐라 하는 심정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혁이 선택한 전략은 최근에 플토전에서 자주 쓰이는 몰래팩토리 전략이었다. 주혁은 이 맵에서 같은 전략으로만 5승을 거둔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하필 이 맵을 선택한 것은 강민의 불운이었다.
주혁은 강민의 앞마당 옆 사각지대에 팩토리를 건설하고 일꾼을 강민의 본진으로 들려보내 동향을 살피려했지만 이미 프로브2마리가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제법인데, 하지만 너무 오래묵었어 당신은!'
키득대며 주혁은 팩토리를 올린 뒤, 바로 시즈모드를 개발했다. 그리고 바락에서는 마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주혁의 전략은, 단순한 몰래 팩토리가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간 이중전략이었다. 주혁이 팩토리를 건설한 그 자리는 시야확보만 하면 플토의 본진으로 포격이 가능한 요충지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강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본진안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주혁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혁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열 가지도 넘었다. 주혁은 현재 자신이 이길 확률을 70%정도까지 점쳤다.
잠시간의 소강상태 후, 강민의 본진을 공략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주혁은 학익진으로 입구를 포위한 뒤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 만약의 상황이란, 강민이 일발필살의 빌드로 다크나, 리버나, 캐리어를 준비했을 때이다. 그러나 주혁은 엘리전의 상황이 된다해도 자신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있었다. 이미 주혁의 앞마당은 잘 돌아가고 있는 상태였으며 군데군데 박힌 마인이 리버와 다크를 견제해줄 것이다. 만약 캐리어가 뜬다면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주혁의 탱크와 벌쳐 마린들이 강민의 본진을 초토화시키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방어를 중점으로 포위한 세력을 캐리어로 공략하려한다면 일단 터렛으로 시간을 끈 뒤 앞선 자원력을 바탕으로 골리앗체제로 전환해도 늦은 게 아닐터였다. 더군다나 이 맵은 미네랄이 적은 특징이 있었다.
"선배님, 혹시 단축키를 잊어버리신건 아닌지?"
주혁은 강민이 못들을 거라 생각하고 혼자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민은 그 목소리를 무척이나 잘 듣고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몇배나 자신의 청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주혁이 알면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강민은 온리옵저버 체제였다. 온 맵을 밝힌 뒤 K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주혁은 평정을 잃은 채 강민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강민은 주혁의 본대가 입구로 파도처럼 밀려들자 온 맵을 샅샅히 살피기 시작했다. 리플레이로 남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에, 지금 직접 녀석의 정체를 봐두는 편이 좋았다. 일부러 크기가 작은 맵을 선택한 판단이 옳았는지, 강민은 곧 맵을 살피는데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디냐,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낚아줄 테니까 어서 미끼를 물어라!'
강민의 생각도 모른 채 주혁은 신나하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강민의 건물을 부수어대며 혹 있지 않을까 하는 몰래 멀티나 몰래 파일런을 정찰하고 있었다. 강민은 미니맵에 나타난 주혁의 유닛들의 모습을 살피며 피식웃었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게임을 하는 후배였다 주혁은.
"어엇!?"
그 때 갑자기 주혁의 외마디 외침소리가 강민의 귀청을 때렸다. 모든 효과음을 줄인 상태에서 주혁의 외침은 그 무엇보다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강민의 귀는 그 직후 또다른 소리 하나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날카로운 무기로 쇠를 베어내는 듯한 차가운 소리’였다.
강민은 다시 미니맵을 살폈다. 맵의 좌중앙 쪽에 배치되어있는 유닛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클릭해서 그 곳을 살펴보니 시즈모드된 탱크들이 한방에 터져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탱크들이 터져나갈 때마다 그 야릇한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주혁은 무척 당황했는지 손을 벌벌 떨며 버벅대었지만 탱크의 수는 삽시간에 줄어가고 있었다.
"이봐, 당신. 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쉿, 조용히."
강민은 클로킹된 그 '무언가'의 움직임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것이 건물을 때릴 때 주의깊게 살폈다. 용호의 말대로, 그것의 지상 공격력은 약 150정도인 듯했다. 그리고 주혁이 띄운 건물을 때릴 때를 살펴보니 공중 공격력은 250이나 되었다. 그것은 거의 일정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강민은 주혁의 본진이 초토화되어가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다가 엔터키를 누르고 채팅창을 열었다.
'누구냐, 너?'
강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녀석이 반응해올 것인가. 하지만 먼저 반응한 건 주혁이었다. 주혁은 강민이 친 글자를 보고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녀석인가!"
하지만 모니터에 신경을 집중한 강민의 귀에 주혁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강민은 다시 한번 반응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키보드를 움직였다.
'비겁하게 숨지말고 이리 나와라. 나는 강민이다.'
그러자 모든 유닛의 파괴가 갑자기 중지되면서 천천히 글자가 떠올랐다. 처음과는 달리 그 글자의 색은 핏빛에 가까운 붉은 색이었다.
'멋진 함정이군요, 강민 선수. 하지만 당신을 날 막을 수없어요.'
'기다려! 너와는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아직, 스타가 끝난 게임이라고 생각치 않아. 모든 게이머가 너의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강민은 최대한 침착하게 글자를 쳐나갔다.
'내기를 하자. 우리와 내기를 하는 거다. 정말로 그렇게 승리만을 위한 게임이라면, 우리와 게임을 해보자. 그러고나서 판단해보는 건 어떤가?'
'안타깝지만,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김주혁에게, 다음에 한번 만 더 스타경기에 출전하게 되면 봐주지 않겠다고 전해주시길.'
강민은 천천히 모니터화면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건너편의 주혁을 바라보자, 그는 강민의 시선을 피하며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됐습니까? 당신이 이겼으니 돌아가주시길."
"미안하게 되었군요. 하지만 당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타를 가슴에 담고있는 모든 이들의 문제입니다."
주혁은 고개를 숙인 채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은 몇가지 더 묻고 싶었지만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문을 나섰다. 강민이 문을 나서자, 주혁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생각났어. 그 글자체..."
따르르릉-
갑자기 무슨 전화인가. 주혁은 깜짝 놀라 전화기를 들어올리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넘어있었다.
"네, 김주혁입니다. 네? 협회요?"
전화속의 목소리는 자신을 협회의 의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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