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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2/12 18:44:19 |
Name |
phoneK |
Subject |
[공모] Fly High -4화-'김주혁' |
-4화- '김주혁'
"안녕하십니까, 정말 오래 기다리셨던 김주혁:초성대의 에이스결정전입니다. 벌써 3번째인데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시청자여러분, 이자리를 빌어서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기시작전에 모든 사전검사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바이러스 체크에 해킹여부 검사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레지스트리 검사까지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대비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전용준 엠씨께서 사표를 내신다 하셨습니다."
"더불어 김창선씨도 함께하신다 하셨죠?"
벌써 세번째 경기를 치르는 김주혁이었다. 김주혁은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머리속이 몽롱해옴을 느꼈다. 무척이나 중요한 경기였지만, 경기의 승패보다도 또다시 채팅메세지가 등장할지 여부가 더욱 그의 마음을 불안케하고있었다.
'그 글자체, 어딘가 낯익어.'
분명 어디서 본 듯한 글자체였던 것이다. 주위 친구들의 글자체였나, 아니면 수많은 팬레터에서 본 글자체중 하나였을까. 주혁은 게임이 스타트되기 바로 직전까지 그에 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친 것은 주혁을 상대하는 초성대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맵에서 세 번이나 같은 전략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성대는 계속 다른 전략을 연구해왔으며, 그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승부를 내야겠다는 마음에서 주혁보다 훨씬 나은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 초성대 선수. 초반에 이득을 보겠다는 뜻인가요. 6마린 전진합니다. 러쉬거리가 길긴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허를 찌를 수 있겠군요."
"예전에,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임요환 선수가 저런 빌드를 사용한 적이 있었죠. 그 때 상대가 서지훈선수였던가요?"
"네, 맞습니다. 엠비씨배 스타리그 8강1경기였습니다. 그 경기에서 임요환선수가 승리함으로 인해 서지훈 선수가 탈락해버렸지요."
초성대의 6마린이 전진하는 사이, 벌쳐들이 추가되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김주혁은 러쉬거리를 감안한 더블컴전략이었다. 김주혁의 머리속에는 초성대의 6마린은 안중에 없었다. 그래서 특별한 대비책없이 최대한 배를 째는 형태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유만만한 김주혁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새벽 안개를 뚫고 초성대의 마린일병들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김주혁 선수, 위기입니다!"
"답이 없어요~ 하지만 일꾼이 총출동하면 어떨까요?"
"S!"
"C!"
"V!"
진행진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사이, 벌쳐들이 마린을 보호한 채 주혁의 앞마당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주혁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일꾼을 모두 이끌고 나왔지만 이어지는 초성대의 화려한 무빙샷앞에 많은 손실을 입고 말았다.
한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김주혁의 앞마당은 한참동안이나 들려져있는 상황이었다. 초성대는 유리함을 인식하고 무리한 진격을 하지 않았다. 단지 시즈모드를 개발하면서 같이 앞마당을 가져갔을 뿐, 물론 이런 진행은 전투가 일어나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주혁의 앞마당이 다시 내려왔을 때 이미 초성대의 앞마당 일꾼 수는 배 이상이었다.
"아무래도 초성대 선수가 유리해보입니다. 농담이지만, 또다시 채팅메세지가 김주혁 선수를 구원해줄 것인지, 아니면 운명의 여신이 초성대 선수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패배를 직감한 김주혁의 머리속에는 채팅메세지에 관한 불안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얼마전 치열했던 결승 경기들을 떠올리며 이를 깨물었다. 이 승부를 패배하게 되면 수많은 안티(anti)들의 표적이 될 게 틀림없었다.
'젠장, 왜 내가 불리할 때는 가만있는거지.'
김주혁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방러쉬를 준비했다. 초성대의 앞마당을 스캔으로 찍어본 결과 탱크와 벌쳐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김주혁은 드랍쉽을 뽑아 폭탄드랍을 준비했다. 본진에 탱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본진과 앞마당을 동시에 커버하기엔 시즈모드의 사정거리가 짧은 맵이었다.
"드랍인가요? 김주혁 선수 이 한 방에 모든 걸 걸 생각입니다!"
"본진에는 아직 탱크가 많으니 앞마당을 노릴 겁니다. 아, 이런 드랍쉽이 떠나기직전 초성대 선수의 스캔이 김주혁 선수의 드랍쉽을 찍었습니다. 김주혁 선수, 회군입니까?"
그러나 김주혁은 고집스럽게 진군을 계속했다. 초성대의 앞마당을 목표로 하여 6개의 드랍쉽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 때 옵저버가 초성대 선수의 개인화면을 비추었다. 초성대 선수는 빠른 컨트롤로 앞마당 쪽의 방어를 견실히 하고 있었다. 본진쪽에 불필요한 탱크를
언덕에 배치시키고 만약을 대비해 일꾼들을 뒤로 피신시켰다.
"김주혁의 한방! 스타리그 우승에 빛나는 그의 저력은 역전을 가져와줄 것인가!"
진행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순간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나 김주혁의 드랍쉽은 앞마당을 유유히 지나 본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아! 허를 찔렀습니다. 초성대 선수 과연 막을 수 있을까요? 있을까요?"
"답이 없죠! 막는다해도 큰 손실이 예상됩니다!"
주혁은 의기양양하게 산개드랍을 펼쳤다. 언덕주변에 절반정도, 다시 센터 주변에 나머지 병력을 뿌리며 초성대의 본진을 유린하려했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초성대가 아니었다. 잠시 허를 찔린 듯한 초성대는 빠른 병력이동과 일꾼 동원을 통해서 탱크를 하나하나 제거하려했다.
불을 뿜는 탱크의 포화속에 초성대 선수의 본진은 점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속도로 김주혁의 한방은 정리되어가기 시작했다. 김주혁은 건물 일점사를 통해서 모든 건물을 띄우게 만들었지만 초성대의 앞마당에 있던 남은 병력들은 이미 김주혁의 본진을 향해 출발한 뒤였다.
"역습입니다! 드랍쉽이 터렛에 모두 잡힌 게 컸습니다. 김주혁 선수 루비콘 강을 건넜군요!"
"아, 초성대 선수 관광인가요? 역습을 가면서 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스타리그 우승자를 핵으로 보내고 큰 임팩트를 팬들의 가슴에 새기려 하는건가요?"
결국 승부는 1시간 뒤, 초성대 선수의 핵러쉬로 결정나고 만다. 김주혁 선수는 핵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채팅메세지가 뜨길 고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노말한 관광 경기가 된 것이다.
"X나 못하네, 저 녀석."
통통한 얼굴에 턱수염을 기른 사내가 두 사내의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흥분없이 냉정한 눈빛으로 티비화면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복귀해버릴까 그냥..."
"성준아, 여기 안심 2인분 썰어라!"
"네! 갑니다!"
성준이라 불리는 그 사내는 귀찮은 듯 소리를 빽 지르곤 달려갔다. 점심시간이 얼마지나지 않아서인지, "성돈등짝&안심등심" 체인점은 무척이나 바쁜 편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김주혁 녀석."
강민은 녹화된 테이프를 몇 번이나 되돌려보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K는 항상 김주혁의 게임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강민의 사고회로를 다시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K는 모든 스타경기를 망치려 하는 공평한 소멸주가 아니라, 유독 김주혁이란 개인에게 저주를 쏟는 속좁은 유령일 뿐인가.
만약 김주혁이 이기는 경기였다면 또다시 채팅메세지가 떴을지 몰랐다. 그랬다면 이런 생각까지는 안했겠지만, 강민은 처음부터 다시 추리를 해봐야함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민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실이 있었다.
"저 타이밍에... 핵이 2방이나 떨어지다니..."
녹화화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본 뒤에야 강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초성대의 마지막 핵은 1방으로 보이지만, 실은 교묘히 겹친 2방이었던 것을.
강민은 친한 후배이기도 한 초성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성대야, 난데..."
강민은 그 경기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초성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말이 맞아. 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싶은 부분인걸. 이게 알려지면 또 재경기를 해야하잖아.”
"김주혁이 리플레이를 가지고 있어. 언젠가는 들통날 일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너희 둘만의 문제가 아니야."
강민은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초성대가 직접 고백을 할 수도 있고, 리플레이를 통해 김주혁이 직접 발견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든 상관없었다.
"핵까지 쏘다니, 과연 이 녀석을 막을 수가 있기는 한건가..."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강민이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키워드는 김주혁. 만약 K가 김주혁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나 결승5경기의 부정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만이라고 보기엔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강민은 역시 김주혁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제기랄, 대체 왜 이렇게 꼬이는거지!'
같은 시간,김주혁은 리플레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분명히 집중을 못한 탓도 있었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그 무명의 메세지는 주혁을 공격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자신이 유리할 때는 나타나면서도, 불리할 때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전부터 느껴온 그 낯익은 글자체, 주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를 되새기며 기억을 살폈지만 정확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밤11시,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트레스때문인지 허기를 느낀 주혁은 야간까지 하는 체인점에 족발을 시키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티비를 켜고 음악을 틀고 억지로 라도 기분을 풀려 애썼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너의 기억 그 속에서 난 눈물흘려 너를 기다릴뿐~"
"정말, 사는게 사는거 답지 않아 제길."
주혁은 티비 위 찬장에 조심스럽게 모셔둔 스타리그 우승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초,중등학교때부터 동경해온 스타세계에 입문하여 피시방리그를 거쳐 험난한 듀얼을 뚫고서 결국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전혀 내 것이라 여길 수 없던 팬들도 얻고 카페도 개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티비에선 여전히 스타리그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타리그 원스 모어'란 프로그램으로, 올드 게이머들의 근황과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늘의 게스트는 플토영웅 박정석과 투신 박성준였다. 둘은 합심해서 고기체인점을 창업해서 좋은 사업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티비화면에는 턱수염을 길게 기른 박성준과 더욱 미남이 되어가는 박정석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우스운 것은 둘다 아줌마들이 자주 하는 앞치마를 하고있단 것이었다.
"쯧, 한물간 것들. 실력으로 붙는다 해도 내가 질리는 없겠지."
-딩동
그 때 벨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족발에 반가움을 느끼며 주혁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빈 손으로 주혁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주혁씨.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는 강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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